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는 올해 초 AI 등 핵심 기술 개발에 집중하려고 대대적인 조직 개편에 나섰다. 네이버 산하 연구개발(R&D) 조직 'AI랩'을 네이버클라우드로 이관하고 이를 'AI이노베이션'으로 확대 개편한 것. 하정우 당시 AI랩 센터장은 지난 4월부터 AI이노베이션 센터장 자리에서 조직을 이끌고 있다.
AI이노베이션 센터는 AI랩이 수행하던 중장기 AI 선행 연구를 비롯해 AI 윤리와 글로벌 AI 생태계 확장 전략 수립 및 실행까지 전반을 담당한다. 네이버의 하이퍼클로바X 모델 구축과 연구가 대표적이다. 출시 초읽기에 돌입한 생성AI 검색 서비스 '큐:'도 하이퍼클로바X를 백본으로 쓴다. 본지는 글로벌 AI 시장 동향과 네이버의 AI 연구 전략 등을 파악하기 위해 네이버의 AI 연구 분야 최전선에서 활약하고 있는 하정우 네이버클라우드 AI이노베이션 센터장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하 센터장과 일문일답한 내용.
"전 세계에 워낙 많은 글로벌 플레이어가 있기 때문에 경쟁력을 정량적으로 비교하기 쉽지는 않다. 다만 네이버는 전 세계 세 번째로 1000억개 이상 매개변수를 가진 초거대 언어 AI를 만들어 상용화했고, 세계 최고 권위의 학회 정규 논문을 연간 100건 이상 발표하고 있다. 연 8000건 이상의 피인용 수를 기록할 정도의 연구 역량, 그리고 영향력 있는 연구 비율로 세계 6위를 차지한 뛰어난 연구진을 보유하고 있다. 이 모두를 고려하면 네이버가 아시아 최고 수준에 포함된다고 본다. 국내는 기업들마다 추구하는 바가 달라 마땅히 (사업 경쟁력을) 비교할 곳이 없을 것 같다."
"AI 산업은 이미 상당 부분 국가전 형태로 진행되는 양상을 보인다. 미국은 오바마, 트럼프, 바이든 행정부로 넘어오면서 AI 중요성이 약해진 적이 한번도 없다. 오히려 더욱 강화돼 왔다. 특히 2021년 3월 미 AI국가안보위원회(NSCAI) 보고서를 통해 국가 차원에서 AI 중요성을 보여줬다. 최근엔 클라우드 액트 등 AI 산업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데이터를 확보하고 보호하려는 노력을 정책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오래 전부터 AI를 국가 산업으로 집중 육성했다. 영국의 경우 지난 3월 공공분야 초거대 AI 기술 종속 방지를 위해 브릿GPT를 만들고 거기에 9억 파운드(약 1조5000억원)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최근 노동당에서는 그 규모로는 부족하다면서 110억 파운드(약 18조2000억원) 투자를 외쳤다는 뉴스가 나오기도 했다. 딥러닝과 초거대 AI분야에서 상대적으로 뒤져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일본도 디지털청 설립, 초거대 AI 정부조직 신설 대규모 투자 등을 발표했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12대 전략 기술에 AI가 포함되면서 대책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저도 전략기술 특별위원회 위원으로 AI 분야에서 국가 차원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여러 가지 조언을 드리고 있다. 하지만 다른 국가의 움직임을 고려해 지금보다 훨씬 파격적이고 빠르고 강력한 지원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네이버가 보유한 AI 시장 경쟁 우위 요소는 무엇인가.
"네이버는 국내에서는 압도적으로 최고 수준의, 그리고 글로벌 빅테크들과도 경쟁할 수 있는 AI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최근 AI 연구 동향 분석 플랫폼 제타알파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피인용 상위 100대 AI 논문에 해당하는 논문을 발표한 비율 기준 기업 순위에서 네이버는 구글, 인텔 등보다 앞선 세계 6위를 기록했다. 세계 최고 권위 HCI학회인 CHI2023에서는 베스트 페이퍼를 수상하기도 했다.
초거대 AI 분야에서도 네이버는 앞선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오픈AI, 화웨이에 이어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자체 초대규모 AI인 하이퍼클로바를 만들었으며, 현재는 그 업그레이드 버전인 하이퍼클로바X를 준비 중이다. 하이퍼클로바 개발 과정에서 나온 연구 결과물만으로도 10여 개 이상 톱AI학회 논문을 발표했다."
