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관련 업계와 무역협회·코트라(KOTRA) 등에 따르면, 미국 정부가 반도체 등 하이테크 제품의 러시아 수출을 통제하는 포괄적인 제재 방안을 발표함에 따라 우리 기업들의 타격이 예상된다. 미국은 이번에 '해외직접생산품규칙'이란 경제 제재 방식을 적용키로 했다. 이 규칙은 제3국에서 만든 제품이라도 미국의 소프트웨어나 기술이 사용됐을 경우 수출을 금지할 수 있도록 한 강력한 조치다. .
특히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이 생산하는 반도체 제품의 제재 영향이 예상된다. 모든 전자기기의 핵심 부품인 반도체 생산에는 미국의 소프트웨어나 기술이 대부분 들어가기 때문이다. 다만 한국의 대러 반도체 수출액은 지난해 기준 7400만 달러(약 885억원)로 전체 반도체 수출의 0.06% 수준이다. 미국의 반도체 설계 기술이 적용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가 들어가는 스마트폰 수출도 타격이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러시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이 지난해 기준 약 30%로 1위다.
차량용 반도체를 포함해 모든 반도체 공정에 필수적인 네온(Ne)과 크립톤(Kr) 등 희귀가스 공급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50%가량 점유하는 것도 문제다. 우리 기업은 해당 희귀가스 3개월치를 확보해뒀지만, 사태가 장기화 하면 수급에 난항이 예상된다.
현지 자동차 생산과 관련 부품 수출도 난항이 예상된다. 현대차·기아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연 23만대 규모 생산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완성차 부품 업체가 러시아에 수출하는 부품의 90% 이상은 현대차·기아 현지 공장으로 납품된다. 이번 제재로 수출이 원활하지 못할 경우 현대차·기아의 생산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업계 일각에선 꾸준히 성장세인 전기차 시장이 위축될 가능성도 제기한다. 차량 강판 소재인 알루미늄과 배터리 소재인 니켈·리튬 등의 가격 폭등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현재 중국에 이어 알루미늄 생산국 세계 2위다.
미국의 제재에 따른 러시아 현지 가전 시장 위축도 우려된다. 삼성전자는 모스크바 인근 칼루가 지역 공장에서 TV를, LG전자는 모스크바 외곽 루자 지역 공장에서 가전과 TV를 각각 생산 중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러시아에서 세탁기, 냉장고 등 주요 가전 분야 1위다.
조선업계는 그동안 확보한 수주 대금을 떼일까 걱정이다. 한국조선해양·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 3사가 러시아와 계약한 액화천연가스(LNG)선과 LNG 프로젝트 총 금액은 6조9970억원에 달한다. 러시아는 국영 에너지 기업이 선박 발주를 하는데, 미국이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까지 막으면 달러를 통한 대금 지급이 어려워져 국내 조선사의 부담이 커진다.
상사업계도 노심초사하고 있다. 현대코퍼레이션은 현대로템,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 등과 180억 달러(약 20조4500억원) 규모의 우크라이나 고속철도 인프라 사업 참여를 타진해왔는데 공염불이 될 공산이 크다. 우크라이나 남부 미콜라이프에서 곡물 수출터미널을 운영하는 포스코인터내셔널도 비상이다. 2019년부터 미래 먹거리로 공을 들여온 식량 전진기지인데, 당장은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최악의 상황도 우려해야 하는 형국이다. 현재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내 신규 구매 및 판매 계약이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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