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호의 개념시선] 정치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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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호 경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
입력 2022-07-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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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당은 올바른 정책이 아니라 최선의 정책을 내놓아야

[장준호 경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

정치적 흐름이 바뀌었다. 3월 9일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었고, 6월 1일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압승했다. 국민의힘은 중앙과 지방의 권력을 석권했다. 이에 따라 거대 양당은 각각 당내 '권력 투쟁(power struggle)'에 돌입했다. 국민의힘에서는 ‘정치 권력을 얻은 정당’이라는 맥락에서,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정치 권력을 잃은 정당’이라는 상황에서 당권을 향한 투쟁이 진행되고 있다. 여소야대 상황은 행정부와 입법부 간 견제를 넘어 상호 무시로 치닫고 있다.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로 인해 경제가 불안하지만 정치권 행보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의 권력 투쟁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를 거쳐 거대 양당의 당내 권력 투쟁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은 현상적으로 정치의 속성(屬性)이 무엇인지 명확히 보여준다. 막스 베버(Max Weber)가 정치의 속성을 정확히 파악했듯이 정치란 “국가 사이에서든, 한 국가 내 집단들 사이에서든 권력에 참여하려는 노력 또는 권력 배분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노력”이다. 정치란 근본적으로 권력을 얻기 위한 활동인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마키아벨리(Nicolo Machiavelli)가 포착한 정치 개념에 기초하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권력의 획득, 유지, 확장’이라는 맥락에서 일반적 도덕·윤리와는 연동되지 않는 권력 추구 활동을 정치로 파악했다. 사실, 작금의 우리 정치에서 관찰되는 권력 투쟁은 베버와 마키아벨리가 보았던 정치의 본래적 속성일 뿐이다.
 
정치의 본래적 속성을 넘어 국민은 이렇게 물어볼 수 있다. “무엇을 위해 정치 권력을 가지려고 하는가?” “정치 권력을 가지려는 자는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가?” 정치 권력에 의해 정책과 입법이 ‘강제적으로’ 시행되기 때문에 이러한 질문은 중요하다. 예컨대 마키아벨리에 따르면 정치인은 현실을 정확히 파악해서 결단하고 행위하는 신중함과 영리함을 가져야 한다. 베버에 따르면 정치인은 신념, 책임감, 균형 감각을 갖추어야 한다. 나아가 베버는 정치는 권력 투쟁이라는 속성을 넘어 '열정과 균형 감각 둘 다를 가지고 단단한 널빤지를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뚫는 작업'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정치 권력은 단단한 널빤지와 같은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열정, 인내, 책임감, 영리함, 균형 감각, 신중함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현재 대통령 국정 지지율이 30%대로 추락한 것은 대통령과 집권당의 정치가 단지 정치의 본래적 속성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국민도 정치의 속성을 이해한다. 정치란 권력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에 권력 투쟁이 생기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은 정치의 본래적 속성을 넘어 정치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다. 나아가 정치인이 어떤 역량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지도 알고 있다. 그러한 ‘앎’이 있기 때문에 ‘기대’가 생기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실망’한다. 예컨대 대통령의 현재 약식회견(door stepping)에는 ‘균형 감각(Augenmass)’이 없다. 베버에 따르면 균형 감각이란 '내적 집중과 평정 속에서 현실을 관조할 수 있는 능력, 즉 사물과 사람에 대해 거리를 둘 수 있는 능력'이다. 거리감의 상실은 정치인을 파멸로 이끈다. 거리감을 상실하면 신념을 동반한 뜨거운 열정에 집착하게 되어 현실을 보지 못하고 객관성을 확보하지 못하며 허영과 오만의 무책임한 자기도취에 빠져들기 쉽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집권 정당으로서 책임 정치를 해야 한다. 대통령 선거라는 ‘대권력 투쟁(big power struggle)’에서 획득한 정치 권력을 국민이라는 공적 대상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즉, 정치의 본래적 속성인 권력 투쟁을 넘어서 "무엇을 위해 권력을 사용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정책으로 답해야 한다. 당장 경제위기의 파고가 우리나라를 덮치고 있다. 물가 상승, 경기 침체, 노사 갈등, 기후 위기, 세대 갈등, 빈부 격차, 세계 질서 변화 등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며 국민의 삶을 황폐화시키고 있다. 현대사회 위기의 특징은 복합성에 있다. 자유 시장 논리라는 한 가지 사유 방식으로는 복합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경쟁와 이윤의 시장 논리는 물론 환경, 교육, 행복, 자유, 정의, 복지 등의 가치를 고려하는 ‘종합적 사고’를 해야 우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국민의힘은 책임 정치를 완수하기 위해 앞에서 언급한 종합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역량 있는 전문가와 정치인이 정부 업무에 투입될 수 있도록 매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은 국민의힘을 권력 투쟁을 넘어 책임 정치를 실천하는 책임 정당으로 인정할 것이다. 마키아벨리나 베버가 강조한 것처럼 정치에서는 ‘결과’가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 정치는 정당을 통해 실현되기 때문에 집권당은 책임지고 현실을 개선하는 ‘성과’를 내야 한다. 국민은 성공적인 결과만을 인정한다. 정치에서는 인정받기 위한 투쟁이 펼쳐진다. 국민의힘은 대통령이 성공할 수 있도록 실현 가능한 정책과 역량 있는 인재를 최대한 지원해야 한다.
 
