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이 끝나고 일상으로 회복한 지 수개월이 지났다. 전례 없던 코로나를 겪으며 우리 사회는 많은 변화를 경험했다. 그중 가장 큰 변화는 그간 사람과 직접적인 접촉이나 대면으로만 가능하다고 믿었던 많은 것이 비대면으로도 가능하다는 걸 경험한 것이다.
비대면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효율성을 추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잃게 되는 것도 있다. 실제로 코로나 팬데믹 중 방역을 이유로 상당 기간 타인과 접촉이나 만남을 제한했고 이 기간 많은 사람이 사회적 고립과 단절을 경험했다. 이런 사회적 고립과 단절은 어떤 결과를 초래했을까. 통계를 보면 타인에 대한 신뢰가 감소했음을 알 수 있다.
통계청이 발간한 '국민 삶의 질 2021 보고서'를 보면 일반적인 타인에 대해 '믿을 수 있다'는 비율을 나타내는 대인신뢰도는 2020년 50.3%로 코로나 이전인 2019년보다 15.9%포인트나 하락했다. 통계청이 조사를 시작한 2013년 이후 최저치다. 한국복지패널 데이터로 코로나 이전과 이후를 분석해 비교한 결과 코로나 이후 타인에 대한 신뢰를 측정한 변수에서 '대부분 사람은 믿을 만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감소했다. 반면 조심해야 한다는 비율은 증가했다.
다른 나라와 비교에서도 우리나라 신뢰지수는 상당히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영국 싱크탱크에서 발간한 '2023 레가툼 번영지수'를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의 사회적 자본 지수는 전 세계 107위로 가까운 동아시아·태평양 국가 가운데 최하위권 수치로 나타났다. 이렇게 많은 지표에서 나타나듯 우리 사회는 코로나로 사회·경제적 재난 상황을 겪으며 신뢰 수준이 더욱 감소했다. 불신의 늪에 빠져 국민은 서로를 불신하고, 정부를 믿지 못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신뢰는 그 자체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지만 다른 부분에 미치는 영향력 매우 크기에 중요도와 가치는 점점 커지고 있다. 사회에서 신뢰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이유는 신뢰가 경제적 성과를 결정하는 본질적인 요소이고 한 나라의 복지나 경제적 능력은 한 사회가 고유하게 지닌 신뢰 수준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적 자본은 사회구성원 상호 이익을 위해 조정과 협력을 가능케 함으로써 경제적·정치적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이 때문에 복지·정치 등 거의 모든 사회 분야에서 사회적 자본의 영향력이 중요하다.
실제로 사회적 자본과 복지국가의 상호적 영향 관계는 북유럽 복지국가를 통해 잘 알 수 있다. 복지국가 국민은 다른 사람에 대한 신뢰가 높고, 정부에 대한 신뢰 역시 높다. 신뢰가 높은 사회를 만드는 사회적 자본과 복지국가의 선순환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실제 많은 연구 결과를 보면 신뢰가 높은 사회일수록 다른 사람이 신뢰할 만하다고 믿기 때문에 더욱더 정직하게 행동하고 시민으로서 의무를 성실히 수행한다. 다른 구성원 선의에 대한 기대에 본인 또한 타인을 배려해 줘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이어져 사회적 지출 범위 확장과 납세 부담 확대에도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우리 사회의 신뢰가 중요한 시점이다. 코로나 이후 극심해진 양극화의 해결과 지속 가능한 복지 정책을 위해서는 개인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사회적 합의 과정이 필요한데, 합의 과정의 전제 조건이 바로 사회적 자본이다. 자기가 필요한 때에 보답받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다른 사람과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고자 하는 '호혜주의' 정신이 사회적 자본의 힘이다.
이처럼 중요한 우리 사회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정부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것이다. 국민에 대한 정부 신뢰를 높이기 위해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은 투명성 확보와 공정한 기준 설정이다. 복지 정책을 비롯한 정부의 어떤 정책도 투명성을 바탕으로 한 국민의 동의와 지지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정보 공개 역시 필수적이다.
이에 대응한 시민 역할은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부 활동에 지속적인 관심을 두고 공동체 의식을 통해 정부 활동에 참여하고 끊임없이 소통하는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회복 시기를 맞이한 지금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 우리 사회의 신뢰가 중요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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