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비롯한 전국 집값이 역대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지만 12월 거래량은 201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집값 고점론과 함께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여야 후보들이 보유세(종합부동산세·재산세)와 거래세(양도소득세) 완화 공약을 쏟아내면서 서울 일부 지역에선 이달 거래량이 5건 미만을 기록하는 등 거래가 바짝 얼어붙었다.
30일 서울시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이날 기준 12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493건으로 올해 들어 가장 적은 수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12월(7545건)과 비교하면 무려 93.5% 급감했다.
업계에서는 아직 신고 기간(계약 후 30일)이 한 달가량 남았다는 점을 감안해도 매수 심리가 바닥인 상황이어서 1000건을 넘기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시내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10년 넘게 중개일을 해왔지만 한 달에 거래 문의가 한 건도 없었던 적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매도 문의도 매수 문의도 끊겨 체감상 IMF 위기 때보다 더 힘들다"고 토로했다.
구별 거래량을 살펴보면 강남구 19건, 서초구 27건, 강동구 25건, 송파구 25건 등에 그쳤다. 강북구(4건), 종로구(5건), 중구(7건) 등 거래량이 한 자릿수에 불과한 지역도 다수 나왔다. 거래량이 가장 많았던 지역은 구로구로 38건이었다. 저가 아파트 매수세가 몰렸던 노·도·강 거래량은 올 초 967건에서 이달 49건으로 90.14% 급감했다.
거래가 줄면서 집값 고점론도 탄력을 받고 있다. 다만 강남구와 서초구에서 이달 거래된 46건은 모두 기존 신고가를 경신한 사례라 거래량 통계에 집값 하락의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강남구 도곡동 한 중개업소 대표는 "이달 압구정동, 대치동, 개포동, 반포동 등 강남에서 거래된 소형, 중대형 아파트 가격이 적게는 천만원대에서 수억원까지 올랐다"면서 "수요가 줄면서 거래도 줄어 가격이 떨어지는 일반적인 하락기 진입 패턴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집값 둔화 조짐에 매도에 나섰던 1주택자들도 매물을 다시 거둬들이는 분위기다. 송파구 신천동의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종부세 고지서 폭탄을 맞은 다주택자들이 매도를 고민하다가 양도세 중과 유예 논의까지 불붙자 대선 이후까지 버티겠다며 매물을 회수하는 상황"이라며 "양도세 중과 유예 시 세금이 절반으로 줄어드는데 지금 팔려는 사람이 있겠냐"고 했다.
전문가들은 내년 선거로 부동산 시장의 관망세가 더욱 짙어지면서 실수요자들의 피해만 커질 것이라고 지적한다. 박원갑 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보유세 부담이 예상보다 줄어들면 매도 압박도 감소할 수밖에 없다"며 "현재 다주택자에 대한 한시적 양도세 감면 논의로 매도자들이 관망세로 돌아섰는데 보유세 완화 논의까지 겹쳐 앞으로 거래절벽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학렬 스마트튜브 부동산조사연구소장은 "거래량이 줄면 집주인들의 가격 낮추기 경쟁을 통해 집값이 떨어지는 게 침체기의 전형적인 패턴인데 지금은 일반적인 공식이 통하지 않고 있다"면서 "강남권은 집주인들이 그동안 오른 가격보다 더 비싸게 내놔 거래가 전반적으로 위축되고, 비강남권은 투자 수요가 단기간에 몰리면서 가격이 조정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사람들이 움직이질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사가 꼭 필요하거나 오른 부동산을 현금화하려는 사람들만 움직이다보니 거래량이 줄면서 서울 집값의 양극화가 고착화되고 있다"면서 "선거가 끝나고 정부의 정책 방향이 명확해지기 전까지는 반드시 이사를 갈 수밖에 없는 실수요자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볼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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