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국내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을 위한 해법으로 당초 유력하게 거론됐던 제3자 변제 방식을 정식 채택했다. 대법원은 2018년 강제징용 피해자 14인이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3건에서 모두 원고 측 손을 들어줬지만 이들 피고 일본 기업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근거로 해당 재판 결과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결국 이들 기업에 대한 한국 정부의 강제 집행 등이 지연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나온 차선책이 제3자 변제라는 분석이다. 대법원 선고 이후 국내 법원은 한국 내 미쓰비시와 일본제철 자산 등에 대한 강제 매각 명령을 내렸지만 이들 기업이 국내 법원에 재항고하면서 대법원 판단을 앞두고 있다.
정부는 행정안전부 산하에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재단(재단)’을 설치하고 해당 재단이 대법원이 선고한 3건에 대한 확정 판결에 따라 판결금과 지연이자를 지급할 방침이다. 과거 한·일 청구권 협정 등에서 수혜를 입은 포스코 등 국내 기업 16곳이 재단 자금을 출연할 예정이다. 2018년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은 피해자가 지급받아야 할 판결금은 지연이자를 포함해 약 40억원에 이른다.
다만 원고 중 일부 피해자가 이번 정부 대책에 반발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법적 분쟁 가능성이 남아 있어 향후 피해자들과 이를 세부적으로 조율할 필요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우선 제3자 변제와 관련해 민법 469조에 따라 채권자인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제3자인 재단 측 판결금을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하면 해당 변제는 유효하지 않게 된다. 이때 재단이 배상금을 공탁할 수 있지만 대신 피해자들은 공탁 대신 법원에 강제 매각을 통한 변제를 요구할 수 있다. 또 이런 형식의 공탁이 유효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대한변호사협회 일제피해자인권특위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래형 변호사(법무법인 로고스)는 “채권자가 수익의 의사 표시를 하지 않아 인수인의 공탁을 거부한다면 변제 자체도 불가능할 수 있다고 해석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또 이번 대책이 제3자 및 채무자와 함께 채무를 보유하는 병존적 채무 인수 형태로 진행된다면 피해자의 동의가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법적으로 따져볼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박 변호사는 “외교부가 말한 병존적 채무 인수도 피해자의 동의가 있어야만 변제가 유효할 것으로 보인다. 민법 539조에 따라 채권자 수익의 의사 표시가 존재할 때에만 병존적 채무 인수가 유효하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와 피고 일본 기업 간에 채무 인수 계약이 체결되면 정부안에 동의하지 않는 피해자와 유족들이 이에 대한 무효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변제의 주체인 제3자의 법적 지위 역시 향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재단이나 재단에 자금을 출연한 국내 기업들이 제3자 변제의 주체인지 여부가 향후 법적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제3자 변제가 가능한 제3자는 채무자가 변제하지 않음으로 인해 법적 문제가 발생하는 ‘법률상 이해관계’에 한하기 때문이다.
한 민사 전문 변호사는 “결국 어떤 형태건 제3자 변제가 진행되기 위해서는 피해자 동의를 얻어내는 것이 중요한 관건인 만큼 확정 판결이 난 피해자뿐만 아니라 현재 소송을 진행 중인 피해자들을 납득시킬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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