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경제연구원 미시제도연구실은 10일 발간한 'BOK경제연구'의 '은행위기와 벤처캐피털이 기술혁신에 미치는 영향(Banking Crisis, Venture Capital and Innovation)' 보고서에서 "은행위기 중에는 벤처캐피털과 같은 대안적 금융 수단의 역할이 확대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신용대출 등이 어려워지는 '은행위기'가 발생했을 때 통상 기업의 기술 혁신 활동이 위축된다. 이때 은행위기는 한 국가의 은행 부문이 많은 수의 디폴트(채무불이행)를 경험하고, 갑작스럽고 심각한 수준의 은행 계좌 인출이 발생해 기업·금융기관의 채무불이행이 급증하는 시기를 뜻한다. 앞서 우리나라는 과거 1997년 외환위기에서 이같은 은행위기를 경험한 바 있다.
실제 미시제도연구실의 분석에 따르면 외부금융에 의존적인 산업일수록 은행위기 발생 시 혁신 활동이 위축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위기시 각 산업의 외부금융 의존도가 한 단위 증가할 때마다 특허 출원 수와 인용 수가 평균적으로 각각 35.9%, 11.5% 감소했다. 특허 독창성(다양한 분야를 인용할수록 높음)과 일반성(다양한 분야로부터 인용 받을수록 높음) 점수도 각각 17.6%, 26.6% 감소했다.
실제 벤처캐피털이 발달한 곳일수록 은행위기의 부정적 영향이 완화됐다. 한 국가의 벤처캐피털 지수는 7점 만점에 평균 3.786으로 나타났는데, 이보다 1.458점 이상 높을 경우 은행위기의 특허 출원 수에 대한 부정적 충격이 완전히 상쇄됐다. 인용 수는 평균보다 0.848점, 독창성은 평균보다 0.963점, 일반성은 평균보다 1.701점 이상 높을 때 은행위기 충격이 상쇄됐다. 특히 이같은 완화 효과는 지적재산권 제도와 민주주의적 정치제도가 확립된 국가일수록 보다 더욱 컸다.
보고서에서 분석한 한국 벤처캐피털 투자 수준은 1980~2012년 특허 기록을 이용했을 때 세계 8위 수준을 보였다. 하지만 2020년 기준으로 보면 미국 특허청(USPTO) 기준으로 볼 때 미국과 일본 다음으로 3위에 올랐다. 전 세계 모든 특허를 기준으로 보면 중국·미국 일본에 이어 4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으로는 미국·이스라엘·캐나다·영국에 이어 5번째 순위를 보였다.
성원 한은 경제연구원 미시제도연구실 과장은 "보고서 분석 기준으로는 한국의 벤처캐피털 수준이 평균보다 낮게 나타났지만, 최근 기록으로 보면 투자 수준이 OECD 국가 평균보다 높았다"면서 "대안적 역할을 하기에 충분한지는 따로 분석해봐야겠으나, 과거보다 한국에서 벤처캐피털이 대안적 역할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벤처캐피털 시장이 확대된다고 하더라도 정치적·제도적 뒷받침 없이는 효율적인 투자지원이 어려울 수 있다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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