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서 대화 녹취, 주거침입 아냐"
주인 몰래 식당에 상대방과 대화하는 내용을 녹음하기 위한 장치를 설치하러 들어가도 주거침입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24일 주거침입 혐의로 기소된 A씨와 B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관 11인 다수의견이었다.대법원은 “일반인 출입이 허용된 음식점에 영업주 승낙을 받아 통상적 출입 방법으로 들어갔을 때 영업주가 실제 출입 목적을 알았더라면 출입을 승낙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더라도 사실상 평온 상태가 침해됐다고 평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반인의 출입이 허용된 음식점이더라도 도청용 송신기를 설치할 목적으로 출입한 것은 영업주의 명시적 또는 추정적 의사에 반한다고 보아 주거침입죄 성립을 인정한 종래 대법원 판결을 변경한다”고 설명했다.
화물운송업체 직원 A씨와 B씨는 지난 2015년 자신들이 소속된 회사에 불리한 기사를 쓴 기자에게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한 뒤 식당 안에 몰래 녹음·녹화 장치를 설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부는 “회사에 대한 민원과 관련해 기자들이 찾아오자 먼저 식사를 하자고 유인해 미리 설치한 몰래카메라로 이를 촬영·녹음하고, 단기간에 반복해 범행을 저질러 죄질이 좋지 않다”며 징역 4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영업주의 명시적 또는 추정적 의사에 반해 식당에 침입했다고 단정할 수 없어 주거침입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날 대법원 판결로 14대 대통령선거 직전 정부 기관장들이 지역감정을 부추겨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고 한 사실이 도청으로 드러난 초원복집 사건 판결도 변경됐다. 초원복집 사건은 지난 1992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김기춘 당시 법무부 장관 등 정부 관계자들이 부산 초원복집에 모여 김영삼 민주자유당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나눈 대화가 도청으로 드러난 사건이다. 지금까지 많이 회자되는 ‘우리가 남이가’라는 표현도 이 자리에서 나왔다.
식당에서 나온 발언들은 당시 통일국민당 관계자들의 도청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도청에 관여한 3명을 주거침입 혐의로 기소했다. 지난 1997년 대법원은 재판에 넘겨진 3명에 대해 벌금형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일반인의 출입이 허용된 음식점이라 하더라도 영업주의 명시적 또는 추정적 의사에 반해 들어간 것이라면 주거침입죄가 성립한다”고 판시했다.
"근로복지공단, 산재급여 중 노동자 과실비용 직접 부담“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날 근로복지공단이 산재 노동자에게 지급한 유족급여를 가해자에게 청구할 때 지급금 전액이 아닌 과실 비율만큼만 받아낼 수 있다는 판단도 내놨다. 근로복지공단이 한국전력과 전기업체 A사를 상대로 낸 구상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대법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낸 것이다.A사는 지난 2017년 한국전력으로부터 도급받은 배설공사를 진행했다. 전선을 제거하고 전신주를 철거하는 공사였다. 이 과정에서 한 직원이 현장에 다가가다 무너진 전신주에 머리를 다쳐 사망했다. 공단은 이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고 유족에게 급여 2억2000여만원을 지급했다. 또 한국전력과 A사에 급여 전액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쟁점은 공단의 보험 급여 지급에 따른 구상금을 계산하는 방식이었다. 2심은 기존 대법원 판례인 ‘과실상계 후 공제’ 방식을 따랐다. 유족의 손해액에서 노동자의 과실 비율만큼의 금액을 먼저 빼고 남은 금액에서 공단이 유족에게 준 급여를 공제하는 방식이다.
대법원은 ‘공제 후 과실상계’ 방식으로 판례를 변경했다. 유족 손해액에서 근로복지공단이 지급한 돈을 먼저 뺀 뒤 과실 비율을 계산하는 방식이다. 산업재해를 당한 근로자의 손해가 전부 보전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보험급여 중 재해근로자의 과실 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은 공단이 부담하게 함으로써 근로자가 손해액 전부를 보전받을 수 있게 하겠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재해 근로자의 과실 유무를 불문하고 보험급여를 하도록 하는 취지는 업무상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며 재활과 사회 복귀를 촉진하기 위한 것”이라며 “산재보험의 책임보험적 성격 관점에 치중했던 ‘과실상계 후 공제’ 방식에서 벗어나 ‘공제 후 과실상계’ 방식을 따르는 것이 법질서 내 통일된 해석”이라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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