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 '나쁜엄마' 배세영 작가가 말하는 나쁜엄마와 좋은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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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이 객원기자
입력 2023-07-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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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드라마 '나쁜엄마'는 자식을 위해서 악착같이 나쁜 엄마가 될 수밖에 없었던 엄마 영순(라미란 역)의 이야기다. 시청자들은 드라마 속 가족들을 통해 공감과 감동,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나쁜엄마'를 쓴 배세영 작가와 이 세상 엄마와 자녀들에게 그가 하고 싶은 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배세영 작가 [사진=드라마하우스스튜디오, 필름몬스터]

-작품을 썼을 때 생각했던 드라마의 이미지는 어땠고 실제 방영된 드라마를 보니까 어땠나.
요즘처럼 신선하고 재미있는 소재의 작품들을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에 이렇게 익숙하고 소박한 이야기가 과연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지 기획 단계부터 많은 분들의 우려가 있었어요. 때문에 지금의 결과를 예측하기가 힘들었고요.
 
한국인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정서가 가득한 작품이라 생각했는데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는 소식이 신기하고 반가웠어요. 이 모든 것이 앞선 K콘텐츠들의 흥행과 그에 대한 믿음에서 이어진 결과라고 생각하기에 그동안 좋은 작품들로 K콘텐츠의 위상을 높여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려요.
 
3년이라는 집필 기간보다 7주라는 방영 기간이 저에게는 더 길고도 의미있는 시간이었어요. 과연 저의 첫 드라마가 어떤 모습으로 시청자들을 만날 수 있을지 많은 걱정과 긴장 속에 한 주 한 주를 보냈고 매주 쏟아지는 박수와 질타 속에서 많은 위로를 받고 또 많이 성장했어요.
 
저희 '나쁜 엄마'에 보내주신 과분한 사랑과 관심, 그리고 수많은 응원과 가르침의 메세지에 감사드려요.    

-나쁜 엄마를 쓰기로 결심했던 계기는 뭔가.
 처음 나쁜엄마는 영화 시나리오로 기획 됐어요. 당시 제가 검강검진에서 암 의심 소견을 받고 3개월 후 있을 재진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남겨질 아이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으로 가득했을 때에요. 마침 남편이 동물약품 회사에 재직하고 있었을 때라 돼지 농장을 함께 여러차례 방문했던 적이 있었는데 '어미돼지는 28일 동안만 새끼 돼지와 함께 할 수 있어서 그 기간 동안 돼지의 모든 습성을 가르치고 떠나야 한다'는 말을 듣고 마치 어미돼지의 삶이 그 당시에 제가 처한 상황 같다고 느꼈어요.
 
길고 짧은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 어찌보면 사람은 모두가 시한부 인생이고, 대부분의 부모는 자식을 남겨두고 먼저 세상을 떠나야 합니다. 즉 부모라면 누구나 '영순'과 같은 처지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와 세상의 모든 부모는 자식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떠나야 할까요. 만약 그 자식이 몸도 정신도 성치않다면요. 도움을 청할 가족 하나 없다면요. 바로 이러한 질문에서 '나쁜엄마'가 시작됐어요.
 
-작가님께서 생각하는 나쁜 엄마와 좋은 엄마의 기준은 뭔가.
좋은엄마와 나쁜엄마를 나눌 수 있는 정형화 된 기준은 없다고 생각해요. 좋은 사랑, 나쁜 사랑이 없듯이 말이죠. 아무리 자식입장에서 좋은 엄마였다고 말해도 엄마는 결국 자신이 나쁜 엄마였다고 말 할 거에요. 좋은사람 나쁜사람은 보편적으로 나눌 수 있어요. 하지만 엄마라는 두 글자가 붙는 순간 좋고 나쁘다는 개념이 모호해 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나쁜 엄마의 영어식 제목이 '더 굿 배드 마더(The good bad mother)'에요.   

-'나쁜엄마'를 통해서 담고 싶었던 메시지는 뭔가.
희망을 얘기하고 싶었어요. 넘어져야만 하늘을 볼 수 있는 돼지처럼 부모님이 죽어 남편의 소중함을 알았고, 남편이 죽어서 자식의 소중함을 알았고, 자식이 아파서 자신의 소중함을 알았고, 자신의 죽음으로 이웃의 소중함을 알게 된 영순이처럼  한 가지를 뺏어가면 그 자리에 채워지는 희망이 있다는 것이요. 시련과 고난속에서야 찾아지는 그 희망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작품을 쓰면서 스스로 울고 웃고 위로 받았던 대사가 있나.
'이따 만나' 라는 대사요. 안녕은 왠지 끝인 것 같아서 늘 '이따만나' 하고 해식이 인사를 했다며 '이따만나, 이따만나. 그렇게 되뇌다 보면 진짜로 이따가 만나질 것만 같아서 설레고 좋았어' 라고 영순이 말을 하거든요. 그리고 그날 밤 영순이 눈을 감자 강호가 '이따 만나'라고 대답합니다. 죽음이 관계의 끝이 아니라는 위로를 느끼는 장면이 아닌가해요.
 
-모든 엄마들이 자식을 남겨두고 떠나야 되잖아요. 그렇다면 세상을 떠나기 전 아이들에게 어떤 인생을, 어떤 태도를 어떻게 가르쳐야 될까.

