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물가와 국제 에너지 가격이 동반 상승하면서 4분기 전기요금 결정을 앞둔 정부가 고심에 빠졌다. 전기요금까지 오르면 물가를 추가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경영난에 시달리는 한국전력으로서는 전기요금 인상이 절박하다. 한전 새 수장으로 사실상 내정된 김동철 전 의원과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방문규 신임 장관 후보자가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 관심이 쏠린다.
5일 전력업계에 따르면 한전은 오는 21일 4분기 전기요금 발표를 앞두고 관련 당국 등과 숙고를 거듭하고 있다.
최근 국제 유가가 연일 연 고점을 경신하면서 전기요금 인상 압박이 거세다. 지난 1일 기준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거래된 서부텍사스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85.55달러, 영국 ICE선물거래소에서 거래된 북해산 브렌트유 가격은 88.55달러로 올 들어 최고치를 나타냈다.
산유국들이 감산 기조를 거두지 않고 있는 데다 겨울 난방철이 도래하고 있어 유가 오름세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유가가 오르면서 한전이 발전업체에서 전기를 구입할 때 적용되는 전력 도매가격도 상승세다. 지난 5월 구매단가는 ㎾h당 132.4원이었지만 7월에는 145.61원까지 상승했다. 5월 이후 전력 구매단가가 원가를 상회하며 역마진 구조에서 벗어난 한전이 4분기에도 수익성 개선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서는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
한전은 18일 주주총회를 열고 김동철 전 의원에 대한 사장 선임 안건을 의결할 예정이다. 김 신임 사장은 취임 직후부터 전기요금 인상을 비롯해 각종 난제와 씨름해야 한다. 최대 현안은 200조원 넘는 부채를 어떻게 해소할지다. 6월 말 기준 한전 부채는 총 201조4000억원에 달한다. 영업이익 12조원 규모를 기록하며 사상 최대 흑자를 냈던 2016년 실적을 16년간 연속으로 이어가야 탕감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한전 경영 정상화를 위해 전기요금 인상이 절실하지만 대외 여건은 녹록지 않다. 앞서 3분기에도 정부는 전기요금 인상 요인을 외면하고 동결을 결정했다. 물가 상승에 따른 국민 부담을 고려한 조치였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개월 만에 다시 3%대로 올라선 만큼 같은 이유라면 4분기 전기요금을 올리기 어렵다. 총선이 8개월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 민심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전기요금 인상에 나서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전기요금 향방에 영향을 미칠 또 다른 인사는 오는 13일 국회 인사청문회가 예정돼 있는 방문규 산업부 장관 후보자다.
방 후보자는 전기요금 인상에 앞서 한전 측에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그는 최근 산업부 장관 지명 이후 전기요금 인상 여부를 묻는 질문에 "필요한 부분은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국민이 요금 인상 당위성을 납득할 수 있는 자구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읽힌다.
한전 발족 이후 첫 정치인 출신 사장이 임명되는 상황도 이 같은 구조조정 전망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경영이나 에너지 관련 분야에서 뚜렷한 경력이 없는 김 전 의원이 한전 사장에 임명되는 과정에서 특정 임무를 부여받았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강천구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국제 에너지 가격이 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전기요금 현실화는 4분기까지 기다리지 말고 당장 내일이라도 해야 한다"며 "한전 직원 급여나 성과급을 줄인다고 적자가 축소되는 것은 아닌 만큼 선택과 집중을 위한 혁신적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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