-네이버의 AI 기술 경쟁력에 AI 반도체 혹은 클라우드 기술 확보는 얼마나 큰 변수로 작용할까.
"초거대 AI는 특성상 클라우드와 밀접하게 연계될 수밖에 없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자체 클라우드 서비스 '애저'에 오픈AI의 초거대 AI API를 상용화하는 것이 대표 사례다. 네이버도 클로바와 네이버클라우드를 통합해 클라우드 기반 초거대 AI 생태계 확장에 선제적으로 대응했다.
클라우드뿐만 아니라 데이터센터, AI 반도체 등 우수한 인프라 기술력을 자체적으로 갖추고 있는 것은 향후 더욱 확장될 초거대 AI 서비스 생태계를 안정적,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데에 매우 중요하다. 네이버는 이와 같은 풀버티컬 영역에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AI 반도체는 지속가능한 초거대AI 생태계의 핵심 요소 기술이자 비즈니스가 될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클라우드가 현재 삼성전자와 협업해 초거대 AI 특화 반도체 기술 확보에 매진하고 있는 이유다."
-해외 기업이 강세를 보이는 AI와 클라우드 시장에서 '기술 주권', 혹은 '디지털 자주권'이라는 개념이 회자되고 있는데.
"초거대 AI 기술이 범용 기술로서 국가 경쟁력 전반과 안보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이 빠르게 입증되면서, 미국을 포함한 주요국들은 빅테크에 대한 규제를 시장 경제적 관점으로만 진행하기보다 정치, 안보, 경제 전반을 아우르는 국가 기반 산업, 인프라 관점에서 검토하기 시작했다.
또한 가장 대중화된 영어 중심 서비스 모델은 다른 언어 기반 산업에 대해 영어 기반 산업에서와 동일한 생산성 향상 효과를 가져오지 않는다. 비영어권 국가에서는 비교적 좋지 않은 성능의 AI를 더 비싼 가격에 사용해야 한다. 이는 산업 전반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자국어 중심 AI에 대한 수요는 갈수록 증가할 것으로 본다. 이는 자연스럽게 AI 주권, 기술 주권의 중요성으로 이어진다."
-네이버의 콘텐츠와 테크 비즈니스로 해외시장 입지를 확보하는 전략에 AI 기술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모든 국가에 통용되는 '유니버설(universal·일반적인)'한 AI보다는 각 지역 자국어 중심의 AI에 대한 수요가 더 크다. 각 국가의 문화와 사회적 맥락을 반영한, 자국어 중심의 초거대 언어모델을 구축하고자 하는 '소버린 AI'에 대한 수요가 앞으로 증가할 것이다.
이는 미국과 중국 외 글로벌에서 거의 유일하게 초거대 AI 기술을 가지고 있는 한국(네이버)이 비영어권 국가 중심으로 글로벌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다. 네이버도 경쟁력 있는 국내 초거대 AI 생태계를 바탕으로 일본, 동남아, 중동 등에 진출하여 해당 국가에서의 서비스 생태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네이버클라우드의 클로바스튜디오 비공개 체험판을 사용해 봤는데, 오픈AI 챗GPT에 비해 프롬프트 크기가 많이 제한돼 있고 매우 조심스럽게 테스트를 진행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AI 기술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변화가 있었다. 많이 사용할수록 개선되는 것이 AI의 특징임에도, AI의 아쉬운 부분을 '위험'한 것으로 규정하고 적극적인 사용을 제한하는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실험적인 기술을 선보이는 데 어려움이 있다. 챗GPT를 통해 AI가 실수할 수 있음을 인지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네이버뿐 아니라 구글 등 기업들도 새로운 AI 서비스를 더 적극적으로 공개할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싶다.
사실 초거대 AI는 놀라운 능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실수도 많고 한계도 있는, 더욱 성장이 필요한 초창기 기술이다. 이번 기회를 들어 AI 능력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AI의 실수에 대한 사회의 수용성이 더 강해지면 좋겠다. AI 또한 실수를 개선해 가면서 발전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특이점이나 AGI(범용인공지능)의 도래에 따른 AI에 의한 인간 지배 우려를 얘기한다. 취지에는 공감하나 저는 그 부분에 대한 걱정은 별로 없다. 또한 6개월간 실험 중단이라는 방법이 적합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실현 가능성도 높아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 좀 더 실제적인 몇 가지 우려점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 샘 올트먼이 미 상원 청문회에서 얘기한 것처럼 안전한 AI 사용과 관련된 문제들이다. 도구가 강력할수록 악의적으로 활용했을 때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악의적인 사용 문제를 방지하기 위한 방안은 필요하다. AI가 만든 콘텐츠를 알아볼 수 있게끔 명기하도록 하는 것이 그런 노력의 예가 되겠다.
