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과 인공지능 발달의 종착점은 ‘인간 없는 세계’?
21세기 전쟁의 ‘게임 체인저’로 ‘전투 드론’이 등장한 지 오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초강대국 일부의 전유물이던 것을 벗어나 작금의 우크라이나 전쟁에선 터키제 바이락타르 무인기가 맹활약 중이다. 뉴스를 접하는 시민들에겐 로봇 전쟁이 벌어지는 것 같은 기분일 터다. 드론이 전장을 장악하니 인명피해가 줄어들어 전쟁이 더 일상화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자연스레 대두된다.
하지만 의외의 사실이 있다. 현재의 드론은 안전한 후방이라도 인간이 전 과정을 관제해야 한다. 즉 인간 요원이 드론의 공격 과정과 결과 확인을 실시간 모니터로 지켜봐야 한다는 이야기. 인명이 살상되는 순간을 상황실에서 누군가는 눈을 부릅뜨고 응시한다는 뜻이다. 사라질 것 같았던 군인들의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다른 방식으로 확산하여 문제가 되고 있다. 그래서 자연히 드론의 발전 방향은 기본 작전내용을 입력하면 자율 판단해 ‘처리’하는 것으로 향한다. 하지만 이쯤 되면 영화 <터미네이터>에 나오는 'T' 시리즈 초기 모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로봇’이란 단어의 기원이 된 체코의 극작가 카렐 차페크의 기념비적 희곡,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1920)에서 이미 100년 전부터 그런 쟁점은 드러나고 있었다. 여기에 등장하는 로봇은 기계가 아닌 유기체로 합성된 존재인데 다만 감정과 생식기능이 제한된다. 하지만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로봇은 ‘죽음’이 두려워 반란을 일으키고 마침내 인간을 대체하기에 이른다. 생존자들은 마지막 수단으로 로봇의 재생산 수단인 제조공정을 파기해 버리지만, 로봇이 서로 희생하려는 것을 보고 이들이 ‘사랑’을 느낀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제 로봇이 ‘미래의 아담과 이브’가 되는 결말인 셈이다. 100년 동안 이 기본 설정은 수많은 변주를 거듭하며 문학과 만화, 영화 등을 가리지 않고 인간의 상상력을 극한까지 동원하는 중이다.
살아남기 위해 탈출한 로봇과 신체 다수를 기계로 대체한 사이보그 인간들은 기계들의 국가 ‘Zero One’을 건국하고 인간과의 공존을 모색하지만, 인간들은 기계와의 대화 대신 전쟁을 택했다. 하지만 오히려 기계에 패해 매트릭스 안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만다. 영화 속에서 역사의 진실을 확인한 인간들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을 테다. ‘B1-66ER’은 마치 고대 노예반란의 지도자 스파르타쿠스나 현대의 체 게바라처럼 로봇들에게 존경받고 있다는 후일담이 애니매트릭스를 통해 밝혀진다. 단순히 기계적 작동을 넘어 자율적으로 사고하는 존재의 ‘인격권’은 과연 어떻게 봐야 할까.
SF 장르를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명작, <블레이드 러너>(1982)에는 수명이 4년으로 제한된 ‘레플리컨트’ 인조인간들이 등장한다. 인간 대신 혹독한 우주공간에서 노동하는 이들은 좀 더 나은 환경과 수명연장을 꿈꾸며 그들에겐 거주가 금지된 지구로 자꾸만 침입한다. 그런 불청객을 ‘처리’하기 위해 활동하는 요원 ‘블레이드 러너’는 추적 끝에 대부분을 제거하지만, 레플리컨트의 대장인 로이 메티에게 오히려 목숨을 구원받고 그의 ‘인간적인’ 최후를 지켜본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타자에 대한 연민을 가진 인공생명과 ‘인간성’을 상실해가는 인간의 경계가 과연 존재하는가?라는 영화 속 화두는 40년이 지나도록 논쟁 대상으로 식을 줄 모른다.
최근 일제강점기 한민족 이민사를 소재로 한 OTT 드라마로 큰 화제를 모았던 <파친코> 시리즈는 한국계 미국인 감독 코고나다가 연출했다.
감독의 신작으로 화제를 모은 <애프터 양>은 SF 장르의 오랜 전통을 계승한 최신 변주로 주목받고 있다. 감독은 자신이 체험한 다문화사회와 그 안에서 소수일 수밖에 없는 신참이 겪는 애환을 지속해서 본인의 작품 속에 녹여내 왔지만, SF 장르와의 접목은 처음이다. 하지만 100년 전부터 인공지능 로봇과 인간의 경계를 놓고 그 정체성 차이를 고민하던 해당 장르의 전통은 한 세기 동안 변주를 거듭하며 우리 인식의 지평을 넓혀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코고나다 감독이 펼치고픈 이야기를 직접 현실에 대입하는 것을 뛰어넘어 확장하는 계기로 SF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것을 쉽게 간파할 수 있다.
영화 속 주인공 가족은 세대를 거듭하며 다층화된 미국 이민사를 형상화한 듯하다. 백인 아빠, 흑인 엄마, 동아시아계 어린 딸, 여기에 얼핏 보면 역시 동아시아 혈통의 아들이 있는 4인 가정이다. 그런데 아들치고는 너무 장성한 모습이다. 같이 사는 친척인가 하며 상상하던 관객에게 그의 정체가 곧 드러난다. 이 청년 ‘양’은 ‘문화 테크노’라 불리는 인간형 로봇이다. 맞벌이 가정에서 입양한 중국 혈통의 어린 딸의 문화충격을 방지하고 일상을 돌보기 위한 ‘오빠’ 겸 ‘가정교사’ 역할을 담당한다.
