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스럽지만 우리나라는 국민에게 주권이 있는 민주주의 국가다. 민주주의의 속성인 ‘재정민주주의’란 국민들에게서 돈을 걷어서 국정을 운영하는 재정 과정 전반에 국민들의 의사가 반영돼야 함을 의미한다.
재정 권한에 대한 의회 통제의 강화 과정을 통해 발전해 온 민주주의 정치 제도는 결국 세금은 의회를 통한 법률에 따라 걷어야 한다는 ‘조세법률주의’와 정부 지출도 법률에 따르라는 ‘지출법률주의’ 원칙들에 기반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정부 수입과 지출을 아우르는 재정 과정 전반을 국세기본법, 국세징수법, 국가재정법 등 다양한 수입·지출에 관한 법률로 촘촘하게 규율하고 있다.
1년 단위로 나라 살림을 꾸려가는 우리나라 재정은 회계연도가 시작되기 전에 이뤄지는 예산 과정(행정부의 예산 편성과 국회의 예산 심의)과 한 해 동안 이루어지는 예산의 집행, 그리고 회계연도 종료 이후 감사원과 국회에 의해 이루어지는 결산 과정으로 이어진다.
그래서인지 해마다 예산안이 국회로 제출되는 9월이나 국가결산보고서가 감사원에 제출되는 4월이면 나라 살림살이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보다 뜨거워진다.
올해도 어김없이 나라 살림이 제대로 꾸려졌는지 점검하는 국가결산이 이뤄진다. 국가재정법에서는 '국가회계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회계연도마다 작성'된 국가결산보고서가 감사원 검사를 거쳐 국회에 제출되도록 정했다.
또한 국가회계법에서는 현금주의·단식부기에 따라 예산이 집행된 결과를 보여주는 세입세출결산보고서와 더불어 발생주의·복식부기 회계 기준에 따라 작성된 재무제표를 국가결산보고서에 포함시키도록 했다.
국가재무제표에는 한 해 동안 꾸려온 나라 살림을 보고하는 재정운영표와 ‘자산=부채+자본(또는 순자산)’이라는 회계등식에 따라 국가 재정의 현 상태를 보여주는 재정상태표 등이 포함된다.
여기서 부채는 미래에 짊어질 경제적 부담을 뜻하는 회계용어다. 국가재무제표상에는 차입부채와 충당부채 등으로 표시된다. 차입부채는 정부가 직접 돈을 빌려서 생긴 ‘나랏빚’, 즉 국가채무를 뜻하고 충당부채는 미래에 생길 것으로 예상되는 기타 재정 부담의 추정치를 의미한다.
이에 대해 국가가 책임지는 모든 재정 부담을 합쳐서 ‘나랏빚’으로 부르자는 주장도 있다. 고용주로서 정부가 은퇴하는 군인·공무원에 대해 책임지는 연금충당부채는 이미 국가재무제표에 포함되고 있지만 사립학교 교직원의 사학연금이나 정부 재정과 구분된 사회보험인 국민연금은 그렇지 않으니 문제라는 지적이다.
현 세대와 미래 세대 모두의 재정 수요를 감안해야 하는 정부로서는 차입부채이건 충당부채이건 모두 신경 써서 관리해야 하는 재정 부담임에는 다르지 않다. 특히, 연금충당부채 등은 미래 재정 지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조기 경보 기능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차입부채인 국가채무는 충당부채와는 달리 관리될 필요가 있다. 현 세대에서 세금을 걷지 않고 재정을 지출함에 따른 나랏빚 증가는 미래 세대의 조세 부담을 높여서 ‘세대 간 재정 형평성’에 흠집을 내기 때문이다.
또한 국·공채 발행 등은 정부가 자본시장을 통해 국가 경제에 직접 개입하는 양상이어서 보다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
그래서 국가재정법에서는 다른 부채 항목들과는 달리 국가채무에 관한 상세한 내용을 국가결산서에 포함시키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부가 빚을 냈으면 국회의 검사도 받으라는 것이다.
말은 힘이 세다. 특히 ‘빚’이라는 말이 갖는 무게를 생각하면 무엇을 ‘나랏빚’이라고 불러야 민주주의 국가의 나라 살림 관리에 도움이 될지는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이슈다.
다만 “다른 것은 다르게, 같은 것은 같게” 이름 붙여주는 것이 서로 간에 오해를 줄이고 보다 건설적인 논의를 해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 재정의 현 상태를 다른 나라와 비교하도록 해주는 국가부채라는 회계정보와 나랏빚의 민주적 통제를 위해 법률에서 요구하는 국가채무라는 재정 통계는 민주주의 국가가 나라 살림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데 각자 나름의 쓰임새가 있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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