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관측망이 전국적으로 확충된 1973년 이후 역대 6월 평균기온이 지난달 역대 세 번째로 높았다. 북태평양고기압이 확장하면서 가장자리를 따라 더운 남서풍이 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연평균 기온은 역대 2위에 해당한다. 기상청은 지난 5월 “올해 7월과 8월 한여름철에 기온이 평년과 비슷할 확률은 30%이고, 높을 확률은 50%나 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기온이 올라가면서 에어컨은 여름 대비 필수품이 되었다. 특히 올해에는 이례적으로 4월부터 30도가 넘는 고온현상을 보이며 에어컨 판매량이 크게 늘었다. 롯데하이마트에 따르면, 4월 9~30일 기준으로 창문형 에어컨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약 450% 증가했다. 전자랜드 역시 4월 에어컨 판매량이 전년 대비 24% 상승하면서 최근 3년 중 가장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에어컨이 없으면 버티기 힘든 세상이 오면서, 에어컨을 둘러싼 크고 작은 다툼이 일어나고 있다.
아주로앤피는 에어컨을 둘러싼 법적 분쟁을 살펴보았다.
◆에어컨 의도적으로 끄면, 업무 방해 "유죄"
서울중앙지법 5-3형사부(판사 장덕수)는 지난달 10일 업무방해 혐의로 모 상가 관리단장 A를 벌금 300만원을, 건물 관리사무소 공사부장 B에게 벌금형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법원은 A와 B가 2020년 8월 24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1시 50분까지 건물의 중앙냉방장치(에어컨)를 중지시켜 지하 1층의 식당을 운영하는 피해자 20여명의 업무를 방해했다고 판단했다.
사건은 이랬다. 모 상가의 관리단장 A는 2020년 7월 직무집행이 정지됐다. A는 그 이후에도 업무를 했고, 직무대행자인 변호사 C가 A의 건물 관리단 통장을 지급 정지시켰다. 그러자 A가 공사부장인 B에게 냉방장치를 중지하라 지시한 것이다.
법원은 “범행이 있던 날에 냉방기가 작동하지 않으면 상가 운영자들의 영업에 적지 않은 지장을 주는 것을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며 “A는 적법한 관리 업무의 권한이 없음에도 계속해서 불법적 관리를 수행하면서 피해자들의 업무를 방해했다”고 판단했다.
에어컨을 설치하는 도중에 문제가 생겼다면 설치업체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법원 판결도 있었다.
지난해 10월 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판사 김영아)은 “에어컨 설치업체가 집주인 D에게 22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법원은 “에어컨 설치 공사를 의뢰받아 벽에 구멍을 뚫는 작업을 행하는 경우 이러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벽을 뚫는 과정에서 문제가 될 것이 없는지 확인해 안전하게 작업할 주의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임차인 E는 집주인 D의 허락을 얻은 뒤 설치업자에게 의뢰했다. E는 도로쪽 벽에 실외기 구멍을 내기 원했으나 집주인 D의 요청으로 화장실 벽 쪽으로 구멍을 내게 됐다. 설치업체 직원은 구멍을 뚫기 시작하는데 이 과정에서 설치돼 있던 도시가스 배관을 건드린 것이다. 집주인 D는 도시가스 배관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다.
집주인 D는 집 수리를 마친 뒤 임차인 E와 에어컨 설치업체를 상대로 주택 수리에 지출한 3200여만원을 배상하라며 소송을 냈다.
법원은 “에어컨 설치 업체와 직원은 배관이 무엇이고 어디로 연결되는지를 확인해 구멍을 뚫으며 문제가 되지 않도록 작업할 의무가 있다"며 ”설치업체나 직원이 이러한 의무를 이행한 흔적을 찾을 수 없기에 이들이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다만 법원은 ‘임차인이 책임질 수 없는 사유’라며, 임차인 E의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에어컨 실외기를 지정된 장소에 설치하지 않아 분쟁이 발생했다면 어떻게 될까.
부산지방법원 서부지원(판사 유기웅)은 부산 북구 모 아파트 입주민 F가 위층 입주민 G와 소유자 H를 상대로 제기한 에어컨 실외기에 대한 위험물 이설청구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G는 2021년부터 베란다 우측에 지정된 장소가 아닌 베란다 가운데에 별도로 장소를 마련해 에어컨 실외기를 설치해 사용했다.
바로 아래층에 거주하는 F는 수직방향 공중으로 상당한 높이에 실외기가 위치해 위협을 느꼈다고 주장했다. 그는 실외기가 낙하할 경우 생명에 위협을 느낄 수 있다며 방해배제청구권(물권을 행사하면서 방해를 받을 때 침해자에 대해 그 방해를 제거해 달라고 청구하는 권리)을 행사해 위층 입주민 G와 소유자 H에게 실외기를 옮겨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법원은 “실외기가 F가 거주하는 수직 방향으로 공중에 설치됐다는 사실만으로 추락할 우려가 있다거나 F의 생명에 치명적인 위협을 초래할 수 있는 현실적인 위험이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F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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