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베트남 정상회담을 계기로 베트남에 대한 관심이 새삼 집중되고 있다. 인구 1억명, 소득수준 향상, 친환경 정책을 추진하는 베트남과는 여러 분야에서 협력할 게 많다. 베트남은 우리에게는 미국과 중국에 이은 최대 교역국이다. 1992년 수교 이후 양국 교역규모는 비약적으로 늘었다. 지난해 교역 규모는 877억 달러로 30년 전에 비해 175배 급증했다. 또 최대 무역 흑자국(342억 달러)이다. 우리에게는 고마운 존재다. 베트남에도 한국은 핵심 이익 국가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고용한 현지 인력만 70만명에 달한다. 정상회담 기간 중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은 베트남의 최대 투자국”, 트엉 주석은 “대외 정책에서 한국을 최우선으로 중시”라고 했는데,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다.
국회의장실에서 일할 때 정세균 의장을 수행해 박닌성 삼성전자 스마트폰공장을 방문했다. 우선 300만㎡에 달하는 규모에 압도됐다. 공장 정문 앞을 가득 메운 끊임없는 출퇴근 버스 행렬은 장관이었다. 박닌성 공장에만 4만명이 일한다. 인접한 타이응웬성 2공장(2013년)을 합하면 두 곳 근로자는 10만5000명에 달한다. 여기에 300~400개 협력사를 포함하면 전체 근로자는 18만명 이상에 달한다. 박닌성과 타이응웬성은 삼성 도시다. 공장 관계자는 “두 공장에서 생산하는 스마트폰은 글로벌 판매량의 절반을 차지한다. 또 삼성전자는 베트남인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기업 1순위다”고 했다. 순간 ‘한국에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스쳤다. 정상회담 기간 중 삼성과 이재용 회장이 각별한 대우를 받은 이유다.
베트남에서 삼성의 위상은 남다르다. 삼성은 베트남 수출에서 25% 비중을 차지한다. 특정 기업이 한 나라에서 이렇게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삼성전자 브랜드 이미지 또한 최고 수준이다. 삼성전자는 2017년 베트남리포트 ‘번영하는 베트남 기업 TOP 500’에서 1위에 올랐다. 베트남 최대 국영기업 페트로베트남을 제쳤다. 당시 상위 10대 기업에 선정된 외국투자 기업은 삼성전자와 일본 혼다뿐이었다. 또한 대학생들이 취업하고 싶거나 선호하는 기업 순위에서 삼성은 항상 최상위권이다. 삼성은 지난해 12월에는 하노이에 R&D센터를 설립했다. 2억2000만 달러를 들인 연구소는 지하 3층~지상 16층 규모다. 현지 연구인력 3000여 명은 이곳에서 스마트폰과 태블릿, 소프트웨어 등 첨단기술을 연구한다니 또 아쉽다.
해외 진출을 모색 중인 국내 기업에게는 베트남만 한 곳이 없다. 지난해 베트남 경제 성장률은 글로벌 경제 침체 속에서도 8.2%를 기록했다. 올해 경제성장률 또한 7%대를 전망한다. 인구도 1억명을 돌파해 소비시장으로서 큰 잠재력을 갖고 있다. 중산층도 두텁다. 2016~2021년 베트남 중산층 증가율은 10.1%로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높았다. 향후 10년간 중산층은 지금보다 2320만명 증가한 5600만을 예상한다.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에 이어 세 번째다. 한국 문화에 대한 선호도도 높다. 한류와 박항서 축구감독에 힘입어 우호적 분위기는 한층 강화됐다. 소득 향상과 젊은 인구 증가는 매력적이다. 인근 동남아 국가로 진출을 꾀하는 소비재 기업들에게 베트남 시장은 교두보로 삼기에 맞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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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동남아지역에서 한국 패션과 화장품 수요는 가파르다. 동남아와 대만 e커머스 플랫폼 쇼핑코리아에 따르면 지난해 동남아·대만 시장에서 패션 주문량은 2019년 대비 10배 이상 급증했다. 한국무역통계진흥원 1분기 무역통계에서 기초화장품류의 베트남 수출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71.6% 증가했다. 이 기간 중국과 일본은 18.6%, 17.9% 감소했다. 윤 대통령과 트엉 주석은 경제 외에 외교와 안보 분야에서도 협력하기로 했다. 윤 대통령은 “베트남과 방산 협력도 확대해 나가겠다”, 트엉 주석은 “방산 협력과 테러 방지, 비전통 안보 위협 대응 협력에 공감대를 이뤘다”며 같은 목소리를 냈다. 이밖에 한국은 베트남에 40억 달러를 지원하고 2030년 교역 규모 1500억 달러를 목표로 공조하기로 했다. 경제단체와 기업도 111건에 달하는 MOU(양해각서)를 체결함으로써 힘을 보탰다.
이대로라면 한국과 베트남 간 관계는 순풍에 돛을 단 것과 같다. 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양국 정상 간 통 큰 합의와 공조 약속과 달리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온도는 다른 경우가 적지 않다. 이번 정상회담에는 250여 명에 달하는 중소기업인들이 대거 참여했다. 베트남 시장 진출을 두드리고 있는 국내 최대 의류 도매법인인 apM도 그 가운데 하나다. 중소기업은 앞서 언급한 삼성전자와 같은 대기업과 함께 양국 교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의류와 패션, 화장품 등 소비재 산업은 중심에 있다. 하지만 대기업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동안 중소기업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apM 사례는 말 따로 행동 따로 현실을 보여준다.
apM이 오피스와 호텔 건립을 위해 하노이 스타레이크에 토지(2만5000㎡)를 매입한 건 2019년이다. apM은 잔금까지 치렀지만 4년째 특별한 이유 없이 건축승인이 지연돼 애를 태우고 있다. 송시용 apM 회장은 “1차 스타레이크 호텔 사업에 이어 대형 쇼핑몰과 의류 제조공장, 물류단지, 레지던스를 건립하는 2차 패션 복합단지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행정절차가 지연되는 바람에 순연되고 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윤 대통령은 경제인들과 간담회에서 “기업인 여러분은 정부 눈치 볼 것 없다. 당당하게 요구하고 강하게 어필해 달라”고 당부했지만 대통령이 현장까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한국과 베트남 사이에 형성된 우호적 분위기가 결실을 맺으려면 최일선에 있는 중소기업에 대한 세심한 관심과 지원은 절대적이다.
한국과 베트남은 유교문화권이라는 동질성에다 높은 교육열, 강인한 국민성, 뛰어난 손재주까지 닮은 점이 많다. 국제사회는 한국을 ‘다이내믹 코리아’로 부른다. 한국의 역동성과 베트남의 잠재력이 맞물린다면 두 나라는 동반성장할 수 있다. 베트남전쟁을 고리로 연결된 두 나라는 동맹이나 다름없다. 베트남을 교두보로 동남아지역으로 무대를 넓힌다면 대중국 의존도를 줄일 수 있다. 글로벌 기업의 ‘탈(脫)중국’ 영향 아래 베트남은 ‘기회의 땅’으로 인식된다. 각별한 유대감을 공유하는 한국은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다. 관건은 결실로 이어가려는 디테일에 있다. 베트남에는 ‘1000년을 흐르는 메콩 강처럼 친구의 가치는 영원하다’는 속담이 있다고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조화로운 성장을 바탕으로 흔들림 없는 디딤돌을 놓아야 한다.
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국회의장실 부대변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한양대 갈등연구소 전문위원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전북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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