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문가인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 겸 경희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는 15일 본지와 서면으로 인터뷰하면서 윤석열 정부의 한·미 동맹 강화, 상호 존중에 기반한 한·중 관계 같은 외교정책이 전략은 좋지만 정치적 어젠다와 실리를 철저히 구분해 다양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최근 미국과 중국 간 전략적 경쟁 속에 우리나라 새 정부가 미국 쪽으로 치우친다면 '차이나 리스크'를 키우는 것 아니냐는 우려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서다.
대중국 견제 '공급망 동맹' IPEF···韓, 中 우선 보복 타깃 될 수도
전 소장은 무엇보다 현재 한국의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는 미국보다 월등히 높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홍콩을 포함한 중국이 차지한 비중은 30%를 넘는다. 같은 기간 대미 수출 비중은 15%에 불과하다. 대중국 무역흑자도 596억 달러로, 대미 흑자(227억 달러) 대비 2.6배다. 전 소장은 “향후 5년간 한국의 최대 수출국이자 무역흑자국인 중국을 대체할 나라는 보이지 않는다”며 한·중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새 정부가 정책 전환 과정에서 속도나 방향을 자칫 잘못 조절했다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보다 더 심각한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게 전 소장의 판단이다. 이에 따라 미·중 사이에서 한국은 철저히 국익 관점에서 손익 계산이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실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한·일 순방에 맞춰 출범할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에 우리나라도 가입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기로 하면서 중국은 벌써부터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다.
IPEF는 중국이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앞세워 경제 영토를 확장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이 고안한 경제 협의체로 평가된다. 디지털 경제 무역, 공급망, 탈탄소 및 인프라, 탈세 및 부패 방지 등 경제 분야에서 회원국 간 협력을 모색하지만 ‘중국을 배제한’ 공급망을 형성하는 데 초점이 맞춰질 수 있다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앞서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우리는 정상적인 미국과 한국 간 경제 협력에는 이의가 없지만 협력은 중국의 국익을 해쳐서는 안 된다”면서 “중국의 이익을 훼손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중국과 한국의 경제·무역 관계를 심각하게 해칠 것이고 심지어 중국의 대응을 자극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자칫 IPEF가 미국 주도의 '공급망 동맹'을 형성해 중국의 공급망을 옥죄지 않을까 하는 중국 측 우려가 읽히는 대목이다.
전병서 소장은 "IPEF에 가입하면 대중국 견제 전략으로 1차적으론 반도체·배터리·희토류·의약품 방면에서 '동맹'이 이뤄질 것"이라며 “문제는 이 4대 품목에서 우리나라의 대중국 의존도가 매우 높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조사에 따르면 미국이 공급망 동맹을 통해 중국을 배제하려는 반도체·배터리·희토류· 의약품 산업에서 한국의 대중 의존도는 각각 39.5%, 93.3%, 52.4%, 52.7%에 달한다. 전 소장은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첫 번째 보복 타깃은 가장 약한 고리인 한국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제2요소수 사태 가능 품목 1088개···'기술외교'로 전환 필요
이뿐만이 아니다. 산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대중국 수입 의존도가 50%를 넘는 품목이 1088개나 되고, 70%를 넘는 품목은 653개에 달한다.
전 소장은 "한국이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동맹에 가입해 중국의 반도체 공급에 영향을 준다면 중국은 반도체를 건드리는 것이 아니라 제2, 제3의 요소수 사태를 만들어 한국을 곤혹스럽게 만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다양한 대응책과 컨틴전시 플랜을 만들어 대응하지 않으면 1088개의 요소수 사태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그는 "코로나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기술이 아니라 원자재가 '슈퍼 갑'이 됐다"며 첨단 기술과 공장이 있어도 소재가 없으면 공장이 멈춰설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반도체·배터리 등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한국의 기술력도 중국이 소재 공급을 중단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전 소장은 “결국 한국의 대중 외교는 판세 읽기와 외교력에서 결판이 난다”며 “최근 한·중 관계에서 공급망 이슈가 커지면서 한국으로선 대중국 공급망 확보가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대중 외교도 세계 정세와 미·중 간 경제 전쟁 변화에 대응해 전략적으로 그간의 ‘정치 외교’에서 ‘기술 외교’로 전환하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최근 차기 주중대사를 둘러싸고 여러가지 하마평이 오르내리는 가운데 전 소장은 “주중대사 역시 ‘기술 전문가'를 보내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해 보인다”며 “이러한 공급망 문제를 해결할 능력자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그는 2010년 이후 12년간 한국이 파견한 주중대사 6명 중 외교관은 단 1명이었고, 5명은 중국 전문가라고 보기엔 전문성이 떨어지는 정치권 인사로 채워졌다며 한국의 대중 외교력 약화는 필연적 결과였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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