민주당은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의 패배에 직면하여 향후 8월 28일 치르는 새로운 당대표 선거로 떠들썩하다. 박지현 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의 당대표 출마 자격을 두고 논란도 있었다. 친문계 수장인 전해철 의원과 홍영표 의원은 불출마 선언을 했다. 당내 세력 구도가 이재명 의원을 중심으로 재편된 상황, 새롭고 젊은 당대표를 원하는 시대적 요청, 문재인 정부에서 정권 재창출을 하지 못했다는 정치적 책임론 등이 불출마 결정에 작용했을 것이다. 97그룹이 잇달아 당대표 출마 선언을 하고 있지만 친문과 친명 간 당내 권력 투쟁은 여전히 물밑에서 진행 중이다. 따라서 이재명 의원이 향후 당대표가 되면 균형 감각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하고 성찰하는 신중한 정치인으로 거듭나야 하며 정치의 대의와 철학을 새롭게 규정해야 한다.
 
민주당은 정치라는 맥락에서 보면 위기다. 선거라는 ‘대권력 투쟁’에서 두 번이나 졌기 때문이다. 국가를 운영할 정치 권력을 잃어버린 것 자체가 위기라고 볼 수 있다. 선거에서 국민에세 외면받았다는 것은 민주당의 정치인과 정책이 국민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주당은 인적 쇄신과 정책 쇄신이 필요하다. 당내 정치 세력의 당대표를 향한 ‘소권력 투쟁(small power struggle)’은 향후 ‘대권력 투쟁’의 초석이 되기 때문에 중요하다. 하지만 ‘소권력 투쟁’이 단지 권력 투쟁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무엇을 위해 권력을 사용할 것인가” “인적 쇄신을 어떻게 할 것인가” 등 정치적 방향성을 수립해야 한다. 현실성 있는 국가 비전과 역량 있는 정치인이 없는 정당은 정치적 희망이 없다.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중요한 것이 있다. 마키아벨리나 베버가 언급했듯이 정치에는 일반적 윤리와 다르게 나름의 고유한 윤리가 있다는 점이다. 정치는 행위의 선한 동기를 따지는 영역이 아니다. 권력 투쟁의 영역이자 권력을 사용하여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책임 윤리의 영역이다.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소통’이 중요하다. 따라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서 타협하며 최선의 해결책을 찾아 실행하는 것이 정치의 핵심이다. 윤리적 선함은 정치가 아니라 개인의 양심에서 발현되어야 한다. 정치에서는 선하고 바른 것을 가리는 윤리 논쟁보다는 문제 해결이라는 결과를 위해 다양한 의견이 자유롭게 개진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정치인의 자질로 도덕성이 요청되는 것을 보면 정치와 윤리의 결합은 국민 정서에 부합한다. 그래서 정치와 윤리의 일치를 말하는 정치 철학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예컨대 서양의 플라톤(Plato)과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동양의 공자(孔子)와 맹자(孟子)의 정치적 사유가 그렇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올바름의 덕성(arete)과 실천적 지혜(phronesis)를 지닌 사람이 정치인이 되어야 하고, 정치는 정의와 행복이라는 공동체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소통의 과정이었다. 공자와 맹자에 따르면 정치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명제하에 각자의 덕을 통해 사회적 덕이 구현되는 '덕치(德治)'였다.
 
