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자신을 위해 일했던 사람이다. (이재명 대표가) 도의적인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그게 인간이고 그게 사람이다.” “이 대표와 같은 인물이 당대표라는 사실에 당원으로서 한없는 부끄러움과 참담함을 느낀다.” “어떻게 인간이 저럴 수가 있나 하는 분노감이 든다.”
각각 더불어민주당 윤영찬 의원과 김해영 전 의원,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가 지난 10~12일 페이스북 등에서 한 말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경기도지사와 성남시장 재직 시절 자신의 비서실장을 지낸 전모씨 자살에 대해 보인 태도를 비판하는 내용이다. 이 대표는 전씨 자살에 “그게 왜 이재명 탓이냐, 검찰 탓이지”라고 했다.
전 비서실장 죽음에 "왜 내 탓이냐?"
전씨는 성남FC 불법 후원금 사건과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았다. 쌍방울그룹 대북 송금 사건과 경기주택도시공사 직원 합숙소 사건에도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전씨가 그렇게 된 원인은 단 하나다. 그가 이 대표의 경기도지사와 성남시장 재직 시절 비서실장을 지냈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대표 관련 사건에 연루돼 이름이 오르내릴 일 자체가 있을 수 없다. 전씨의 죽음은 그가 이 대표의 과거 비서실장 출신이라는 사실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 대표는 검찰 탓을 하기 전에 원초적으로 자기 때문에 생긴 전씨 비극에 인간적 자책감을 표하는 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게 보통 사람들의 상식적 기대이고 예상이기도 하다.
검찰 탓만 하고 인간적 자책감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 이 대표 행동은 ‘저게 아닌데~’ 하고 고개를 가로젓게 만든다. 인간에게는 본능적 정의 감각 또는 도덕심이라는 게 있다. 도덕이나 정의가 무엇인지 모르는 코흘리개 애들조차 뭔가 이상하거나 부당하다고 느껴지면 “그건 안 돼”라고 말한다. 이게 본능적 정의 감각이고 도덕심이다. 사람들은 그 정의 감각이나 도덕심에 따라 상대방의 행동에 상식적 기대나 예상을 하게 된다. 그 기대나 예상에 어긋난다고 여길 때 ‘저게 아닌데~’ 하고 고개를 가로젓게 된다. 이런 마음이 합쳐져 민심이 된다. 윤영찬, 김해영, 진중권 세 사람의 말은 그런 민심을 반영한 것으로 봐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 대표가 ‘저게 아닌데~’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 것은 전씨 죽음에서만이 아니다. 자신에 대한 체포 동의안이 국회 표결에서 부결된 직후 보인 행동도 그런 사례다. 이 대표 체포 동의안을 표결할 때 민주당 내 반발표가 최소 31표나 나왔다. 체포 동의안에 찬성하는 표였다. 민주당 지도부는 표결을 앞두고는 “압도적 다수결로 부결시킬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러나 결과는 딴판이었다. 동의안 찬성표가 반대표보다 1표 더 많이 나왔다. 찬성이 과반에 이르지 못해 부결되는 바람에 이 대표는 가까스로 체포를 면했다.
이쯤 되면 이 대표는 ‘반발표를 던진 의원들이 왜 그렇게 많이 나왔는지, 이들이 바라는 게 무엇인지 살펴보고 성찰하겠다’고 한마디 할 수도 있었다. 빈말로라도 그리 할 수 있었다. 이게 보통 사람들의 상식적 기대이고 예상이다. 그러나 이 대표는 “검찰의 영장 청구가 매우 부당하다는 것을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확인했다”며 “당내와 좀 더 소통하고 많은 의견을 수렴해 힘을 모아 윤석열 독재정권 검사 독재에 강력하게 맞서 싸울 것”이라고만 했다. 보통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기대하고 예상하는 행동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적지 않은 국민들이 ‘저게 아닌데~’ 하고 고개를 가로젓지 않았을까 한다.
체포 동의안 집단 반발표에도 '자기 성찰' 언급 없어
이 대표가 전씨 죽음이나 민주당 내 집단 반발표 발생에 대해 ‘저게 아닌데~’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언행을 한 데는 나름대로 계산과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다. 인간적 자책감을 표하거나 집단 반발표 발생을 중시하는 언행을 하면 수세에 몰려 정치적 입지가 약해질 것을 우려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계산이나 판단은 당장은 이 대표 입지를 지켜줄 수도 있다.
그러나 길게 보면 손해가 될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이 대표가 진심으로 전씨 죽음에 인간적 자책감을 표하고 집단 반발표 발생을 성찰하겠다고 했다면 일반인들이 이 대표를 보는 눈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이 대표가 상식에 부합하는 도덕심이나 자기 성찰 능력을 갖고 있다고 여기게 되고 이는 이 대표에 대한 인간적 신뢰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다. 인간적 신뢰만큼 큰 정치적 자산이 있을까?
그런데 이 대표는 거꾸로 행동함으로써 보통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느끼는 정의 감각이나 도덕심은 안중에 없다는 이미지만 더 키워줬다. 형수 욕설 파문 등으로 이미 이 대표의 인성을 불신하던 사람들에게는 그 불신을 더욱 강화하고, 중간적 입장에서 판단을 유보했던 사람들에게는 ‘역시 안 되겠군’ 하는 새로운 확신을 심어줬을 가능성이 크다.