저희 아버지께서 항상 당부하셨던 말씀이 있어요. 정말 자식을 사랑한다면 물고기를 잡아주지 말고 낚시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요 저는 이 말씀이 부모가 가져야 하는 가장 올바른 태도라고 생각해요.
 
영순의 마음도 정확히 이와 같아요. 강호에게 끝까지 보살펴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혼자서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려고 한 것이죠. 부모뿐 아니라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해야 할 역할과 임무기도 해요.
 
-부모, 자식 역할은 뭐라고 생각하나.
부모는 자식이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독립적으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양육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자식은 한 사회의 구성원이 돼 부모님이 더 이상 걱정하지 않도록 해드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독립적으로 살아가기 힘들어질 수 밖에 없는 연로한 부모님을 잘 보살피는 것이 도리이자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이 세상 모든 자녀들과 부모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저희 나쁜 엄마를 통해 부모와 자식의 서로에 대한 이해와 화해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자식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자식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물어보고 응원과 격려를 해주세요. 마지막 영순의 대사를 인용하고 싶습니다.

"인생이 참 신기하죠. 한 가지를 뺏어 가면 그 자리에 분명 한 가지를 채워 주어요"

넘어져야 하늘을 보는 돼지처럼 힘든 상황이 되어야만 보이는 희망이 있어요. 어떤 상황에서든 좌절하지 말고 함께 희망을 찾아가면 좋을 것 같아요.
 
-작가님을 찾는 전화가 많아졌다고 들었어요. 사람들이 작가님을 선택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해요. 저를 선택해 주시는 이유는 오직 하나라고 생각해요. 제가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진심에 함께 공감을 하시기 때문일 것 같아요. 흥행이나 시청률에 연연하지는 않지만 앞으로 더 많은 책임감과 겸손함으로 집필을 하려 해요.
 
-드라마 작가를 하게 된 이유와 계속 이 일을 꾸준하게 이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은 뭔가.
대학시절부터 영화에 관심이 많아 동아리 활동도 했고, 문예창작과 국문학을 전공하며 문학과 영화가 닿아있는 지점을 경험하며 시나리오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어요. 원동력은 당연히 나의 이야기를 좋아하고 응원하며 기다려주시는 관객들이 있다는 사실이에요. 제가 이 일을 멈출 수 없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경험들이 집필에 어떤 도움을 주고 경험을 기록하는 작가님만의 방법이 있나.
휴먼 드라마 장르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사람들과 마주치며 얻어지는 일상의 모든 삶의 경험들이 집필 과정에 투영되는 것 같아요. 제 모든 기존 작품들의 주제 혹은 상황 역시 저의 경험과 기억에서 기인해요. 기록하는 방법들은 주로 휴대폰에 메모를 하거나 녹음을 하는 식이에요.
 
-스스로 생각했을 때 드라마에서 드라마 작가의 역할을 뭐라고 생각하시나.
내가 작업한 대본이 드라마의 가장 기본이 되는 설계도가 되고 감독, 스텝, 배우들의 길잡이가 되기 때문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껴요. 잘못 쓰여진 대본이 많은 사람들의 시간과 열정과 필모그래피를 망칠 수도 있기 때문에요. 그래서 늘 대사 한 줄, 지문 한 줄도 명확하고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노력해요.  
 
-직업병이 있나.
직업에서 온 수많은 병이 있지만 그 중 강박이 가장 힘든 것 같아요. 풀리지 않는 장면이나 대사가 있다면 해결 될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해요. 그래서 불면증을 친구처럼 달고 살고 있어요.
 
-앞으로는 어떤 이야기를 써내려 갈 건가.
이번 '나쁜 엄마'로 인해 로맨스나 스릴러, 느와르등 제안을 받고 있지만 결국에는 로맨스가 있는 휴먼드라마나, 느와르가 있는 휴먼드라마를 쓰게 되지 않을까 해요.(웃음)

차기 작품은 영화입니다. 제목은 '아마존 활명수' 인데 아마존 원주민들이 한국의 양궁 대회에 참가하는 이야기에요. 이미 탈고는 끝난 상태고 7월 크랭크인 예정이에요.
 
시트콤 각색작업에 크리에이터를 맡은 '약한자는 살아남을 수 없다'라는 작품이 준비 중이고 제 원작 시나리오를 시리즈로 전환한 '야수'라는 작품을 각색할 예정이에요. 장르는 '크리처 판타지 로맨스'에요. 새로운 도전도 지켜봐주세요.
 
-마지막으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내려 가고 있는 수많은 스토리텔러들에게 한말씀 해달라.
현재 암울한 영화, 드라마 시장 변화로 작품 활동에 대한 불안과 위기감을 느낄거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모든 위기는 결국 지나간다고 전하고 싶어요. 상황에 흔들리지 말고 일단 자신의 이야기를 끝까지 마무리 해 놓는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꺼내어 세상과 만날 날이 있다고 말해 주고 싶어요. '나쁜 엄마'도 15년 간 여러 상황으로 인해 제작되지 못하고 있었던 영화 시나리오였어요. 하지만 이렇게 결국은 만들어져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어요. 언젠가는 세상의 빛을 보게 될 여러분 앞에 놓여있는 그 대본을 끝까지 믿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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