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현 금융위원장이 금융당국 수장으로는 처음으로 은행 횡재세(초과이윤세)를 거론하고 나섰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수출기업 종합지원 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은행권의 자발적인 협력이 수출지원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었다"고 치켜세웠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은행에 대한 횡재세 부과 사례를 언급하며 상생금융 압박 수위를 높이고 나섰다. 금융정책에 적극 화답한 은행권 내에선 김 위원장의 발언 배경 등을 두고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하다.
김 위원장은 16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은행장·정책금융기관장 간담회'에서 모두발언 중 이탈리아 금융당국이 자국 은행에 횡재세를 부과한 사례를 화두로 꺼내들었다. 김 위원장은 "이탈리아에서 은행에 횡재세를 부과한다는 기사가 있더라"며 "이는 여러 국가가 급격한 금리인상과 경기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은 상황에서 경제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데 은행권의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은행권은) 취약계층 지원 등 사회적으로 기대하는 역할도 충실히 수행할 것을 약속했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정치권에서 주로 언급됐던 은행 횡재세에 대해 당국 수장이 직접 발언한 데 대해 은행권은 당혹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김 위원장의 이 같은 발언은 금리인상기를 맞아 이자수익이 크게 불어난 은행권이 사회공헌 등 기여를 더욱 확대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으로 해석될 여지가 높기 때문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당초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수출기업 지원에 대한 금융권 참여를 묻는 수요 조사가 있었고, 은행들은 당연히 수출기업 자금 지원이 은행 역할이니만큼 자발적으로 참여하겠다고 의사를 밝힌 바 있다"면서도 "그러나 금융당국 수장이 은행권 횡재세 이슈를 꺼내든 마당에 어떤 은행이 회사의 상생금융 지원에 대해 자발적이지 않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싶다"고 말했다.
일찌감치 은행권에서는 정부의 수출기업 금융 지원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바 있다. 특히 올해 들어 기업금융 강화에 힘을 쏟고 있는 은행권 수요와도 맞아떨어졌다는 것이 내부 시각이다. 가뜩이나 가계대출 확대에 따른 '이자 장사' 비판이 지속된 데다 가계대출 성장세에서도 한계를 느끼고 있었던 만큼 이번 수출금융 종합지원 방안을 기업금융 확대를 위한 좋은 기회로 판단했고 금융당국의 권유에 적극 화답했다.
그러나 이번 김 위원장의 발언은 은행권의 자율적인 상생금융 행보에 향후 금융당국이 관여할 수 있다는 신호로 읽힐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금융위는 청년도약계좌 발표 당시에도 은행권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금리를 내놓자 "이는 자율적으로 참여를 유도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후 당국은 비공식적으로 은행들을 소집해 금리를 일괄 인상시킨 바 있다.
다만 최근 잇따라 발생한 은행권 비위사고에 금융사들의 선택지가 많지 않았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은행권 내 사건·사고가 잇따르는 상황에서 은행권은 금융당국 정책을 거부할 명분이 부족한 상황"이라면서 "무리한 요구로 느껴지더라도 당국 정책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는 분위기도 있다"고 말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