더 실질적인 문제는 역시 일자리다. 새로운 혁신적인 기술이 등장함에 따라 전체적으로는 사라지는 일자리보다 더욱 좋은 양질의 일자리가 많이 생긴다. 문제는 개개인 입장에서 보면 내 일자리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거다. 자연스럽게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경제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정부에서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다."
-AI업계가 원하는 바람직한 인재상은 무엇인가. AI 개발 등 관련 직무 일자리를 찾는 학생들은 어떤 자질과 역량을 키워야 할까.
"요즘 기술 변화 속도가 너무 빠르고 그에 따라 산업 사회 변화 속도도 엄청 빠르다. 또한 기술 발전에 따라 개발 도구는 더욱 강력해지고 사용하기 더욱 쉬워지고 있다. 초거대 글쓰는 AI나 그림 그리는 AI만 봐도 알 수 있다. 어떤 기술이든 빠르게 흡수할 수 있는 기본기, 수용성, 아이디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창의성과 실행력이 중요하다.
지속 가능함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AI 윤리나 안전도 지속가능성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다. 그래서 출현하는 기술들을 빠르게 접하고 나의 문제에 적용해보고 그걸 모두 깃허브 등 공간에 공유하는 등 노력들이 필요하다. 이는 당사가 실제로 서류평가나 면접 때 유용한 정보로 활용 중이기도 하다."
-네이버는 RE100에 가입해 탄소중립 달성 목표를 세웠다. 거대 AI 연구 개발, 상용화를 위한 투자가 이 목표 달성의 어려움을 가중하지 않는지.
"아마 모든 글로벌 테크 기업의 고민이 아닐까 싶다. 당사는 초거대 AI 서비스 운영 시 에너지 최적화를 위한 AI 반도체를 삼성전자와 함께 만들고 있다. (RE100 등 친환경 정책) 노력의 일환이다.
내재화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친환경 데이터센터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올해 오픈을 앞둔 두 번째 데이터센터 '각 세종'은 초대규모 AI 등으로 인한 인프라 수요에 대응하는 것은 물론, 건축에서부터 에너지 효율을 고려한 설계로 환경적 측면의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AI 기술 고도화 노력을 수행할 예정이다."
-대통령 직속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AI데이터분과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의 AI 산업 생태계 강화, 기술 경쟁력 향상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초거대 AI를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기반 기술로 바라보고 이에 맞는 투자와 지원 전략을 제시해야 한다. 먼저 해외 빅테크 기업들이 한국어 데이터를 제약 없이 학습에 활용하는 것을 방지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AI는 연구 분야를 넘어 비즈니스에서 활발히 사용되고 있다. 빅테크 기업도 더 이상 기술 디테일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용자가 생산한 데이터가 보호받지 못하고 공유된다면 국내 AI 경쟁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나아가, 향후에는 초거대 AI를 활용할 수 있는 개인의 역량이 업무 생산성을 좌우하는 시대가 도래하겠다. 교육 과정에서 AI 리터러시를 강화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도 고려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부나 국회가 정책 전략을 수립할 때 기업 전문가들의 의견, 특히 실제 초거대 AI를 R&D하고 서비스를 운영하는 분들의 의견을 많이 듣는 것이 중요하다. 초거대 AI는 기존 AI와 특성이 매우 다르고 챗GPT를 몇번 사용해본 것만으로는 알기 어려운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관점으로 초거대 AI가 인터넷 사회 인프라 기술이 되고 사람들의 삶 속에 녹아들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사회과학, 인문학, 법학 전문가와도 함께 여러 주제에 대한 사회적 담론을 형성하고 공감대를 만들어야 한다. 네이버는 이를 고려해 다양한 분야의 국내 최고 전문가와 자체 AI 윤리 포럼을 만들어 운영 중이고 그 내용을 하이퍼클로바X 개발과 서비스 적용에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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