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이후 급락한 각종 채권 금리가 시차를 두고 국내 시중금리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통화 긴축 속도조절론이 힘을 얻는 데 따른 나비효과로 국내 금융채 수익률과 은행의 각종 여·수신상품 금리가 하락했다.
16일 은행권에 따르면 SVB 파산 직전인 10일 이후 이날까지 국내 주요 시중은행의 예금금리가 20bp(1bp=0.01%포인트) 안팎의 하락 폭을 보였다. 은행권 관계자는 “예금상품은 은행채를 비롯한 각종 수치에 따라 매일매일 새로 산정된다”며 “은행채가 단기간에 유의미한 변화 폭을 보인다면 예금을 비롯한 수신 금리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KB국민은행의 대표 예금상품 중 하나인 ‘국민수퍼정기예금’에 적용되는 금리는 지난 10일 3.76%에서 13일 3.81%로 소폭 상승했다가 15일 3.61%로 20bp 하락했다. 하나은행 ‘하나의 정기예금’도 지난 10일 3.80%에서 15일 3.60%로 적용 금리를 20bp 낮췄고, 우리은행 ‘원플러스 예금’도 같은 기간 3.85%에서 3.70%로 15bp 하향 조정했다. 원플러스 예금은 16일 금리를 0.07%포인트 추가 인하해 3.63%까지 떨어진 상태다.
이처럼 SVB 파산 이후 시중은행의 수신 금리가 떨어진 이유는 미국 현지에서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통화 긴축 정책의 속도 조절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15일(현지시간)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FedWatch)에 따르면, 시장은 연준이 이달 말 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을 50.5%로 보고 있다. 금리 동결 가능성은 지난 10일까지만 해도 0%로 전망됐다.
미국이 금리를 동결하거나 0.25%포인트만을 인상하는 ‘베이비 스텝’에 그칠 것이란 전망은 미국 국채금리 하락으로 이어졌고, 이런 흐름이 시차를 두고 국내 금융채와 시중은행 여·수신 금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국내 시중은행 여·수신 상품에 큰 영향을 미치는 금융채(무보증·AAA) 1년물 금리는 SVB 사태가 발생하기 직전인 지난 10일 3.895%에서 15일 3.692%로 20.3bp 낮아졌다. 주말을 빼면 3영업일 만에 약 0.2%포인트에 달하는 금리 변동이 발생한 것이다. 특히 SVB 사태 후 첫 거래일인 12일에는 충격을 고스란히 받으면서 15.2bp 급락했다.
이와 같은 흐름은 시중은행 여신금리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대출상품 역시 은행채 금리와 연동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일부 자금조달비용지수(COFIX·코픽스)와 연동된 주택담보대출 상품 금리 역시 인하될 것으로 보인다. 코픽스가 국내 8개 은행이 취급한 예·적금 등 수신상품 금리와 연동돼 움직이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연준이 금리를 급격하게 올리면서 실리콘밸리 기술기업들의 자금흐름이 막힌 게 SVB 파산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며 “한은의 기준금리 동결에 이어 주요국이 긴축 속도를 늦출 가능성이 커지면서 금리 변동을 유심히 지켜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