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이 넘은 장기 미제 사건인 '제주 변호사 피살사건'의 공범으로 지목된 사람의 살인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김모씨(57)의 살인 혐의에 징역 13년6월을 선고한 원심을 무죄 취지로 파기하고 사건을 광주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피고인의 제보와 진술이 형사재판에서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하고 공소사실을 입증할 만한 신빙성을 갖췄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은 간접증거만 있는 상태서 진술의 주요 부분과 맞지 않는 객관적인 사정이 드러났다면, 섣불리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할 수 없다고 분명히 했다.
전직 조폭인 김씨는 1999년 8∼9월 누군가로부터 "A 변호사(당시 45세)를 손 좀 봐줘야겠다"는 지시와 현금 3000만원을 받은 뒤, 조직원 손모씨와 함께 A 변호사를 살해하기로 공모한 혐의로 기소됐다. 김씨는 손씨와 A변호사를 미행했고 구체적인 가해 방식을 상의한 것으로 조사됐다.
범행은 그해 11월 5일 새벽에 이뤄졌다. 손씨는 흉기로 A 변호사의 가슴과 복부를 세 차례 찔러 숨지게 했고, 범행을 지시·의뢰한 김씨는 A 변호사의 사망 사실을 보고받고 도피 자금을 건넸다. 그러나 두 사람이 검거되지 않으면서 이 일은 장기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검찰은 공모자 중 일부만 범행 실행을 해도 '공모공동정범' 법리를 김씨에게 적용해 살인죄를 물어야 한다고 봤다. 지난해 2심은 1심 무죄 판단을 깨고 김씨의 살인 혐의를 유죄로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김씨의 방송 진술이 객관적 사실과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A 변호사를 혼내주라'고 최초 지시했다는 폭력조직 두목은 당시 수감 중이었고, 살인을 직접 실행한 손씨를 어떻게 도피시켰는지에 관한 진술은 모순되거나 일관성이 없다고 부연했다.
대법원은 범죄 실현 과정에서 이들의 지위·역할이 구체적으로 입증돼야 하는데 손씨는 이미 숨진 상태이므로 김씨의 말을 믿을 수 있는지 애초에 확인할 수도 없다고 했다. 아울러 대법은 "김씨의 방송 진술은 어디까지나 '상해를 공모했는데 일이 잘못돼 A 변호사가 숨졌다'는 취지고, 피해자의 상처를 보면 이들이 살인을 위해 공격했다기보다는 겁을 주려고 한 것으로도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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