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자산 양극화] 부채 다이어트로 빛낸 초우량 기업···이자 못 갚고 또 빚낸 좀비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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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 기자
입력 2023-07-05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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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가총액 상위 10곳 부채비율 5.4% 개선

  • 올 1분기 상장사 중 518곳 재정 '흔들'

  • 금리인상 영향···중기 60%·대기업 21%는

  • 영업익으로 이자 변제 못하고 부채 가중

올해 1분기 중소기업 10곳 중 6곳은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갚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급격한 금리 인상과 함께 업황 침체로 인한 이익 감소까지 겹치면서 중소기업뿐 아니라 대기업에서도 한계기업이 속출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반면 시가총액 상위 10개사는 오히려 부채 규모를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금리 인상으로 금융비용(이자)이 급증하자 오히려 부채를 줄여 재무적 리스크를 관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초우량 기업은 리스크 관리에 방점을 두고 있지만 중소기업은 막대한 이자에도 불구하고 당장 부채를 늘릴 수밖에 없는 양극화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올해도 고금리 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예상돼 이자 부담이 지속되고 경기 침체도 쉽사리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기업의 재무구조 양극화가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4일 재계에 따르면 초우량 기업은 올해 초 재무 리스크 관리에 신경을 집중했다. 국내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상위 10대 기업의 부채비율(연결 기준)은 64.5%로 지난해 3월 말 69.9% 대비 5.4%포인트(p) 개선됐다. 부채비율은 기업이 보유한 자산 중 부채가 어느 정도 차지하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비율로, 기업의 재무구조를 살펴볼 때 활용하는 대표적인 지표로 꼽힌다.

이 기간 시가총액 상위 10대 기업의 자본총계 합산 규모가 595조6233억원에서 666조4603억원으로 11.89% 늘었으나 부채총계 합산 규모는 416조4612억원에서 430조1641억원으로 3.29% 늘어나는 데 그쳐 부채비율이 개선됐다.

특히 시가총액 1위인 삼성전자는 이 기간 부채총계 규모 자체를 124조360억원에서 94조2924억원으로 23.98% 줄이는 데 성공했다. 총차입금도 18조504억원에서 9조9420억원으로 44.92% 줄인 것이 눈에 띈다. 초우량 기업들은 전체 자산에서 차지하는 부채비율을 줄여나갔으며 국내 1위 기업으로 꼽히는 삼성전자는 부채 규모 자체를 줄여 재무 리스크 관리에 집중한 것이다.

반면 중소기업은 물론 상당수 대기업도 재무 리스크를 관리하는 데 실패해 극심한 양극화 현상이 포착됐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실적을 지난해 1분기 대비 비교·분석이 가능한 코스피·코스닥 상장사 1278개사 중 이자보상배율 1 미만인 '한계기업'은 518개사로 전체의 40.5%를 차지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432개사보다 한계기업 수가 19.91% 늘었다.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33.8%에서 40.5%로 6.7%포인트(p) 늘었다.

이자보상배율은 기업의 재무 안정성을 살펴보는 대표적인 지표 중 하나다.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것은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갚지 못했다는 의미다.

경영 악화로 이익이 줄거나 재무구조 악화로 이자비용이 상승하면 이자보상배율은 악화된다. 번 돈보다 이자가 더 많이 나가는 상황이 지속될 경우 기업으로서 존속 가능성에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런 점 때문에 이자보상배율 1 미만인 기업은 한계기업으로 부른다.

기업 규모별로 살펴보면 금리 인상에 취약한 중소기업에서 한계기업이 크게 늘었다. 상장협 분류 기준 중소기업 453개사 중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곳은 지난해 1분기 227개사(50.1%)에서 올해 1분기 271개사(59.8%)로 증가했다. 중소기업 60%가 이자도 갚기 어려운 한계기업으로 조사된 셈이다.

상당수 대기업도 상황은 비슷했다. 올해 1분기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 대기업은 32곳으로 전체의 21.3%를 차지했다. 지난해 23곳(15.3%)보다 늘었다. SK스퀘어, SK아이이테크놀로지, LG디스플레이, 현대미포조선, 효성화학 등 영업손실을 기록한 기업도 있었지만 흑자 기업 중 이마트, 효성, 한진칼, 롯데쇼핑 등은 이자비용이 영업이익보다 더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우리나라 한계기업 비율이 미국, 중국, 프랑스 등 전 세계 7개국 가운데서도 높은 편으로 조사됐다. 2021년 기준 주요 7개국(G5와 중국, 한국 상장사) 중 미국(20.9%), 프랑스(19.2%)에 이어 한국이 16.5%로 집계됐다. 한계기업 증가 속도도 미국 다음으로 빠르다는 분석이 나왔다.

올해 1분기 상장사들의 재무상태가 악화한 가장 큰 원인으로 금리 상승이 꼽힌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인플레이션 방지를 위해 글로벌 주요국 중앙은행이 강력한 긴축 정책을 이행하고 있다. 이에 각국의 기준금리가 급격히 상승하고 있다. 한국은행도 지난해 1월 1.25% 수준이던 기준금리를 올해 1월 3.5%로 2.25%p 상향 조정했다.

기준금리와 연동된 시장성 자금 조달 금리도 크게 오르고 있다. 특히 상당수 중소기업이 평정받는 'BBB-' 신용등급 기업의 3년물 회사채 금리는 지난해 1월 초 8.32%에서 이달 초 10.68%로 2.36%p 늘었다. 이에 비해 'AA' 신용등급 우량 기업의 회사채 금리는 2.43%에서 4.23%로 1.8%p 늘어나는 데 그쳤다.

문제는 이번 금리 인상이 기업의 이자비용 증가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금리 인상으로 글로벌 경기가 위축되면서 기업의 이익까지 줄어들고 있다. 올해 1분기 상장사의 총 이자비용은 9조5931억원으로 전년 대비 82.2% 늘어난 반면 영업이익은 21조6438억원으로 56.1% 줄었다. 전체 이자보상배율 역시 지난해 1분기 9.38배에서 올해 2.26배로 그야말로 급감했다.

벌어들인 돈으로 이자 갚기 어렵다면 보유한 자산을 팔아 빚을 갚아야 하는데, 이를 나타내는 지표도 지난해보다 악화됐다. 유동자산(1년 이내 현금화 할 수 있는 자산)과 유동부채(1년 이내 갚아야 하는 부채)를 살펴보는 유동비율을 살펴본 결과 올해 3월 말 상장사 평균치는 132.5%로 지난해 3월 말 141.5%보다 9%p 악화됐다.

더 큰 문제는 올해 고금리 기조가 지속되면서 이 같은 양극화 현상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몇몇 소수의 대기업은 재무 리스크 관리로 지표를 개선할 수 있지만 상당수 대기업과 대부분 중소기업은 이자비용도 감당하지 못하는 한계기업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올해 들어서도 세 차례나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했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이번 달에도 재차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를 감안하면 올해 하반기에도 당분간 고금리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필규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올해 인플레이션 압력이 지속되고 자금시장을 둘러싼 위험요인이 남아 있어 기업의 자금조달 여건이 급격히 개선되긴 어려울 것"이라며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인한 고금리가 지속될 위험도 있어 한계기업이 증가하고 구조조정의 압력이 높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추광호 전경련 경제산업본부장은 "2020년부터 확산된 코로나19와 급격한 금리인상, 최근의 경기 악화 등이 한계기업의 증가 요인으로 분석된다"며 "안정적 금융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업종별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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