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가 번영의 시대에 진입했다. 필자의 가까운 인도 친구들의 씀씀이를 보거나 자비로 유학 온 인도 학생들을 보면서 실감한다. 인도 재무부 장관 니르말라 시타르만(Nirmala Sitharman)은 2023년을 독립 100주년(2047년)이 되는 해에 인도가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도록 긴 여정을 시작하는 원년으로 선포했다. 2월 1일 2023~2024년 인도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한 말이다. “이번 예산은 ‘아므리뜨 깔(Amrit Kaal)'의 첫 번째 예산입니다. ··· 본 예산은 인도@100(독립 100주년)을 위해 그려진 청사진을 기반으로···.” '아므리뜨 깔'이라는 용어는 인도 전통 베다 점성술에서 유래했으며 일종의 성서로운 황금시대를 의미한다. ‘아므리뜨 깔’은 완전히 새로운 노력을 시작하기에 이상적인 순간을 뜻한다. 지금 일을 시작하면 나중에 큰 혜택을 받게 된다는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 지금이 인도가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 새로운 노력을 시작할 최적기라는 것이다. 시타르만 장관은 앞으로 인도가 가장 번영할 시대를 맞이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아므리뜨 깔'은 인도가 자립하고 모든 인도주의적 의무를 다하는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다고 했다.
인도 재무부 장관의 이번 예산안 발표 연설에는 인도가 선진국이 될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이 묻어났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도 지난해 독립 75주년 기념 연설에서 새로운 인도를 건설할 성서로운 시대가 도래했다고 ‘아므리뜨 깔’을 언급했다. 요즘 모디 총리를 비롯한 인도 고위 관리들의 연설은 물론 필자가 자주 접하는 인도 학자들의 말에서도 번영의 시대 인도에 대한 확실한 자신감이 과거와는 다르게 느껴진다. 인도 사람들이 이런 자신감을 갖는 데는 크게 '성장의 인도'와 '강한 인도' 두 가지 배경이 있다.
성장의 인도
2014년 모디 정부 출범 이후 ‘성장의 인도’를 추구한 덕분에 인도는 지난해 식민지배를 받았던 영국을 제치고 세계 5위 경제 대국이 되었다. 인도가 일본과 독일을 추월하여 세계 3위 경제 대국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인도는 경제성장 촉진을 위해 사회기반시설 투자를 대폭 늘리고 일자리 창출과 생산성 향상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인도를 선진국으로 진입시키기 위한 ‘아므리뜨 깔’은 기술 중심의 지식 기반 경제를 구축하겠다는 비전을 담고 있다.
코로나 19와 미·중 패권 경쟁이 격화되면서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따른 기회를 포착하여 인도는 적극적으로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생산연계 인센티브(Production Linked Incentive·PLI)'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 덕분에 세계적인 기업들이 앞다투어 인도에 진출하고 있다. 애플은 2025년까지 아이폰 시설 25%를 중국에서 인도로 이전하겠다고 발표했다. 대만 반도체 기업 TSMC도 인도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우리 기업들도 인도 투자를 늘릴 계획이다.
세계적인 기업들이 인도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이유는 단지 중국의 불확실성 때문만은 아니다. 올해부터 인도가 세계 최대 인구 대국이 되었다. 세계 최대 인구 대국이라는 것은 단순히 내수시장이 크다는 것만을 의미한 것은 아니다. 젊은 생산 인구가 많다는 것이다. 2021년 기준 15~64세 생산 가능한 인구가 68%에 달할 정도로 인도는 젊은 국가다. 바로 이 때문에 모디 총리가 ‘Make-in-India’ 정책을 추진하면 서방세계에 내세운 슬로건이 ‘3Ds’다. 인도에 투자하면 여러분의 공장에서 열심히 일할 저임양질의 풍부한 Demography(노동력), 그 생산품에 대한 수많은 Demand(수요), 그리고 우리는 Democracy(민주주의)라고 외친 것이다. ‘아므리뜨 깔’에 진입한 인도로 기업들의 러시가 시작되고 있다. ‘성장의 인도’가 건설되고 있다.
강한 인도
2014년 출범한 모디 정부는 ‘성장의 인도’를 바탕으로 ‘강한 인도’ 건설을 추구해왔다. 이를 위해 국방 예산을 대폭 증액하여 2019년 기준 인도는 국방비 지출 규모에서 미국·중국에 이어 세계 3위로 자리매김했다. 강한 인도 건설을 위해 모디 정부는 군 현대화 작업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무기 구입도 다변화했다. 전통적으로 러시아에서 70%의 무기를 수입해왔으나 미국, 이스라엘, 프랑스와 같은 비전통 수입국 비중을 늘려왔다. 우리나라에서도 K9 자주포 100문을 수입하기도 했다. 국방 현대화에 자신감이 붙은 모디 정부는 중국과의 국경 분쟁에서도 과거 정부와 달리 강경 입장을 표출하고 있다.
