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재킷에 넥타이…폭염에도 꽁꽁 싸맨 '변호사 법정룩' 10년째 제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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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가언 기자
입력 2023-07-19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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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세종이 매주 금요일마다 자율복장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사진법무법인 세종
법무법인 세종은 '캐주얼데이'를 도입해 매주 금요일마다 자율복장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세종 직원들이 캐주얼데이에 청바지, 셔츠 등 자유로운 복장으로 출근해 담소를 나누고 있다. [사진=법무법인 세종]

# 지난 6일 최고 기온이 33도까지 올라가는 무더위에도 서울중앙지법 법정 내에는 긴 정장 재킷에 넥타이까지 '풀정장'을 갖춘 변호사가 증인신문을 했다. 법정 내 에어컨이 작동되고 있었지만 10분만 앉아 있어도 금방 더위가 느껴졌다. 변호사는 빨개진 얼굴로 연신 땀을 흘렸다. 그는 변론 절차가 모두 끝나고 법정 밖을 나서자마자 재킷을 벗어던지고 넥타이를 풀었다. 

지방변호사회가 2013년부터 변호사들에게 여름철 법정 내에서 복장 간소화를 안내하고, 각급 법원에 협조 공문을 보내고 있지만 긴 팔 재킷을 걸치고 넥타이를 매는 등 10년째 '변호사 법정룩'은 변함이 없다. "재판부 눈치가 보인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19일 아주경제 취재에 따르면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지난달 헌법재판소를 비롯한 전국 37개 법원에 '여름철 법정 내 변호사 복장 간소화'에 대한 공문을 발송했다. 공문에는 변호사들이 여름철 혹서기에 넥타이를 매지 않은 정장 차림으로 변론할 수 있도록 재판부에 양해 및 협조해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이 담겼다.

서울변회는 변호사 회원들에게도 6~8월은 변호사들이 넥타이를 매지 않는 등 법정 예절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가급적 단정하고 간소한 옷차림으로 법정 내 변론에 참여할 수 있도록 공지했다. 단 색상이 지나치게 화려한 옷이나 노출이 심한 옷, 민소매, 샌들은 법정 예절을 해칠 수 있어 제외했다. 또 복장 간소화 정착을 위해 넥타이를 매지 않은 복장에 대해 재판부로부터 지적받은 사실이 있다면 서울변회에 알려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실제 여름철 법정에 가보면 간소한 옷차림을 하고 있는 변호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여자 변호사들은 넥타이를 하지는 않지만, 블라우스 위에 긴팔 재킷을 입는 게 일반적이다. 법정 내 에어컨 냉방 온도는 정부 권고에 따라 26~28도를 유지 중이다.

법조계가 보수적인 문화를 지녔다고는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대형로펌에서 '캐주얼데이'를 도입하는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법무법인 태평양, 세종, 화우 등은 매주 금요일에는 정장을 벗고 편한 복장을 하고 출근할 수 있도록 자율복장제도를 도입, 구성원들에게 상당한 호응을 얻고 있다. 

세종 관계자는 "자유로운 근무 환경 조성뿐만 아니라 폭염에 건강을 지키고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 캐주얼데이를 도입했다"며 "여름에는 반팔을 입고 출근하는 직원들도 흔하게 볼 수 있다"고 밝혔다. 화우 관계자도 "변호사, 직원들 모두 만족하고 있는 제도"라고 말했다.

반면 법원에서는 아직 이 같은 모습을 보기 어렵다. 이에 대해 변호사들은 '풀정장'을 법정 예의로 보는 시각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대법원은 법원 공무원 예규에서 '법정 안에서는 자세와 복장을 단정히 하라'고 정하고 있다. 

대형로펌의 한 변호사는 "여름에 방청객이 많이 몰리는 법정이면 실내 온도가 높아져서 더 갑갑하고 덥다"며 "그럼에도 재킷을 벗는 경우는 거의 없고 넥타이도 법정 밖에 나와서 풀더라도 법정에 들어갈 때는 매고 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한 청년 변호사는 "넥타이를 하지 않고 법정에 들어가는 것이 일부 판사들이 '법정 예의에 어긋난다'고 느낄까봐 재판 당사자를 대리해야 하는 변호사들 입장에서는 눈치가 보이는 것이 사실"이라며 "법원에서 소극적으로 서울변회의 간소화 협조 공문을 받을 게 아니라 복장 간소화를 적극 안내해준다면 변호사들도 부담감을 좀 더 덜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여름철 법정 내 변호사들의 복장 간소화 필요성에 대한 판사들의 시각은 엇갈린다. 한 배석 판사는 "변호사들이 넥타이를 했는지 안 했는지는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다"며 "미국 일부 지역은 청바지도 허용하고 있는데, 복장에 상관 없이 변호인으로서 변론만 충실히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반면 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판사들이 항상 법복에 넥타이를 매고 법정에 들어가는 것처럼 변호인도 법정 예의에 맞는 옷차림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며 "변론에 임하는 자세는 복장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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