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선의 시시비비] '기자 선배' 정진석의 잘못된 기억 소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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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선 기자
입력 2022-11-12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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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하는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사진=연합뉴스]


“선배, 정말 노무현 정부 때 기자실 대못질을 했어요? 믿을 수가 없어요.”
 
지난 10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의가 끝난 뒤 정진석 비대위원장과의 백브리핑에서 현타(현실타격)가 온 듯한 후배의 질문이었다. 여당 출입 말진(막내 기자를 뜻함)들은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라고 했고, 팩트체크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고 당혹스러운 분위기를 전했다.
 
만날 국회에서 기자들을 만나면 “라떼는 말이야(나 때는 말이야)”를 입에 달고 사는 구 한국일보 기자, 현 여당 당대표(비대위원장은 임시 당대표)의 말은 이러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에는 청와대 출입기자를 출입정지시킨 적도 있고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에는 기자실 대못질을 한 사례도 있다. 그런 것들이 바로 언론 탄압이고 통제다.”
 
동남아 순방을 예고한 대통령실이 지난 9일 밤 MBC를 꼭 집어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불허한다는 소식에 한 말씀 해달라고 하자, 돌아온 그의 입장이었다. 언론계와 야권은 MBC 전용기 불허 방침에 즉각 ‘언론 탄압’이라고 강하게 반발했지만, 정 비대위원장은 이전 정부의 과거사를 꺼내 맞불을 가한 것이다. 어리둥절한 후배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당시 기억소환이 절실해졌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노무현 정부 당시 기자실 대못질은 ‘없었다’. 참여정부의 마지막 해인 2007년 말진 신분으로 과천정부청사를 오가던 때였기에 똑똑히 기억한다. 당시 정부와 언론계(더 정확히는 각 부처 출입기자단에 포함됐던 주요 언론사)는 참여정부가 추진한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1월 국무회의에서 “기자들이 기자실에 죽치고 앉아 담합하며 기사 흐름을 쥐고 있다”고 발언한 후, 각 부처 기자실 통폐합과 기자들의 공무원 개별 취재를 금지했다.
 
이에 따라 2007년 10월 11일 정부는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등 11개 주요 부처 기자실의 인터넷과 일부 전화선을 끊었다. 당일 밤에는 기자실 출입문을 아예 봉쇄했고 12일부터 기자들의 출입도 막겠다며 ‘자물쇠’를 채웠다. 이를 두고 조선, 동아 등 보수 언론에서는 ‘기자실에 대못질을 했다’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이를 마치 실제 대못질을 한 것처럼 기억돼, 지금도 정진석 비대위원장의 뇌리에 박혀있나 보다.
 

정부청사 기자실이 폐쇄된 2007년 10월 12일 서울 도렴동 외교통상부청사에서 출입기자들이 청사로비에서 기사작성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노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대담, 기자회견, 생방송 토론회 등 언론과의 소통에 그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다. 그 유명한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라는 말이 나온 ‘평검사와의 대화’가 대표적이다. 비록 대통령이 전 국민 앞에서 공개 쪽팔림을 당할지라도, 그는 정부의 과오를 가감 없이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특정 기자들만 소속된 출입기자단 중심의 폐쇄적인 취재 시스템과 언론이 또 다른 권력으로 군림하고 있다는 게 노 전 대통령의 인식이었다.
 
그가 원한 것은 소수의 특정한 언론사가 독점하는 ‘그들만의 기자실’이 아닌, 인터넷신문·1인 미디어 등 매체의 크기와 연혁에 상관없이 언론의 제 역할만 한다면 ‘누구나 찾는 기자실’이었다. 그러려면 기존 출입기자들만 사용할 수 있던 폐쇄적인 기자실을 없애야 했다. 하지만 기존 출입기자단 시스템에 익숙했던 주요 언론사 기자들은 매일 청사 중앙로비와 기자실 앞에 깔개를 깔고 의자를 책상 삼아 기사를 송고하며 항의했다.
 
대신 기자라면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통합브리핑실과 기사송고실이 생겼다. 출입 절차도 간소화됐다. 한국기자협회, 한국신문협회, 한국인터넷기자협회 등 기자 소속과 신분을 보장하는 서류만 제출하면 통합브리핑실(부처별 소속은 아예 없앴다) 출입증을 손쉽게 발급, 취재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됐다. 온라인 브리핑도 활성화됐다. 그 덕에 정부청사가 세종시로 옮겨진 후에도, 서울에 있는 기자들이 실시간으로 정부 부처 브리핑을 참관할 수 있는 지금의 시스템이 갖춰지게 됐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의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번복됐고, 대선 이후 지금의 출입기자단 중심의 기자실 체제로 원상복구돼 ‘미완의 개혁’에 그쳤다.
 
정 위원장이 소환한 또 다른 기억 하나, 김대중(DJ) 정부에서 청와대 기자 출입정지 조치가 있었나? 그렇다. 있기는 했다. 더 정확히 말하려면 DJ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의 기억 소환이 필요하다.
 
박 전 원장은 한마디로 정 위원장의 주장에 대해 “사실 왜곡”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10일 페이스북을 통해 “DJ 때 청와대 출입기자단 엠바고를 모일보 기자가 깨, 출입기자단 자체 회의에서 결정, 100일간 출입정지를 시켰으나 70일 만에 출입 허용을 기자단 자체적으로 결정했다”며 “정진석 비대위원장께서 사실을 직시하고 정정 바란다”고 했다. 한마디로 당시 출입정지 상황은 청와대가 임의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출입기자단이 엠바고 파기에 따른 페널티 결정을 내린 것이다.
 
박 전 원장 덕에 DJ 때 기억을 하나 더 소환해본다. 2000년 6월 15일 남북정상회담 당시 북측은 KBS, 조선일보가 남북정상회담 사실 등을 사전 보도한 것을 빌미로, 양사 기자의 취재를 불허하니 평양에 오지 말라고 통보를 해왔다. 당연히 난감해진 것은 청와대다. 하지만 DJ는 “내가 가고 나를 취재하는 양사 기자를 누가 오지 말라 합니까. 태우세요. 정상회담을 못하더라도 언론의 취재 자유를 보장합시다”라고 말했다. 결국 DJ의 노벨평화상 수상까지 이끈 ‘6·15 남북정상회담’ 취재를 모든 언론사가 무사히 마쳤다.
 
또 다른 기자 선배인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의 최근 행태도 기막혀 사족을 달아본다. 대통령실 첫 국정감사장에서 ‘웃기고 있네’ 필담을 주고받은 것은 더 언급할 가치가 없을 정도로 민망하다. 결국 김 수석은 9일 오후 대통령실 일정브리핑 도중 출입기자들 앞에서 “(국회 운영위원회 국감장에서) 부적절한 처신을 한 데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하며 울먹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5시간 뒤인 당일 밤 대통령실은 MBC의 동남아 순방 전용기 탑승 불허 방침을 통보했다. 귀를 의심한 MBC 출입기자는 김 수석에게 즉각 항의했고 철회를 요구했다. 하지만 김 수석은 “기자단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MBC 탑승 거부는 바뀌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김 수석의 울먹임 사과는 결국 ‘악어의 눈물’이었다는 일부 기자들의 조소가 놀랍지 않은 이유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지난 9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룸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일정을 설명한 뒤 ‘웃기고 있네’ 필담 파문에 대해 “부적절한 처신을 한 데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하며 울먹이고 있다. [사진=대통령실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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