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근 누락 사고 이후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대한 '강도 높은 수술'이 예고된 가운데 전문가들은 역할과 조직이 비대해진 LH 일부 기능을 민간에 이양하고 임대주택 공급 등 주거복지 역할 등에 집중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인프라와 토지 개발 등을 LH 핵심 기능으로 끌고 가되 주택건설 부문은 민간에 넘겨 주택 공급 속도와 품질을 높이자는 것이다.
10일 국토교통부가 원희룡 장관 주재로 개최한 ‘공공주택 혁신 전문가 간담회’에서 민간 전문가들은 비대해진 LH 기능과 역할을 명확히 해 LH가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현숙 고려대 건축학과 겸임교수는 "택지 개발, 주택 공급 이외에 도시재생, 주거복지 등 업무가 확대되면서 LH 조직이 너무 비대해진 상황"이라며 "LH 기능을 적절히 민간에 이양해 민간과 공공의 역할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009년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 합병으로 출범한 LH는 토지 취득·개발·비축·공급·도시 개발과 정비·주택 건설·공급·관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특히 공공주택 공급은 LH가 사실상 전담하고 있는 현실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22년까지 공급된 총 124만가구 중 72.3%를 LH가 공급했다.
권대중 서강대 부동산학과 교수도 "LH가 택지 취득부터 개발·관리까지 하지 않는 게 없다. 다 지은 아파트를 관리하는 것까지 합치면 인력이 1만여 명에 달한다"며 "조직이 너무 크다 보니 어떤 문제가 터지면 사회적 이슈가 되어버린다. (LH에 대한) 규제를 하기보다는 합리적 관리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조직 개편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심교언 국토연구원장은 "주택 건설은 과감하게 민간에 넘기고 인프라, 토지 개발 등을 LH 핵심 기능으로 끌고 가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며 "민간에 건설 부문을 이양하면 공급 속도가 빨라지고 품질도 올라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화순 고려대 세종캠퍼스 국토도시정책 교수도 민간과 LH가 잘할 수 있는 영역을 구분해 LH 핵심 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택지 개발은 개발 정보를 미리 알아야 하고 발생하는 개발 이익을 국민들에게 혜택이 가도록 해야 하는데 민간은 그런 쪽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공공에서 집중해야 하는 부분은 주거복지다. 영구임대주택 19만가구까지 공급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복합적인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공공이 맡아줘야 안정적으로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LH 공공주택 품질 혁신에 대한 논의도 이뤄졌다. LH는 주택 품질을 개선하기 위해 임대주택 자재를 분양주택 수준으로 상향하고 평형을 확대하는 등 여러 대책을 시행해왔다. 그러나 여전히 저품질·고비용 관급자재 사용 등 품질에 대한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실장은 공공주택 실적 평가를 양적 중심에서 질적 평가로 개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날씨가 안 좋으면 공사기간이 한두 달 늦춰질 수 있는데 현재는 양적 목표가 중시되면서 (조정이) 어렵다"며 "성과 지표부터 질적 수준에 대한 검토가 가능하도록 바뀌어야 공공주택 혁신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공공주택에 대한 부정적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임대주택은 저소득층 밀집 거주지라는 인식이 여전하고 임대주택 입주 후에 통행로를 차단하는 사회적 갈등 문제가 반복되면서 공공주택 역할이 위축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용만 한성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공공임대리츠를 이용해 공공주택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완화할 수 있다"며 "민간 자본을 이용하기 때문에 LH는 재무적 부담을 덜 수 있고, 연구에 따르면 일반 공공주택보다 공공임대리츠가 외부에서 볼 때 LH가 공급하는 아파트라는 인식이 덜하다"고 말했다.
원 장관은 "LH가 그동안 서민 주거 안정에 크게 기여했지만 낮은 주택 품질과 안전성에 대한 우려로 신뢰도가 크게 하락한 상황"이라며 "이번에 근본적인 LH 혁신을 통해 공공주택 품질 제고는 물론 국민 신뢰를 확보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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