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보험사들이 한때 단기 현금 확보에 효자 상품으로 여겼던 저축성보험 운영을 놓고 딜레마에 빠졌다. 최근 관련 보험금 지급이 몰리고 해지가 늘자 미운 오리 새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IFRS17(새국제회계기준) 제도하에선 팔수록 늘어나는 부채로 인식돼 치명적인 유동성 리스크 요인으로 치부되고 있다. 하지만 생보 특성상 저축성보험을 아예 팔지 않을 수 없어 고민이 깊어지는 상황이다.
7일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생보사 누적 해약환급금이 25조3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2%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금융연은 보험해약 가운데 상당 부분을 저축성보험이 차지하고 있으며 같은 기간 저축성보험 누적 해약환급금은 18조5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7% 늘어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저축성보험은 보험료를 일정 금액 납부하고 만기 때 총 납부액과 이자가 더해진 환급금을 받는 상품이다.
금융연은 경제 저성장 국면과 고금리·고물가 기조가 지속되면서 ‘생계형 보험해약’의 주된 대상자인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비교적 보험료가 비싼 저축성보험 해지가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인플레이션에 따른 보험금 가치 하락 등도 배경으로 꼽았다. 실제 지난해 12월 기준 소비자물가상승률은 같은 해 1월 3.61%에서 1년 만에 1.43%포인트 상승한 5.04%를 기록했다.
지난해 저축성보험 지급액이 60조원에 육박해 전년 대비 1.5배 증가하기도 했다.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2017년(30조9402억원)부터 2021년(39조6661억원)까지 저축성보험 지급액은 30조원대를 유지했으나 지난해 11월 말 기준 59조3428억원에 달했다. 보험권은 10년 전 보험차익비과세 제도가 바뀌기 전 저축성상품을 대량 판매했는데 10년 이상 유지해야 고객들이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어 10년째인 지난해와 올해 관련 부담이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올해 도입된 IFRS17 제도하에서 저축성보험의 효력 저하는 더 두드러지고 있다. 저축성보험은 보험사가 가입자에게 약속한 이율로 이자를 내줘야 해 보험금이 부채로 인식된다. 따라서 보험사 부채 평가 방식이 기존 원가에서 시가 기준으로 변경된 IFRS17에서는 저축성보험은 팔수록 부채가 늘어나는 구조다.
전문가들은 저축성보험이 추후 유동성 우려를 촉발하는 요인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안철경 보험연구원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보험권 유동성 리스크는 결국 10년 전 절판 마케팅으로 판매했던 저축성보험 만기 도래로 인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석호 금융연 연구위원은 "지난해 1~3분기 생보사 운용자산이익률은 각각 3.19%, 3.31%, 3.22%를 기록하며 3% 초반대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 일부 보험사는 5%를 상회하는 고금리 확정형 저축성상품을 출시하고 있다"며 "추후 역마진과 건전성 저하 문제가 초래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생보업계 관계자는 "IFRS17 도입에 따라 저축성 대신 보장성으로 상품 포트폴리오를 변화시키고 있다"며 "통화 긴축 완화 기대감을 가지고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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