[아주 돋보기] 그날 지하철은 '잠시' 멈춰 섰지만, 우린 '20년째' 멈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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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완 기자
입력 2021-12-06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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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일 이동권 보장 요구하는 장애인단체 시위로 지하철 5호선 40분간 지연

  • 시위 참가 장애인 "점잖게 투쟁하면 세상 절대 알아주지 않더라"

  • 장애인단체 "장애인 권리 되찾기 위한 행동…불편 겪은 시민에게 죄송"

지난 12월 3일 ‘장애인 단체 시위’로 출근길 5호선 운행이 중지·지연되었다. [사진=연합뉴스]

평소라면 출근하는 직장인들로 붐볐을 서울 지하철 5호선 여의도역이 지난 3일 일시 정지됐다. 한 장애인단체가 하남·마천 방면 승강장에서 기습시위를 벌이면서다. 이들은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며 휠체어로 전동차 문을 막아섰다. 시위로 열차가 40분간 멈춰 서자 지하철을 기다리던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에게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장애인들은 이렇게라도 해야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준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이날 여의도역과 공덕역에서 시위를 진행했다. 이 중 여의도는 대기업과 금융회사, 외국계 회사 등이 밀집해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이 몰리는 장소다. 시위에 참여한 이들은 '물리적·사회적 장벽철폐'라고 적힌 조끼를 입고 장애인권리보장법·장애인탈시설지원법 제정과 장애인 권리 보장 예산 편성을 요구했다.
 

[사진=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장애인들이 휠체어로 전동차 문을 막으면서 열차는 운행을 멈췄고, 발이 묶인 직장인들은 이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한 탑승객은 시위 참가자들을 향해 "집에 가서 떠들라"고 꾸짖었다. 5호선을 타고 출근하는 한 직장인은 "장애인의 대중교통 이용 편의성 개선엔 동의한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시민에게 불편을 준다면 지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이날 시위로 오전 7시 46분께 5호선 양방향 열차 운행이 중단·지연됐고 8시 35분이 돼서야 운행이 재개됐다.

하지만 장애인들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신들의 목소리가 시민에게 전달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처벌을 각오하고서 열차를 붙잡은 것이다. 김포에서 왔다고 밝힌 한 시위 참가자는 "점잖게 투쟁하면 세상은 절대 알아주지 않는다. 우리의 요구를 시민에게 알리기 위해 지하철을 붙잡아야만 했다. 우리가 거리로 나온 이유"라고 말했다. 또 "엘리베이터와 장애인 화장실과 같은 편의시설은 장애인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지하철 점거 당시엔 어르신들이 우릴 욕했지만, 이런 편의시설이 늘어난다면 어르신들도 이용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12월 3일 장애인단체 시위로 5호선 출근길 열차운행이 지연되었다. [사진=연합뉴스]

이날 시위를 진행한 전장연은 기재부의 초과 세수가 19조원대에 이르지만, 장애인 관련 예산은 오히려 줄었다고 비판했다. 전장연은 내년 예산안에 장애인 이동권 보장 예산이 반영되지 않은 점을 항의하기 위해 서울 마포구에 있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자택으로 이동하던 중에 시위를 벌였다고 설명했다. 전장연은 지하철 기습시위를 마친 뒤 오전 10시께 홍 부총리 집 앞에서 '기획재정부 규탄 집중투쟁대회'를 열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실제로 장애인들은 일상생활에서 가장 도움이 필요한 부분으로 교통수단을 꼽았다. 길을 나서기 어려울 정도로 장애인 이동권이 미흡하단 뜻이다. 서울시가 모든 지하철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저상버스를 비롯해 리프트가 장착된 특별교통수단을 도입하겠다고 한 지 17년째지만, 서울의 저상버스 보급률은 작년 7월 기준 56.4%에 불과하다.

서울 상황은 나은 편이다. 김희국 국민의힘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대전 31.5%, 대구 34.5%, 부산 27.8%, 광주 22%에 불과하다. 전국 저상버스 보급률은 28.4%로,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저상버스를 이용하려면 버스 10대 중 7대는 떠나보내야 하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장연은 이동권 보장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수년간 이어오고 있다. 앞서 전장연은 10월과 11월에도 같은 방식으로 서울 지하철 4호선과 5호선에서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는 '교통약자 이동 편의 증진법' 개정안이 여전히 국회에 멈춰 있어 장애인단체는 계속 거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변재원 전장연 정책국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여의도역에서 진행한 시위는 장애인의 권리를 찾기 위한 행동이었다.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법안과 예산을 심사하는 날까지도 국회가 움직이지 않아 시위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며 기습 시위에 나선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당시 시위로 지하철이 멈춰 불편을 겪은 시민들의 마음에 공감한다"며 사과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또 변 국장은 "시민 덕분에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와 저상버스 도입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장애인 이동권 개선을 위해 시민들이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도 덧붙였다.

한편 전장연은 20년 전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에서 발생한 70대 장애인 노부부 추락 참사를 계기로 "안전하게 이동하고 싶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당시 노부부는 장애인용 리프트를 타고 1층 승강장으로 내려가던 중 리프트 철심이 끊어지면서 7미터(m) 아래로 떨어져 숨졌다. 전남 순천에서 올라와 큰아들이 사는 중계동으로 설을 쇠러 가던 길에 벌어진 사고였다.
 

[사진=아주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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