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카드와 소고기 사건에 더해서 국민의 혈세가 사용된 용처가 국민들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또 하나의 사건이 있다. 얼마 전 서울행정법원은 2018년 6월 납세자 권익보호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한 시민단체가 청와대를 대상으로 대통령과 그 배우자가 해외를 방문할 때 지출한 의전비용과 더불어 청와대의 특별활동비 내역을 공개하라는 소송에서 원고인 시민단체의 손을 들어주었다. 원고는 대통령 및 그 배우자의 의전비용(의상, 악세서리, 구두 등)과 관련된 정부의 예산 편성 금액과 일자별 지출실적, 배우자의 의전비용이 특수활동비에서 지급되었는지 여부, 문재인정부 취임 후 지금까지 특수활동비 지출내용에 대한 지급일자, 지급금액, 지급사유, 수령자, 현금 등 지급방법 등에 대한 정보의 공개를 청구한 것이다. 청와대는 아마도 적이 당황했을지 모른다. 이른바 촛불로 상징되는 문재인 정부가 한창 개혁을 외치던 2018년 6월 당시 박근혜 정부에 대한 적폐 청산의 대상 중 하나인 청와대, 국가정보원, 법무부 등의 특별활동비 폐지에 대해서 자신에게 부메랑이 된 느낌을 받았을 테니 말이다. 박근혜 정부의 국가정보원장들이 대통령에게 특별활동비 일부를 상납하고 감옥에 간 일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문재인 정부는 특활비를 비롯한 정부의 검은 돈 때문에 더 이상 국민들의 혈세가 피를 흘리지 않는 방향으로 개혁될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는 대통령 배우자의 의전비용과 특별활동비 지출내역을 공개하면 국가안전보장, 국방, 외교 업무의 공정한 수행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으며 지출내역에 포함된 인사들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면서 그 공개를 거부한 것이다. 하지만 서울행정법원의 판단은 달랐고, 법원이 제시한 법리와 해석은 예리하고 야무진 것이었다. 청와대가 정보공개법이나 대통령기록물관리법에 따라서 위 정보가 공개될 경우 국가안전보장·국방·통일·외교관계 등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할 우려를 들어 정보공개를 거부하기 위해서는 비공개로 인하여 보호되는 이익이 국민의 알권리와 국정에 대한 국민의 참여 및 국정운영의 투명성을 희생할 정도로 커야 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그 공개를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청와대는 비공개 사유를 그야말로 두루뭉술하게 제시하고 있을 뿐 구체적으로 증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국민의 알권리와 국정의 투명성이라는 이익이 압도적이므로 반드시 공개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취지이다.
물론 대통령과 배우자는 국격에 맞는 외교를 할 수 있고 의전에 필요한 비용은 당연히 국민이 납부한 세금이 쓰여지는 것을 문제 삼는 국민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특별활동비의 규모, 배우자에게 지원된 의전비용의 지출 내역은 반드시 국민에게 떳떳하게 공개하고 국민적 동의를 구하는 것이 법치국가의 상식 중의 상식에 해당한다. 우리가 무슨 특별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상식과 법치라는 공동체의 최소한의 규칙을 준수하도록 추궁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아마도 청와대는 항소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이유도 “1심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한다” 정도로 단순하게 이야기할지 모른다. 물론 항소는 소송당사자의 권리라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기회만 되면 시민들의 촛불로 탄생한 정부라는 점을 이야기 한다. 촛불은 어둠을 배격하고 밝음을 상징한다. 2016/17년 겨울 아내와 언 손을 녹여가며 광화문에 모인 많은 시민들과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고 수 없이 외쳤다. 청와대가 항소하고 관련 정보를 대통령기록물로 지정하면 퇴임 바로 다음 날부터 15년간, 개인의 사생활과 관련된 기록은 30년간 공개가 금지된다. 그리고 항소심 법원은 공개대상 정보가 자체가 존재하지 않음을 이유로 들어 소송을 각하할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이 촛불정부의 수반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할 마지막 기회를 아직은 가지고 있다. 그러니 대통령은 어둠의 편으로 숨지 말고 법원이 판결한 그대로 모든 것을 국민들 앞에 당당하게 공개하기 바란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