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5월11일은 입양의 날이다. 입양에 대한 이야기는 TV 등으로만 접했는데 최근 입양된 고모가 한국에 왔다.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40년 만에 가족을 찾은 '나의 고모' 이야기를 전한다.
1984년. 아버지가 14살 때 큰고모는 15살, 작은고모는 10살이었다. 할머니는 넷째 늦둥이를 임신 중이셨고 아버지와 고모들은 이 사실을 몰랐다. 당시 할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기울었고 가족들은 힘든 시기를 보냈다. 어려운 시기가 길어지면서 할머니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갑작스런 하혈을 하게 됐고 그 해 7월14일 달 수를 채우지 못하고 막내 고모를 출산했다.
9개월로 태어난 막내 고모는 바로 인큐베이터로 들어갔다. 할아버지는 다음날 '아이가 숨을 거뒀다' 소식을 할머니에게 전달했다. 할머니는 상심으로 크게 힘들어 하셨고 일주일 간 병원 입원 후 퇴원하셨다.
세월이 흘러 1998년 할아버지는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은 비밀을 간직하신 채 돌아가셨다. 의료보험이 가입 돼있지 않아 막대한 인큐베이터 비용을 부담할 수 없었던 할아버지는 경제적인 이유로 막내 고모의 해외 입양을 혼자서 결정했던 것이. 그렇게 할머니는 막내고모가 죽은 줄로만 알고 살아왔다.
2021년 가을, 아동권리보장원에서 '해외입양아가 친부모를 찾는다'는 몇 번의 편지가 집으로 왔다. 아버지는 아동권리보장원에 연락해 "가족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편지가 계속 오고 있다"고 회신했다. 그러다가 입양된 막내고모가 작년 재외동포재단 '2022 차세대 해외입양 동포대회' 에 참가 신청을 했단 소식을 알게됐다. 고모는 신청자 중 15명에 포함돼 한국에 일주일 동안 왔었고 가족을 찾기 위해 당시 입양 기관과 아동권리보장원까지 찾아갔다고 했다.
지난해 11월22일, 막내고모의 유전자 검사 결과 '일치' 소식을 들었다. 지난 2월 고모는 다시 한국에 찾아 40년 만에 가족을 만났다. 한국에서 5일 동안 가족들은 처음으로 쇼핑을 같이하고 속초 여행도 다녀왔다. 2월 12일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고모 김효선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A.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입양됐다는 것을 항상 알고 있었어요. 저의 미국 부모님은 항상 제 입양에 대해 개방적이었고요. 저는 20대 초반에 미국인 어머니가 제 입양 서류와 그들이 가지고 있던 모든 서류를 저에게 주셨어요.
Q. 입양 후 미국에서의 삶은 어땠나요?
A. 미국인 엄마와 아빠는 제가 어렸을 때 이혼했고 둘 다 재혼했어요. 저는 조지아에서 자랐지만, 뉴저지에 계신 아버지를 방문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는 잘 보살핌 받고, 사랑 받고, 안전하게 자랐습니다. 저는 소프트볼, 승마, 피아노를 치는 걸 좋아했고 친구들이 많았어요. 그리고 여행과 콘서트를 즐겼습니다. 조지아 로마에 있는 베리 칼리지에서 심리학을 공부했어요. 미국에서 삶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이었어요.
우리 마을에서 몇 안 되는 아시아계 미국인이 되는 것은 힘들기도 했어요. 저는 주로 미국 남부의 백인 지역에서 자랐는데 제 안전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지만, 저는 약간의 무지에 대처했어요. 저는 특정한 감정과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는 한국인 입양아들과 함께하는 지원 단체를 찾았는데 그게 도움이 되고 힐링이 됐죠. 내 인생의 모든 사건들이 오늘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제가 한국 가족과 재회할 수 있게 해줬습니다.
Q. 친가족을 찾게 된 이유와 찾기까지 과정이 어떻게 되나요?
A. 2021년 입양 이야기를 탐구하기 시작한 이후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많아요. 가족사에 대한 새로운 정보와 형제자매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배울 때가 기억에 남는데요. 이것이 제가 가족을 찾기 위해 더 적극적인 탐색을 하게 된 계기예요. 저의 첫 한국 방문은 문화적 경험과 가족을 찾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로 가득 찬 바쁜 한 주였습니다. 어떤 순간들은 그들이 영화에서 벗어난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리고 2022년 10월부터 가족과 제가 다시 만난 이후로, 특별하고 소중한 순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 모두에게 너무 감사해요. 언젠가는 더 많은 추억을 공유하고 싶어요.
Q. 가족을 찾기 위해 한국을 왔을 때 많은 입양인들과 함께 했다고 들었어요.
A. 저는 14명의 다른 국제적인 한국 입양아들과 함께 'Re Korea 2022'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우리는 덴마크, 독일, 프랑스, 노르웨이, 그리고 미국에서 왔습니다. 우리는 모두 매우 다른 배경과 성장을 가지고 있었지만 여전히 입양의 특정 측면과 그것이 우리를 어떻게 형성했는지와 관련이 있었어요. 우리는 전반적으로 한국 입양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됐고 우리의 개인적인 상황을 알게 되면서 서로를 지지하게 됐습니다. 해외입양인연대(G.O.A'L), 네스트 코리아(Nest Korea), 아동권리보장원 등 도움을 주신 다수의 기관 및 단체가 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후원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의 관심과 지원에 감사드립니다.
Q. 아직 입양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따뜻하지는 않잖아요. 사회에 바라는 것들이 있나요?
A. 입양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많은 오해가 있다고 생각해요. 많은 입양아들은 그들의 뿌리에 대한 더 많은 지식과 그들이 누구인지에 대한 더 많은 이해를 찾고 있어요. 그들은 경제적인 이익을 얻거나 가족들에게 고통을 주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많은 국제 입양아들은 그들의 가족력을 치유하고, 연결하고, 화해하기를 희망합니다.
Q. 마지막으로 지금도 희망을 가지고 가족을 찾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A. 저의 동료 입양인들에게, 저는 당신을 지지합니다. 당신이 찾고 있는 답과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힘든 날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시간이 걸릴 수도 있지만 희망을 가지세요. 힘들 때는 다른 사람에게 기대세요. 입양아 공동체는 도움, 지도, 지원을 제공할 수 있는 많은 도움이 되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입양에 대한 변화하는 관점과 더 많은 인식을 통해서 더 많은 가족들이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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