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상승은 수입 물가를 자극한다. 다시 3%대로 뛴 소비자물가가 추가로 들썩일 수 있다. 에너지 수입액이 늘면서 석 달 연속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무역수지에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눈덩이 적자에 시달리는 한국전력에도 불똥이 튈 수 있다. 간신히 빠져나온 역마진 구조가 재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터라 전기요금 인상이라는 해법을 선택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유가 90달러 선까지···"연내 100달러 돌파할 수도"
10일 에너지업계에 따르면 OPEC+(OPEC 회원국과 러시아 등 기타 산유국 협의체) 리더 격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감산을 결정하면서 국제 유가 오름세가 가팔라지는 모양새다.
지난 8일(현지시간)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11월물 브렌트유 선물은 배럴당 90.65달러로 마감했다. 전장 대비 0.81% 오르며 90달러 선을 돌파했다. 최근 2주간 브렌트유 상승률은 7.98%에 달한다.
미국 서부 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도 배럴당 90달러를 목전에 두고 있다. 같은 날 기준 10월물 WTI 선물 가격은 전장보다 0.73% 오른 배럴당 87.51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국내 소비가 많은 두바이유는 배럴당 91.08달러를 기록했다.
국내 휘발유·경유 가격도 덩달아 요동치고 있다. 이날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을 살펴보면 9월 첫째 주 기준 ℓ당 휘발유 평균 가격은 전주 대비 5.0원 오른 1750.0원이다. 경유 평균 가격은 전주 대비 10.6원 상승한 1640.6원으로 집계됐다. 휘발유와 경유 평균 가격은 주간 기준 9주째 동반 상승 중이다.
우려스러운 건 국제 유가 상승세가 당분간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는 점이다.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 등 주요국들이 감산 기조를 거두지 않고 있어서다.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브렌트유 가격이 연내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 수 있다고 내다봤다.
수입 물가까지 '들썩'···"경기 부진 완화 제약 가능성"
문제는 물가다. 치솟는 국제 유가는 수입 물가를 끌어올려 국내 소비자물가를 더욱 자극할 수밖에 없다.
최근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대로 내려앉으며 안정세를 찾다가 지난달 다시 3.4%로 뛰었다. 수입 물가는 통상 한 달 정도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반영되기 때문에 향후 물가가 더 오를 수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9월 경제동향'에서 국제 유가 상승이 한국 경제에 복병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KDI는 "최근 유가 상승과 하반기 재고 감소 전망 등이 반영돼 주요 기관이 유가 전망치를 상향 조정하는 추세"라며 "유가가 상승하면서 소비자물가 상승세가 확대되고 경기 부진이 완화하는 흐름을 일부 제약할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평가했다.
겨우 적자 터널을 탈출한 무역수지 관리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국제 유가 오름세가 지속되면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에너지 수입액도 덩달아 출렁일 수 있어서다.
우리나라 무역수지는 지난 6월부터 석 달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수출액은 11개월째 감소 중이지만 원유 등 에너지 가격 하락으로 수입액이 더 크게 줄면서 흑자 행진이 이어졌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국제 유가 상승세는 수입액 증가와 연결된다"며 "무역수지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한전, 역마진 구조 재연되나···전기요금 상승 요인 커져
유가 상승은 한전에도 악재다. 지난 7월 전력거래소 평균 정산단가는 ㎾h당 145.61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올 들어 가장 낮았던 지난 5월(㎾h당 118원)에 비해 23.4%나 뛰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도 5.2% 상승했다.
평균 정산단가는 전력 거래 금액을 전력 거래량으로 나눈 값이다. 한전이 전력거래소에서 전기를 구매하는 도매 가격을 의미한다.
전력거래소 평균 정산단가 추이를 보면 지난 1월 162원, 2월 165원, 3월 170원 등으로 상승 곡선을 그렸다. 그러나 4월(128원)과 5월(118원)에는 주춤했고 6월(126원)과 7월(145.61원)에는 다시 올랐다.
전력도매가가 오를수록 한전이 전력을 구입하는 단가도 높아져 마진율이 낮아진다. 지난 5월과 6월에는 팔수록 손해인 역마진 구조에서 겨우 벗어났지만 누적 적자를 털어내긴 부족한 수준이다. 여기에 유가와 원·달러 환율 상승까지 겹치면 또다시 역마진 덫에 빠질 수 있다.
이달 말 결정될 4분기 전기요금 인상 요인은 충분하다. 다만 총선이 다가오고 있어 실제 인상을 결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천문학적 수준인 한전 적자 해소도 요원해지는 분위기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