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이후 최대 재건축'이라고 불리는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공사가 중단된 지 석 달째 접어들고 있다.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은 기존 5930가구를 철거하고 1만2032가구를 새로 짓는 사업이다. 완공되면 송파구 헬리오시티(9510가구)를 넘어 단일 단지로는 한국 최대 규모의 아파트가 된다.
반쯤 올라가다 만 건물 곳곳에는 아직도 ‘유치권 행사 중’이라는 현수막이 붙어있다. 공사비 5596억원 증액을 둘러싸고 재건축 조합과 시공사업단 간 갈등이 극한으로 대립한 결과물이다.
지난 4월 아주로앤피는 둔촌주공 사태를 자세히 다룬 바 있다. 그 후 둔촌주공 재건축 공사를 둘러싸고 어떤 사건들이 펼쳐졌는지 아주로앤피가 다시 점검해봤다.
◆타워크레인 해체 위기 넘겼지만 8월이 고비
지난 5월 말 둔촌주공 재건축 공사 일부 구간에서 타워크레인 해체를 위한 사전작업이 시작됐다.
시공단은 공사가 중단된 이후 타워크레인 등 장비 대여료와 용역비같이 현장 관리를 위해 지출하고 있는 돈이 월 200억원에 달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타워크레인의 해체는 공사가 장기간 파행됨을 의미한다. 공사현장에 설치된 타워크레인은 총 57대다. 모두 해체하기까지 석 달 정도가 걸리고, 해체한 타워크레인을 다시 설치하려면 수개월이 더 필요해서다.
현재 타워크레인 해제작업은 중단된 상태다. 해체 당시 재건축 조합이 “서울시의 중재안을 수용한다”는 의사를 피력한 바 있고, 시공사업단도 “타워크레인의 해체를 7월로 연기하겠다”고 답했기 때문이다.
◆사업비 대출 8000억원 확정, 기존 대출 상환
지난 6월 15일 NH농협은행 등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의 대출금융기관 모임인 대주단이 “오는 8월 만기 예정인 사업비 대출 연장을 해주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둔촌주공 재건축 사태는 또 한 번의 시련을 맞고 있다.
둔촌주공 재건축 조합은 지난 2017년 대주단으로부터 사업비 7000억원을 대출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시공사업단(현대건설·HDC현대산업개발·대우건설·롯데건설)이 위 대출금에 대한 연대보증을 해줬다.
당초 조합원 규모(6000여명)와 사업에 차질이 생길 경우 서울시내 부동산 시장에 미칠 영향 등을 고려해 대주단이 대출 연장을 해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서울시의 중재에도 불구하고 조합과 시공사업단이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한 데다 조합원 간 균열 조짐이 나타나면서 사태가 장기화할 조짐이 보이자 대주단이 대출 연장 불가를 결정한 것이다.
대주단 한 관계자는 “대주단이 대출 연장 심사를 위해 조합에 관련 서류를 요구했지만, 조합이 일부 서류를 제출하지 않았다. 서류 미제출만으로도 대출 연장 불가 사유에 해당하는데, 공사 중단에 따른 리스크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대주단 17개사에서 사업비 대출 연장과 관련한 회의를 벌였지만 반대하는 회사가 더 많았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시공사업단 측도 “사업비 대출 만기인 오는 8월 24일 이후로 더이상 대출 보증을 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둔촌주공 조합원은 8월까지 1인당 1억원이 넘는 돈을 갚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그러던 중 지난 14일 김현철 조합장이 조합원들에게 공지문자를 보내 "조합원 여러분께서 걱정하고 있는 8월23일 (만기예정) 사업비 7000억원의 만기상환 방법이 마련됐다“고 밝혔다.
그는 "그동안 조합은 시공사가 연대보증하고 있는 기존사업비 7000억원을 상환할 수 있는 새로운 대주단 구성에 전력을 다해 왔다"며 "하지만 사업비 대출 추진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순간 외부세력의 방해로 일을 그르칠 수도 있기 때문에 최종확정될 때까지 보안을 유지하면서 대출협의에 최선을 다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14일) 최종적으로 주관 금융기관으로부터 사업비 대출 관련 확정통보를 받았다"며 "대출 예정금액은 8000억원이며 대출조건은 총회 책자에 상세히 기술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조합은 이날 새로 구성된 대주단의 명단 등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정상화위원회 “현 집행부 해임 절차 착수”
조합 내부 갈등도 격해지고 있다.
