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롤(역할)을 찾아 헤매던 소년
아시아 최고사업책임자(Chief Business Officer–Asia). 그의 직함이다. 글로벌 기업인 LPGA는 그에게 아시아를 총괄하는 중책을 맡겼다.
어린 시절 그의 꿈은 LPGA였을까. "지금이야 골프를 취미로 하지만 최애 스포츠는 아니었어요. 여자골프는 더 그렇고요. 야구와 테니스 선수로 활동했어요. 대학원에서는 스포츠 경영학을 공부했고요. 사실 처음에는 NBA 골든스테이트워리어스(GSW)에서 인턴 생활을 했어요. 근데 그 안에서는 내 역할이 보이지 않았죠."
역할을 찾아 헤매던 그는 운명처럼 한 대행사 인턴으로 근무하게 됐다. 대행사가 운영하던 것이 바로 LPGA 대회. "대행사에서 2006년부터 2년 동안 근무했어요. 그때 했던 대회가 롱스 드럭스 챌린지예요. 인턴 신분으로 작은 스폰서십 2개를 성사했어요. 광고 교환, 자원봉사자를 위한 음식 후원 등이요."
작은 성공을 거둔 그는 대회장에 들어오는 한인 갤러리를 보고 문득 의문이 생겼다. '한국 선수들의 실력은 좋은데 왜 한인 상대 마케팅이 없을까.' 그는 물음표에서 멈추지 않고 답을 찾아 나섰다. 회사의 지원이 없으면 사비를 털었다. "LPGA에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프로암 등은 정말 좋은 판매 도구였죠."
◆ 운명처럼 이어진 LPGA
변 CBO가 LPGA에서 근무하기 시작한 것은 2008년 1월이다. 물론 쉽게 입성한 것은 아니다. 솔선수범하는 모습으로 호감을 샀다. "면접은 2007년 말로 잡혔어요. 5명이 지원했죠. 면접을 보러 본사에 가려 했어요. 근데 오지 말라는 거예요. 오리엔테이션이 있다면서죠. 근데 가겠다고 했어요. '어차피 할 일'이라는 말과 함께요. 가서 통역 등 일을 했고 호감을 샀죠. 대행사 사장님도 좋은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LPGA에 입성한 그는 선수 교육을 담당했다. 비즈니스를 시작한 것은 2011년부터. 삼성 월드 챔피언십 등의 마케팅을 진행했다.
"당시에는 4~5개 규모의 아시안 스윙이 있었어요. 그러다가 볼빅의 움직임을 주시했죠. 파트너로 괜찮겠다고 생각했어요. 대표번호에 전화를 건 것을 시작으로 관계를 만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아내도 만났고요."
3년 뒤인 2014년 11월에는 LPGA 아시아가 한국에 설립됐다. LPGA는 그에게 수장을 맡겼다. 입사 6년 만이다
"현재 (LPGA 아시아) 직원은 9명이에요. 곧 2~3명이 충원될 거 같아요. 여성 리더십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두 사람(서윤정 팀장, 한지연 부장)에게 주요 업무를 맡겼어요. 본사에서도 두 사람을 주목할 정도예요. 나중에는 좋은 리더로 성장할 것 같아요."
◆ LPGA 아시아의 9년
올해로 약 9년째. LPGA 아시아는 많은 일을 했다. "아시아에서는 LPGA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요. 갤러리 호응도 좋고, 중계 시간도 길고요. 상금도 올라가는 시점이에요. 10월에 열리는 메이뱅크 대회는 우리 팀의 성과 중 하나에요. 남자 대회를 개최했던 회사가 여자 대회를 선택했어요. LPGA의 가치가 그만큼 올라갔다는 이야기겠죠. 미팅하러 갔더니 상대가 모두 여자였어요. 총상금(300만 달러) 등 조건은 모두 남자 대회와 같아요. 한국의 박세리, 중국의 펑샨샨, 태국의 쭈타누깐 자매처럼 말레이시아에서도 여자골프 바람이 불 거라고 봐요."
LPGA 아시아의 당면 과제는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과 걸스 골프다. 변 CBO는 "올해 BMW 대회는 서원힐스에서 열려요. 데이비드 데일리가 설계했죠. 티샷한 공이 떨어지는 지점에 클래식 벙커를 만들었어요. 벙커를 본 사람들은 다들 호랑이 발톱이라 불러요. 기대해도 좋아요"라고 말했다.
걸스 골프에 대해서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에요. 목적은 선수가 아닌 체험이고요. '기업 여성 임원 중 90% 이상은 스포츠를 통해 경쟁심을 배웠다'는 통계가 있어요. 한국을 시작으로 아시아로 뻗어나갈 계획이에요"라고 설명했다.
◆ 호흡 맞춘 커미셔너와 역할
변 CBO는 16년 동안 3명의 커미셔너와 호흡을 맞췄다. 캐럴린 비벤스, 마이크 완, 몰리 마쿠 사만. "신임 커미셔너가 부임하면 조직이 달라져요. 완은 세일즈 마케팅 특화였어요. 부족한 부분을 정확하게 알았죠. 돈이 없어도 대회를 만들었어요. 덕분에 코로나19 위기를 넘겼어요. USGA로 갈 때 '남녀 대회 상금을 똑같이 만들겠다'고 했죠. 가자마자 US 위민스 오픈 상금을 늘렸어요. 현 커미셔너인 마쿠 사만은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정확하게 나눠요. 그는 오히려 '아시아 전문가이니 우리를 가르쳐 달라'고 해요. 우리의 영역이 넓어진 계기였죠."
20분하려던 인터뷰가 57분을 넘어갈 때쯤. 마지막 질문으로 찾아 헤매던 '역할'을 물었다. 지금 '역할'에 만족하는지에 대해서다.
변 CBO는 다시 소년 같은 표정을 지었다. "지금도 머리가 꽉 찼어요. 근데도 새로운 것이 좋아요. 일 벌이는 것을 좋아하죠. 지금 하는 일을 발전시키고 싶어요. 다른 아시아 국가에 사무실을 만들 계획을 갖고 있어요."
눈을 마주치더니 웃으며 말했다. "전 타고난 장사꾼(Natural-born salesperson)인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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