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의 인색한 예탁금 이용료 지급이 부메랑으로 돌아올 조짐이다. 기준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한 와중에도 예탁금 이용료율을 찔끔 인상한 반면 정작 증권사가 고객 예탁금을 예치해 벌어들인 수익은 크기 때문이다. 꾸준히 문제로 지적돼 왔지만 그럼에도 ‘0%대’가 대부분인 예탁금 이용료율에 금융당국이 결국 칼을 빼 들게 만들었다.
22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예탁금 이용료율을 공시한 국내 증권사의 1억원 미만 기준 평균 이용료율은 0.37%로 나타났다. 1%를 넘는 곳은 신한투자증권(1.05%), KB증권(1.03%), 토스증권(1.00%)에 불과했다. 미래에셋증권(0.75%), 다올투자증권(0.55%), NH투자증권(0.50%) 등이 뒤를 이었다.
가장 낮은 이용료율을 적용하는 곳은 유진투자증권이다. 이 회사의 투자자 예탁금 이용료율은 0.10%였다. 이 밖에 현대차증권(0.20%), 하이투자증권(0.20%), 하나증권(0.25%), 키움증권(0.25%), 대신증권(0.30%), 한화투자증권(0.40%) 등 대부분이 0%대다.
예탁금은 투자자들이 주식매매를 위해 증권사 계좌에 맡긴 대기성 자금이다. 증권사들은 예탁금을 한국증권금융에 예치하고 받은 수익금에서 인건비 등을 뺀 뒤 투자자에게 이용료를 지급한다. 증권사 리테일부문에서는 예탁금 이용료가 주요 수익원 중 하나이기도 하다.
지난해부터 기준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해왔지만 예탁금 이용료율은 요지부동이었다. 국내 기준금리는 지난해 1월 1.25%에서 7월 2.25%, 올해 1월엔 3.50%까지 높아진 상태다. 1년 만에 225bp(1bp=0.01%포인트) 올랐다.
이 기간 은행 예금금리는 급등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현재 은행 상품별 12개월 만기 최고 우대금리는 우리은행 우리 첫거래 우대정기예금 4.00%, 농협은행 NH고향사랑기부예금 3.90%, 하나은행 하나의정기예금 3.60%,국민은행 KB Star 정기예금 3.60%, 신한은행 쏠편한 정기예금 3.55%다. 은행 정기예금 금리는 지난해 11월 5%대까지 치솟기도 했다.
이용료율을 높인 증권사들은 찔끔 인상에 그쳤다. 지난 17일부터 새 예탁금 이용료율을 적용하기 시작한 유안타증권은 50만원 이상 구간에 대한 이용료율을 기존 연 0.20%에서 0.30%로 10bp 올렸다. 지난달 8일부터 이용료율이 변경된 대신증권도 50만원 미만은 0.05%에서 0.1%로, 50만원 이상은 0.1%에서 0.3%로 소폭 인상했다.
투자자 예탁금도 줄어드는 추세다. 올해 초 50조8339억원으로 출발한 투자자예탁금 규모는 7거래일 만에 7조원 넘게 빠지기도 했다. 코스피가 2480선을 회복한 2월 초 51조원까지 늘었지만 지난 20일 46조원까지 다시 감소했다. 전년 동기와 비교하면 가파른 감소세가 더욱 체감된다. 지난해 초 투자자예탁금은 71조7323억원이었다. 1년 만에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증권업계는 예탁금 이용료율은 기준금리가 아닌 한국증권금융 수익률을 기준으로 산정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증권금융의 지난해 12월 신탁운용 수익률은 3.348%에 달했다. 지난해 1월 1.19%였던 수익률은 7월 2%대, 11월 3%대를 돌파하며 매월 우상향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국증권금융의 신탁운용 수익률이 높아진 건 기준금리가 상승한 영향이다. 신규 가입한 예금금리, 신규 매입한 환매조건부채권(RP)과 기업어음(CP) 등 금리가 오르면서 수익률도 높아졌다.
금융당국과 정치권에서도 이 같은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다. 고객에 제공하는 이용료율은 낮은 반면 이를 통해 얻은 수익은 과도하다는 것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양정숙 의원실에 따르면 최근 4년간 증권사들은 고객이 맡긴 예탁금으로 벌어들인 수입은 1조8705억원에 이른다.
금융감독원은 예탁금 이용료율에 대해 일부 증권사는 기준금리 인상을 적절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해 이용료 산정 기준을 개선하고 통일된 공시 기준을 마련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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