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수지가 1년 넘게 적자 행진을 이어가는 가운데 중국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에 걸었던 기대감도 식어 가고 있다.
정부는 전체 수출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의 경기 회복세가 본격화하면 반전을 꾀할 수 있다고 강조하지만, 시장의 전망은 엇갈린다.
중국만 믿고 있다가는 1.6%에 불과한 경제성장률 전망치조차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론이 확산하는 중이다.
올해 무역적자 200억弗 넘어서…벌써 작년의 절반
13일 관련 부처에 따르면 우리나라 무역수지는 지난해 3월부터 올해 2월까지 12개월째 '적자 수렁'에 빠져 있다. 무역적자가 12개월 이상 지속된 건 1995년 1월부터 1997년 5월까지 연속 적자를 낸 이후 25년여 만에 처음이다. 반도체 수출 부진과 대중 수출 감소가 직격탄이 됐다. 반도체 수출은 제품 가격 하락과 재고 증가 등으로 전년 동기 대비 44억 달러(-41.2%)나 급감했다.
더 심각하게 봐야 하는 건 대중 수출이 지난달까지 9개월째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으로의 수출이 줄어든 이유 역시 반도체 업황 악화에서 찾을 수 있다. 대중 수출은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 이상이라 무역수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수출은 줄어드는데 수입은 늘면서 무역 역조가 심화하는 양상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교란과 에너지 대란이 수입액 증가의 주요 원인이다.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등 에너지 수입 규모는 전년 동기 대비 19.7% 늘었다.
올 들어 1월 무역적자는 역대 최대인 127억 달러로 집계됐고, 2월에는 53억 달러로 전월 대비 절반 이상 감소했다. 이날 관세청이 발표한 3월 1~10일 잠정치까지 더하면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적자 규모가 227억7500만 달러까지 불어난 상태다. 지난해 전체 무역적자(478억 달러)의 절반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中 리오프닝 지나친 기대 금물…과거 절반 수준
정부는 여전히 중국의 리오프닝 효과에 기대를 거는 눈치다. 미국발 고강도 긴축과 러·우 전쟁 지속 등 우리 경제를 둘러싼 악재가 산적한 상황이라 중국 외에는 딱히 긍정적 변수로 꼽을 만한 게 없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중국 경제가 살아나더라도 우리 경제가 누릴 수혜가 예전만큼 크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 점점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특히 중국이 내수 중심의 성장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 대중 수출 품목은 반도체, 석유화학 등 중간재가 대부분이라 특수를 누리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기준 전체 우리나라의 대중 수출에서 중간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83.6%에 달한다.
한국은행도 중국 리오프닝에 따른 파급 효과가 제한적일 것으로 내다봤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과거 중국 경제가 1% 성장하면 한국도 0.2~0.25% 올랐는데 이제는 그 효과가 절반 정도에 그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최근 중국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5% 안팎으로 제시했다. 이는 중국이 1994년 국내총생산(GDP) 기준 성장률 목표치를 발표하기 시작한 이래 가장 낮은 수치다.
중국의 저성장 기조는 상호 의존성이 높은 우리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최근 경제동향 보고서에서 "중국 리오프닝의 실물경기에 대한 긍정적 영향이 가시화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중국 정부가 첨단 제품의 자국 생산 확대를 추진하는 등 공급망 재편에 속도를 내면서 수출 구조가 바뀌고 있는 점도 우리에겐 불리하다. 중국의 자체 생산 확대 정책은 결국 한국 제품 수입을 줄이겠다는 의미인 탓이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중국의 리오프닝에 따른 한국의 수출 개선 효과가 2.7%에 그칠 것으로 봤다. 인도네시아(4.8%), 인도(4.2%), 태국(3.9%)보다 낮은 수준이다.
한 투자은행(IB) 업계 전문가는 "올해 한국 성장률 전망치가 대략 1.6% 정도인데 중국 변수 반영률이 너무 높은 분위기"라며 "중국만 바라보고 있다가는 1%대 성장률 달성도 어려울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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