이 대표가 보통 사람들의 도덕심이나 정의 감각을 존중했다면 체포 동의안 처리 과정에서 국민 마음을 크게 얻을 수도 있었다. 이 대표는 2021년 대선 후보 때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 폐지를 공약했다. 불체포 특권은 헌법에 규정돼 있다. 헌법을 바꾸지 않고는 폐지할 수 없다. 불체포 특권을 공약으로 내세운 것 자체가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일이었다. 이 대표도 모를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체포 특권 폐지를 공약했다. 국회의원이 어떤 비리와 불법을 저질러도 체포되지 않을 수 있는 특권을 누린다는 것은 일반 국민들의 정의감이나 도덕관념에는 맞지 않는다고 보고 이런 국민 마음을 노려 공약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대표는 정작 자기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돼 체포 위기에 놓이자 불체포 특권 폐지 공약을 뒤집었다. 이 대표는 ‘상황이 달라져서’라고 했다. 구속영장 청구는 윤석열 검사 정권이 자기에게 없는 죄를 뒤집어 씌워 정적을 제거하려는 음모라고 했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는 불체포 특권을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이 대표는 검찰 수사를 “소설”이라고 주장했다. 아무런 범죄 근거가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법원은 구속영장을 당연히 기각할 것이다. 그런 만큼 이 대표는 더욱더 자신 있게 영장실실심사에 응해야 앞뒤가 맞는다. 하지만 이 대표는 그러지 않았다.
만약 이 대표가 불체포 특권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하고 법원 영장실질심사에 나왔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는 국민적 영웅이 됐을 수도 있다. 구속될 위험을 감수하고 자기 공약을 지켰다는 그 하나만으로도 그는 국민에게 박수를 받았을 것이다. 이 대표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반대로 행동함으로써 유리하겠다 싶으면 실현 의지도 가능성도 없는 공약도 쉽게 하고, 불리할 때는 그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그렇고 그런 사람이라는 인식만 사람들 뇌리에 심어줬다. 불체포 특권 폐지 공약이 얄팍한 선거용임을 스스로 인정한 꼴이 되고 말았다.
보통 사람들의 도덕심과 다른 행태
정치 세계에서는 목적을 위해서는 도덕성이나 정의는 무시해도 된다는 게 진리처럼 말해지기도 한다. 속임수와 거짓말, 위선, 말 뒤집기, 뻔뻔스러움 같은 비도덕적 수단을 써도 문제 없다고 한다. 이런 생각을 마키아벨리즘이라고 한다. 16세기 이탈리아 정치가 마키아벨리의 철학이라는 뜻이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정치에서는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할 도덕을 그대로 따를 수는 없다고 한 것은 맞다. 정치인이 도덕적이고 양심적이기만 해서는 정치를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중대한 국가 이익이 걸려 있는 상황에서, 비도덕적 수단이 불가피할 때’만 그렇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비도덕적 수단을 일삼는 게 중대한 국가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불가피해선인가? 대부분은 자기 개인 이익을 위해서다. 그것도 도덕적 수단이 가능한 상황에서 그런다. 이 대표는 예외라고 할 수 있나?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로 대선에 출마하게 되자 2016년 9월 25일 "트럼프는 왜 대통령이 돼선 안 되는가"라는 사설에서 이렇게 썼다. ”트럼프는 위험한 선동, 대중 영합, 거짓말과 터무니없는 주장, 인신 공격, 말 바꾸기, 남의 약점 악용하기 등 사려깊은 정치보다는 자기 이익만 쫓는 언행을 일삼아 왔다. 트럼프 당선으로 정치가 크게 변하길 바라는 사람들은 트럼프가 어떤 사람인지 세심히 살펴봐야 한다. 기존 정치에 대항하는 개혁 정치인처럼 덫칠해진 부분을 정밀 검토해 봐야 한다. 잘못하면 백악관을 국민 전체의 이익보다는 자기 개인적 이익에 사로잡힌 사람에게 맡기게 된다.” 그러면서 이렇게 결론 맺었다. "미국 대통령은 미국 어린이 세대에게 롤 모델(role model·본받을 만하거나 모범이 되는 인물)이다. 트럼프의 품성과 사람 됨됨이는 과연 우리가 대통령들에게 바라는 인성이고 품성인가?"
뉴욕타임즈는 10월 16일 '오늘의 오피니언 편지'라는 논설실 명의의 글에서는 다시 한번 트럼프가 어린 세대의 롤 모델이 될 수 있는지를 물으며 이렇게 썼다. “어린 세대는 대통령 입에서 나오는 말이 허세나 빈정거림, 심지어 거짓말이 되는 걸 정상적인 일로 받아들인다." 트럼프 같은 인성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어린 세대들은 트럼프 같은 인성을 당연한 것처럼 배우게 된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뉴욕타임스가 제기한 질문을 이 대표에게도 던질 수 있다. ”이 대표 당선으로 정치가 크게 변하길 바라는 사람들은 이 대표가 어떤 사람인지 잘 살펴봐야 한다. 대통령은 자라나는 세대에게 본받을 만하거나 모범이 되는 롤 모델이 돼야 한다. 이 대표의 품성과 인성은 우리가 대통령에게 바라는 인성이고 품성인가?”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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