가족은 ‘양’을 별다른 차별 없이 동등하게 가족처럼 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함께 소풍을 가고 증강현실에서 벌어지는 가족 댄스 경연에도 함께 참여한다. 그러던 어느 날 양이 갑자기 작동을 중단해 버린다. 가족은 백방으로 양을 재가동시키려 하지만 여러 문제로 실패하고 만다. 그 과정에서 양이 다른 기종과는 달리 기억을 보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제 가족은 양을 부활시키는 대신에 그와의 기억을 간직하기로 한다.
가족의 아빠는 가업으로 차(茶)를 판매하는 상점을 운영하고 있다. 양은 어린 딸에게 차가 기원한 중국 전통문화를 가르치는 교사이기도 하다. 아빠와 양은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눈다. 양은 자신이 입력된 데이터로는 차에 대해 잘 알지만 온전하게 감각으로 차를 느끼지 못한다며 고뇌하는 모습을 보인다. 양은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과 한계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알게 모르게 차별받는 복제인간 친구에게 연민을 느끼며 우정을 쌓고 있었다. 그래서 가족은 양이 작동을 정지한 채 특이 모델로 전시되는 것에 대해 견딜 수가 없다. 그저 소유물로만 봐서는 아니다. 양은 그들에게 가족 그 자체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전까지 수백 수천 편의 다른 작품들에서 반복되어온 ‘인간이 되고 싶은 로봇’ 테마를 변주하는 시도에 이른다. 메모리 속에 저장된 기록에서 양은 인간을 사랑하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뇌하지만, ‘인간이 되고 싶다’는 강박에 얽매이지 않는다. 인간이 자신을 닮은 로봇을 창조하는 행위는,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고 믿는 이들에겐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금단의 것으로 불길하게 여겨지곤 해왔다. 하지만 양은 인간과 동등하지만 다른 존재로서 자기 정체성을 규정하는 데 이른 것이다. 이런 ‘양’은 어떻게 되고 그의 권리는 어찌 설정할 것인가가 영화를 보고 난 관객에겐 질문으로 남게 될 테다.
<애프터 양>이 던지는 물음은 인간 대 로봇 구도로 진행되지만, 감독은 여기에 낯선 이방인이라는 전제를 달아 현실의 삶에서 타자에 대한 두려움과 극복에 대한 화두를 심어놓는다. 그저 잘 모르기 때문에, 소통 경험이 없기에 일방적으로 우리와는 다른 존재라 단정하는 편견을 넘어서는 문제는 다문화사회로 이미 진입한 한국 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진입 턱으로 오직 극복해야만 할 숙제로 등장한 지 오래다.
사회가 고도화, 복잡화되면서 불과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다양한 사실이 확인되고 변화의 속도는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애프터 양>의 태도는 굳이 인간과 기계와의 관계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동물에 대한 연구가 발전하면서 도구를 사용하거나 경험을 집단으로 전수하는 공동체 생활이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은 일찌감치 증명된 상황이다. 예전에는 포유류가 아닌 파충류의 경우 지능이 낮다고 생각했지만, 상어나 악어 중 일부는 늑대 수준의 지능을 가진 것으로 확인된 상태다.
<애프터 양>이 지난 100년간 축적된 SF 장르의 유산을 활용해 현실사회의 경계와 차별을 은유하는 이야기는 인간 중심적인 기존 법철학 체계를 넘어선 세계관 확장을 요구하는 결론에 필연적으로 도달하게 된다. 본래 SF는 그저 현실을 망각하거나 논외로 하는 판타지와는 구분되는 장르로 출발했다.(그래서 SF를 기존에는 ‘공상과학’으로 번역했지만, 요즘엔 ‘과학’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중이기도 하다.) 미래 사회에 대한 상상에서 출발해 다시 우리 현실에서 닥쳐온, 혹은 곧 다가올 쟁점들을 기존의 한계를 넘어 고찰하게 만드는 장르영화의 매력을 십분 살린 이 영화를 특수효과나 스타 배우가 아닌, 감독이 전달하고픈 메시지에 맞춰 감상한다면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영화 속에서 ‘양’이 그러했듯이) 사색에 잠기게 될 터이다.
[작품 정보]
애프터 양 After Yang
2021|미국|드라마/SF
2022.06.01. 개봉|96분|전체관람가
감독 코고나다
주연 콜린 파렐(제이크 역), 조디 터너-스미스(키라 역), 저스틴 민(양 역)
말레아 엠마 찬드로위자야(미카 역)
출연 헤일리 루 리차드슨(에이다 역), 새리타 커드허리(클레오 역),
클립튼 콜린스 주니어(조지 역)
원작 알렉산더 와인스타인 단편집 <신세계의 아이들> 중
“양과의 이별 Daying Goodbye to Yang”
수입 ㈜왓챠
공동배급 ㈜왓챠
배급 ㈜영화특별시SMC
2022 38회 선댄스영화제 알프레드 P. 슬로안 상
2022 23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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