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3개 민간 아파트 전수조사에 건설업계ㆍ주민들 '안절부절'...재산권 침해·주민 동의 등이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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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연 기자
입력 2023-08-0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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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아주경제 DB]

정부가 8월 둘째 주부터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민간 아파트 293개 단지에 대한 긴급안전점검에 돌입하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이들 아파트에는 15만 가구가 거주하고 있고, 거주 중인 주민들이 없더라도 부실시공 여부를 확인하려면 준공된 아파트 내부를 뜯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 가운데는 서울 강남권 고가 아파트가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긴급안전점검은 주민 동의 없이도 할 수 있는 만큼 정부는 최대한 모든 단지를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이미 거주 중인 세대 내부를 동의 없이 침입할 경우에는 사생활 및 재산권 침해 등의 문제가 불거질 우려도 있다. 정부가 당초 계획대로 9월 말까지 전수조사를 끝내고 보강공사 여부를 발표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거주 중인데 벽지 뜯고 조사...주민 동의 관건

5일 국토교통부는 2017년 이후 무량판을 적용해 준공된 293개 민간아파트 단지의 안전점검을 다음주부터 본격 개시한다. 이미 안전점검을 할 업체가 선정된 상태로,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인 46개 단지 먼저 점검을 시작한 뒤, 나머지 59개 단지도 순차적으로 점검한다. 나중에 진행되는 59개 단지는 입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어 구체적 점검 사항에 대해서는 주민들과 협의를 거쳐야 한다.
 
아직 공사가 진행 중인 곳은 검사가 수월하지만 이미 주민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는 검사에 난항이 예상된다. 준공된 가구 내부의 벽지와 페인트를 벗겨 내고 철근탐지기를 써서 철근이 제대로 배근됐는지 확인하고, 콘크리트 표본을 채취해 강도를 측정하는데 이 과정에서 아파트가 손상되거나 주민들이 불편함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조사는 보강 공사가 필요한 아파트를 특정하는 단계다. 만약 조사에서 부실공사가 확인되면 그때부턴 손해배상 청구 등 입주민들의 문제 제기가 쏟아질 수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내 아파트가 보수·보강 대상에 해당하는지를 9월 말까지는 알 수 있게 하겠다는 게 정부 목표"라고 설명했다.

안전에 우려가 있는 경우 주민이 동의하지 않더라도 법적으로 긴급안전점검을 시행할 수 있다. 그러나 각 가구 내부는 소유자의 동의가 없으면 점검을 강제하기 어렵다. 최대한 입주민들을 설득해 가구 내부도 안전점검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또 보수·보강 과정에서 주거 면적이 줄어든다면 입주예정자들과 협의를 거쳐야 한다. 이 때문에 국토부는 점검 결과가 나온 이후 입주예정자에게 통보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무량판 자체 문제는 아닌데...건설업계 "시공사만 죄인 몰아가"

건설업계에 따르면 무량판 구조는 2010년 이후 서울, 수도권 등 고급 아파트를 중심으로 유행처럼 번졌다. 기존 벽식 아파트 구조보다 층간소음에서 자유롭고, 내부 구조변경과 인테리어 등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국토부도 2016년께 '장수명 100년 아파트' 정책으로 무량판 구조를 채택하면 10%가량의 용적률 인센티브를 부여했다.

실제 무량판 구조는 안전기준이 엄격한 외국에서도 다양하게 활용되는 건축 공법으로 알려졌다. 보가 없지만 기둥과 바닥 두께 기준이 까다로워 내구성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다. 실제 2013년 아파트 25층 헬기 추락사고로 외벽 손상은 있었지만 건물은 멀쩡했던 '아이파크 삼성'(2004년 입주)도 무량판 구조 아파트다.

다만 하중을 버티는 보가 없어 무게가 적절히 분산돼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이번 사태도 보 역할을 대신하는 전단보강철근을 누락한 데서 촉발됐다. 

업계 관계자는 "무량판은 층간소음에 강하고, 보가 없어 높은 층고가 가능하며, 내부 면적이 넓어 2010년대 후반부터 경쟁적으로 도입했던 공법"이라면서 "정부가 장려까지 했던 공법인데 이제 와 시공사만 '나쁜놈'으로 몰아가는 것 같아 업계 전체가 우울감과 무력감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무량판, 특수건축물 지정하고 입주자 계약해지권 부여...후속 대책 마련

한편, 국토부는 이번 사태의 발단이 된 무량판 구조를 특수구조 건축물로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특수구조 건축물 지정을 통해 더 안전한 설계가 가능하도록 할 방침이다.  

아울러 한국토지주택공사(LH) 발주 15개 단지에 대해선 입주자가 만족할 수 있는 손해배상을 하고 입주예정자에게는 재당첨 제한 없는 계약해지권을 부여할 예정이다. 인천 검단 아파트 사고 후속 조치로 GS건설이 시공한 83개 현장에 대한 전수조사 결과도 8월 내 발표한다.
 
김오진 국토부 제1차관은 "민간 아파트 전수조사와 GS건설 점검 결과를 종합해 10월 중 종합대책을 마련하겠다"면서 "안전점검은 입주자나 입주 예정자들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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