플라톤이 말한 것처럼 지식, 품성, 역량이 뛰어나고 카리스마가 넘치는 철인(哲人)이 정치인이 되면 그러한 정치인을 지닌 사회에는 행운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 현실에서 그러한 정치인을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민주주의에서 정치 권력은 매번 바뀌고 선출된 정치 권력은 평범한 국민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하는 곳이면 대부분 그러한 현상이 나타난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서는 마키아벨리나 베버가 말한 정치에 내재된 고유한 윤리를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치에서는 애정관계, 가족관계, 친구관계, 사업관계 등에서 적용되는 일반적 윤리와는 다른 특수한 윤리가 적용된다. 정치의 윤리적 고향은 선한 동기에 따라 행위하며 결과에 대해서는 상관하지 않는 절대 윤리에 있지 않다.
 
정치에서 획득되는 '권력(power)'의 특성이 정치의 윤리적 고향을 규정한다. 정치 권력에는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서 ‘폭력적 강제력’이 주어진다. 폭력적 강제력이란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사람들의 의사에 반하여 무엇인가를 관철하는 힘을 의미한다. 그래서 정치 권력은 폭력적 강제력에 잠복해 있는 “악마적 힘”과 관계를 맺게 되며 그 수단이 초래하는 결과에 책임질 수밖에 없다. 이는 책임감 있는 파우스트(Faust)가 악마인 메피스토(Mephisto)의 손을 잡는 것과 비슷하다. 정치에서는 선한 것에서 선한 것만이, 악한 것에서 악한 것만이 나오지는 않는다. 정치에서는 현실의 개선이라는 결과(성과)만 인정될 뿐이다. 이를 위해 정치에서는 철저한 자기 통제력에 기초한 균형 감각, 신중함, 인내심, 책임감이라는 특수한 윤리가 요청된다.
 
두 정치인을 상정해보자. 높은 도덕성을 지닌 것처럼 ‘보이는’ 정치인과 문제 해결 역량이 뛰어난 것처럼 ‘보이는’ 정치인이 있다고 치자. 국민은 어떤 정치인을 선택할까? 국민은 도덕성과 문제 해결 역량을 다 원하지만 최근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의 경향을 볼 때 문제 해결 역량이 뛰어난 것처럼 ‘보이는’ 정치인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국민도 개선된 현실에서 살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당도 결과주의의 책임 윤리를 따라야 한다. 정당은 도덕적으로 올바른 정책이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한 최선의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이상적인 정치는 올바름과 연동되지만 현실적인 정치는 문제 해결과 연동된다. 이상적인 정치는 실패하지만 현실적인 정치는 성공한다. 선함과 올바름을 따지는 순수 절대 윤리는 개인의 양심과 종교에 맡겨두자. 정당은 철저히 정치의 책임 윤리로 접근하며 문제 해결을 위해 권력을 사용해야 한다.


장준호 필자 주요 이력

 △독일 뮌헨대(LMU) 정치학 박사 △미국 UC 샌디에이고 객원 연구원 △경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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