지난 6월 ‘둔촌주공 조합 정상화 위원회(이하 ’정상위‘)’가 “현 조합 집행부에 대한 해임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시공사업단과 불필요한 분쟁을 일으켜 공사 중단이 장기화되고 있는 것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겠다는 취지다.
정상위는 기존 집행부에 반발해 만든 조합원 모임이다.
그렇다고 바로 집행부를 해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조합장 및 임원 해임 안건을 발의하려면 전체 조합원 10분의1의 동의를 얻어야 총회를 소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총회에서는 조합원 6123명 중 과반수가 참석해 이 중 절반 이상이 찬성해야 현 집행부를 해임할 수 있다.
지난 6월 정상위 한 관계자는 “해임발의서 목표 수량을 모두 받았다. 사업비 대출 만기일 전까지 조합원 해임 절차를 완료하겠다”고 전했다.
또 정상위는 6월 17일 강동경찰서에 김현철 조합장을 포함한 집행부와 자문위원 10여명을 상대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 위반과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장을 제출하기도 했다.
정상위는 “(집행부가) 협력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도정법을 어기고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으로 498여억원 상당의 재산상 이득을 취득하게 해 조합원에게 손해를 가했다”며 고발장을 제출한 이유를 설명했다.
앞서 국토부와 서울시는 “지난 5월 23일부터 약 보름간 진행한 조합 운영 실태점검 결과 총회 의결 없이 조합원에게 부담이 될 계약을 체결하고, 정비기반시설 건설과 마감재 변경 등 공사비 증액 사실을 통보하지 않는 등 도정법 제45조 위반 사안이 발견됐다”고 지적한 바 있다.
도정법 45조를 위반할 경우 같은법 제137조 제6호에 따라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특히 조합 임원의 경우 도정법을 위반해 벌금 100만원 이상을 선고받으면 퇴임 사유가 된다.
이에 대해 현집행부는 “위법 사실이 없다며 적극적으로 소명하겠다”는 입장이다.
◆둔촌주공 재건축 조합장 사의
상황이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던 중 둔촌주공 재건축 조합장이 사임했다.
지난 17일 김현철 둔촌주공 재건축 조합장은 “오늘부로 조합장직을 사임한다”는 내용의 문자를 조합원들에게 단체 발송했다.
김 조합장은 “현 조합집행부가 모두 해임된다면 조합공백 상태를 피할 수 없게 돼 조합에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제가 결심을 하고자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오로지 6000조합원의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지만 이제 제 역량에 한계를 느끼고 있다. 시공단에게 부탁한다. 제 사임과 자문위원 해촉을 계기로 사업정상화에 박차를 가해주시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조합 집행부의 한 관계자는 "조합장 사퇴가 워낙 급작스러운 일이라서 배경 설명도 어려운 형편"이라며 "주초에 긴급 이사회를 개최해 대행 체제를 출범시키고, 시공사와의 협의는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성실하게 진행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정상위 측은 이날 "계속 얘기가 흘러나왔듯 조합장이 사퇴를 발표했다"며 "조합원에게 가장 피해를 주는 방법인 시간 끌기 방식으로 사퇴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다른 논란이 됐던 부분도 어떠한 해명이나 사과 없이 집행부 공백을 얘기하며 현 조합 집행부의 자리보전만 신경 쓰고 있다. 해임 발의서에는 사퇴한 조합장을 포함해 집행부 전원이 포함돼 있다. 해임 절차는 계속 진행되며 일정을 서두르겠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19일 조합 이사진은 긴급 이사회를 개최해 박석규 재무이사를 조합장 직무 대행으로 선임했다.
박 직무대행은 이날 조합원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시공사업단은 어제 인사를 나누는 과정에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적극적인 대화를 약속했고, 중재에 나섰던 서울시와 강동구청 관계자도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지원을 다짐했다”고 말했다.
한편 시공사업단에선 이번 사태와 관련해 내달 23일 사업비 7000억원 만기가 도래하면 대위변제에 나서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공사업단 한 관계자는 “사업비 대출과 관련해선 시공단이 연대책임을 지는 것이기 때문에 내달 23일 만기가 도래하면 대위변제에 나서는 것”이라며 “다만 이와 별개로 공사 재개는 유치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진행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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