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직속 준사법적 연방독립기관인 USITC는 무역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 폭넓게 조사하는 책임을 지고 있다. 무역구제법규 등을 관리하는 임무를 띠고 있으며, 관세법 337조에 기반해 미국의 지식재산권을 침해하는 상품이 미국 내로 수입되거나 판매될 때 해당 상품에 대해 수입배제명령 혹은 중지명령을 내릴 수 있다. 미국 기업들의 지식재산권 침해를 막는 추가적이고 대안적인 수단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문제는 특허 괴물이라는 별명이 붙은 특허소송전문회사 NPE(Non-Practicing Entities)가 ITC를 무대로 무차별적 특해 침해 소송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연방지방법원에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하기 위해서는 대인 관할 요건이 충족돼야 한다. 그러나 ITC의 제소는 다르다. 침해 물품에 대한 대물 관할만 요구한다. NPE 입장에서는 소송 제기 조건을 충족시키기가 비교적 용이한 것이다. 결국 미국 내로 수입되는 물품에 대해 ITC에 특허 침해를 주장하는 기업이 외국 기업인 경우도 나온다. 금지명령을 내리기 위해서는 △미국 내로 침해물품의 수입이 있을 것 △수입을 금지하는 것이 '공공의 이익'에 반하지 않을 것 △해당 물품과 관련해 '국내 산업'이 존재할 것과 같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차가 신속·간단하고, 미국 지방법원보다 금지명령을 받기 쉽다는 점 때문에 특허 침해사건이 ITC로 집중되고 있다고 포브스는 지적했다.
게다가 지방법원과 달리 ITC에 제소해 특허 침해가 인정되면 수입금지 명령이 거의 자동적으로 부여되기 때문에 특허 괴물들로서는 더없이 유리하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등 미국 시장에 수출을 많이 하는 글로벌 기업 입장에서는 수입금지 명령은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특허 소송은 기업 이미지에도 타격을 입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도 어렵다.
포브스는 “기업 입장에서는 수입금지 위험을 감수할 수 없기 때문에 특허 괴물 측에 돈을 주고 협상을 하는 게 유리하다”며 “특허 괴물들은 막대한 합의금을 받는 횡재를 누린다”고 했다. 실제 유럽 특허 괴물인 네오드론(Neodron)이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미국 관세법 337조를 위반했다며 ITC에 소장을 제출한 뒤, 두 회사는 네오드론에 상당한 규모의 배상금을 지급하고 합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허 괴물들의 횡포는 기업뿐만 아니라 이들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는 미국 소비자들의 권리도 강탈하는 행위라고 포브스는 비판했다.
문제는 ITC를 이용한 특허 침해 소송의 칼날이 미국 기업으로도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교적 간소한 절차 외에도 지방법원과는 달리 강력한 징벌 부과가 가능하다는 점은 ITC 특허 침해 소송의 가장 큰 '매력'으로 꼽힌다. 이런 극적인 징벌은 소송에 걸린 기업들을 더욱 위축하게 만든다.
반면 특허 소송을 제기한 기업들에는 더 많은 보상의 기회가 따른다. 심지어 일부 기업들은 합의금이 공개될까 노심초사한다. 애플은 지난 2017년 특허 괴물인 유니록(Uniloc)에 지불한 합의금, 이른바 라이선스 비용을 대중에 공개하지 말아 달라고 법원에 요청하기도 했다. 외신들은 “애플이 유니록에 지불한 상당한 금액이 공개되면 특허 괴물들의 활동을 더욱 조장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미국의 비영리단체인 R스트리트연구소(R Street Institute)가 분석한 결과 ITC에 제소된 사건 약 95%가 최소 하나 이상의 미국 기업을 타깃으로 삼은 것으로 나타났다. 포브스는 "국내 기업들의 경우 특허 침해는 지방법원 등에서 충분히 처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필요하고 중복적인 ITC 특허 침해 제소가 늘고 있다"면서 "이는 오히려 미국 기업들에 심각한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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