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권 재분류에 역풍 맞은 보험사
26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보험사 3분기 RBC비율이 일제히 하락했다. RBC비율은 보험사의 재무건전성을 측정하는 지표다. 보험업법에서는 100% 이상을 유지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당국은 150% 이상을 권고하고 있다.
회사별로 보면 KB손해보험 RBC비율은 전년 동기 대비 0.5%포인트 하락한 181.3%를 기록했고 푸르덴셜생명은 250.2%로 105.5%포인트 떨어졌다. 신한라이프 RBC비율도 31.4%포인트 하락한 267%로 나타났으며 DGB생명은 113.1%로 전년 대비 91%포인트 감소했다. NH농협생명은 가장 큰 감소 폭인 115.7%포인트를 기록하며 107%로 하락했다.
이에 보험권은 올해 자본성증권 발행 등 공격적인 자본 확충을 통해 재무건전성 개선에 속도를 냈다. 재분류한 채권은 최소 3년간 재변경할 수 없어 자본 확충이 유일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 자금시장 경색 여전······내년 '제2 유동성 위기' 맞나
그러나 올해 하반기 흥국생명이 신종자본증권에 대한 조기상환권(콜옵션)을 연기하면서 보험권에 유동성 우려가 증폭되며 자금 조달이 원활하지 못했다. 레고랜드발 사태 등으로 흥국생명이 5년 전 발행한 5억 달러 규모 외화채 상환을 연기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나중에 태도를 번복하긴 했지만 2009년 우리은행 이후 13년 만에 조기 상환 연기를 공식화한 금융권 첫 사례여서 이목이 쏠렸다. 이후 DB생명도 2017년 발행한 300억원 규모 신종자본증권에 대한 콜옵션을 연기했다.
여기에 퇴직연금과 과거 대량 판매했던 저축보험 상품 만기가 이달 도래함에 따라 보험권에선 최대 30조원 이상 자금 이탈을 예상하는 등 내년 '제2 유동성 우려'도 커지고 있다. 지난 상반기 말 기준 보험사 퇴직연금 자산은 100조원(생명보험 71조원, 손해보험 34조원) 규모며 이달 자금이 30%가량 한꺼번에 빠져나갈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과거에 팔았던 저축상품 만기도 이달에 겹쳤다. 보험권은 10년 전에 보험차익비과세 제도가 바뀌기 전 절판마케팅을 통해 저축보험을 대량 판매했다. 10년 이상 유지해야 고객들이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어 10년째인 올해 대규모 자금 유출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보험권은 환매조건부채권(RP) 매도 확대 등 유동성 확보에 총력을 기울였다. RP는 금융사가 일정 기간 후 금리를 더해 다시 사는 것을 조건으로 파는 채권이다. 대표적 단기자금 조달 방식으로 꼽힌다. 신용 경색 때문에 장기채권시장에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금융당국이 시장 안정을 위한 장기 채권 매도 자제를 요청하면서 RP 매도가 자금 조달 수단으로 적극 활용됐다. 지난해 월평균 RP 매도액이 5조6000억원이였지만 올해 9월 이후에는 매월 전년 월평균치 대비 2배가량 관련 수치가 늘었다.
단기 차입 한도 확대도 추진했다. 해당 한도를 늘린다고 해서 당장 돈을 빌린다는 뜻은 아니지만 유사시를 대비해 미리 마이너스통장을 개설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삼성생명은 최근 단기 차입 한도를 3조6000억원, 롯데손해보험은 3조3000억원으로 기존보다 10배 이상 상향 조정했다.
송미정 한국기업평가 책임연구원은 "올해 보험권에서 자금 유출이 크게 증가한 반면 자금 확보 여건은 악화돼 자금수지 불균형이 커진 상황"이라며 "당분간 자금시장 경색 국면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각 보험사의 유동성 리스크를 면밀히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