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우의 여의도 산책] 추락한 '입법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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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우 기자
입력 2023-08-0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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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대 국회 법안 발의 2만3816건...과잉입법 지적

  • 공천과 직결되는 실적...'복붙 입법' 제도적 규제 없어

사진정연우 기자
[사진=정연우 기자]
 
'우라까이'는 베껴 쓰기를 가리키는 일본식 속어다. 기자가 기사를 베껴 쓰는 것을 지적할 때 종종 사용되는 말이다. 기자의 품격과 기사의 질을 떨어뜨리는 행동이다. 그러나 우라까이는 언론계에만 존재하는 일이 아니었다. 

의안정보시스템을 살펴보면 지난 4일 기준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은 2만3816건에 이른다. 18대(1만3913건), 19대(1만7822건), 20대(2만4141건)에 비해 증가해 왔다. 21대 국회 임기가 약 1년 남은 점을 감안하면 내년 임기 만료 시점에서 최종 법안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원의 입법실적은 공천과 직결된다. 정당에서는 현역 의원의 공천 여부를 정하기에 앞서 법안 건수를 통해 실적을 평가한다. '복사·붙여넣기'를 통해 만들어진 허접한 입법은 행정력의 낭비로도 이어진다. 같은 입법을 합치는 과정을 한 번 더 거치는 것도 시간 낭비다.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사망으로 주목받고 있는 교원지위향상법안들도 상당수가 비슷하다. 해당 법안들을 발의한 의원실 보좌진들은 기자에게 "어차피 법안 심사 소위 과정에서 병합될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식으로 대답했다.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현재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 '초·중등교육법',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등의 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이 법안들은 교육활동 침해 행위를 한 학생에 대한 조치를 학생생활기록부에 남기고, 교육지원청에 지자체 단위로 교권보호위원회를 설치하는 내용과 아동학대범위를 개정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발의된 법안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부 법안은 제안 이유에 똑같은 사례를 담기도 했다. 단어만 몇 개 바꾼 채 이른바 '복붙'(복사해 붙여넣기)으로 접수된 법안도 있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현안에 의원들이 관심을 갖고 법안 발의에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발의된 법안들이 서로 겹친다는 점은 그동안 국회에서 고질적으로 지적돼 온 과잉 입법 우려를 낳는다. 국회의원이 법안을 발의하기 전 충분히 점검하는 제도적 절차가 필요해 보인다. 
 
이슈가 터지면 앞다퉈 반짝 법안을 찍어내듯이 만들고 대중의 관심 밖에 벗어나면 논의를 멈추는 게 지금 국회의원들의 모습이다. 공천이 아니라 법을 잘 만들고 다듬어 국민에게 득이 되는 일을 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양이 아니라 질이다. 법안의 질과 수준을 높이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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