올해도 강한 인도 건설 정책은 계속돼 국방 예산을 전년 대비 12%나 증액했다. 달라진 점은 인도 국방부도 독립 100주년을 향한 ‘아므리뜨 깔’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무기와 장비 75%를 국산품으로 구매하기로 했다. 강한 인도 건설을 위해 자주국방을 강화하고 무기 수출국으로 발돋움하려는 조치다. 2월 6일은 인도 자주국방 정책에 중요한 이정표로 기록되었다. 인도가 처음 자체 건조한 비크란트(INS Vikrant) 항공모함에서 인도가 독자 개발한 테자스(Tejas) 경전투기가 이착함 테스트에 성공한 것이다. 이로써 자주국방에 대한 인도의 자신감은 한층 높아졌다.
강한 인도 건설은 외교정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인도 외교정책의 근간은 전략적 자율성 확보를 위해 사안별 동맹을 추구하는 신비동맹 정책이다. 국익을 위해 미국·중국·러시아 등이 참여하는 QUAD, BRICS, SCO 등 소다자협의체에 적극 참여하면서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국과 유럽연합 등 서방세계가 대러시아 제재를 강화해 나가지만 인도는 러시아에서 원유를 저렴하게 수입하고 있다. 작년 10월 기준 러시아는 인도 최대 원유 수출국이 되었다. 전통적인 수입국인 사우디아라비아나 이라크를 제치고 러시아에서 가장 많은 원유를 수입한 것이다. 중국을 견제해야 하는 미국으로서는 인도·태평양 전략의 중요한 한 축인 인도를 제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인도가 러시아에서 S300 방공시스템을 수입해올 때도 미국은 별다른 제재를 취하지 못했다. 이렇게 인도는 미·중 패권 경쟁과 우크라이나 전쟁 속에서도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면서 강한 인도를 건설해 나가고 있다. 모디 정부의 이러한 외교정책을 인도 국민, 특히 젊은 층이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인도 독립 75주년을 맞아 ORF가 19개 도시 18세에서 35세 젊은 층 5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 77%가 모디 정부의 외교정책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디 총리의 리더십으로 한층 강해진 인도의 위상은 올해 G20 의장국으로서 더욱 높아질 것이다.
한국은 번영의 시대 인도를 맞이할 준비가 돼 있나
그렇다면 우리는 ‘성장의 인도’ ‘강한 인도’를 맞을 준비는 돼 있는가? 사실 그동안 우리는 인도를 등한시해온 면이 없지 않다. 남북한이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 정세와 미국과 중국에 치우친 대외경제 협력의 특수성을 고려한다면 일면 이해가 된다. 한반도 주변 4강에 중점을 둔 우리 외교의 지평을 넓히고자 지난 문재인 정부는 신남방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신남방정책의 내면을 살펴보면 ‘신아세안 정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세안에 편중된 정책이었다. 이렇다 보니 신남방정책으로 한국과 인도 관계가 특별히 발전했다고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성과가 없었다.
현 윤석열 정부는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하면서 인도가 포함된 남아시아 지역과의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인도와 체계적인 협력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인도 전문가 풀이 필요하다.
문제는 이를 뒷받침할 국내 인도 전문가가 극히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국내에서 인도를 가르치고 연구하는 대학은 소수다. 중국 관련 학과는 거의 모든 대학에 있지만 인도 관련 학과는 다섯 손가락이 남을 정도다. 이마저도 최근 대부분 통합되거나 폐과를 염두에 두고 신입생을 뽑지 않고 있다. 정부 산하 연구기관 중에서도 인도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곳도 거의 없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인도를 전공한 신진 학자가 갈 곳이 마땅치 않다.
인도의 중요성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데 우리는 거꾸로 가고 있다. 인도의 정치·경제·외교안보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전문가는 일당백은커녕 일당억도 모자랄 정도로 부족한 현실이다. 이렇게 해서 어떻게 번영하는 인도와 협력을 추구하면서 국익을 챙길 수 있겠는가? 인도가 지금의 중국처럼 더 부강하고 커지기 전에 하루빨리 인도 전문가를 육성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2023년은 인도가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 긴 여정을 시작한 원년이고 한·인도 수교 50주년이다. 바로 지금이 대한민국에서 인도 전문가를 체계적으로 육성할 '아므리뜨 깔'이 아닌가 한다. 그때그때 사안이 생길 때만 인도 전문가를 찾는 일회성 관심으로는 번영의 시대에 진입한 인도와 협력을 끌어내는 것은 한계가 있다. 미·중 간에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우리로서는 인도가 대안이다.
김찬완 필진 주요 이력
▷인도 델리대학교 정치학 박사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인도연구소 소장 ▷인도연구소 HK+ 사업단장 ▷<남아시아연구> 편집위원장 ▷Editor-in-Chief, Journal of India and Asian Studies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