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드림 대행진] 강진에서 만난 다산과 영랑…그리고 한국인의 수줍은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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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수 작가
입력 2023-09-11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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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일차... 강진 보동공원에서 영랑생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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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초당에서 백련사 가는 오솔길, 길을 걷는 다는 것은 단지 걸음을 옮기는 행위가 아니라 생각이 전제되는 거 같다. 그래서 선인들은 깊은 생각을 할 때나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걸었나 보다. 어쨌거나 걸으니 생각이 깊어지는 거 같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유적지 다산초당으로 오르는 초입 길에는 편백나무가 늘어서 있는데 이 나무들이 예전에도 있었는지 일제시기에 심어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빗물에 혹은 사람들 발길에 의해 앙상히 드러난 나무 뿌리들이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여기 관련된 시를 하나 읽어본다.
 
뿌리의 길 / 정호승
 
다산초당으로 올라가는 산 길
지상에 드러낸 소나무의 뿌리를
무심코 힘껏 밟고 가다가 알았다
지하에 있는 뿌리가
더러는 슬픔 가운데 눈물을 달고
지상으로 힘껏 뿌리를 뻗는다는 것을
지상의 바람과 햇볕이 간혹
어머니처럼 다정하게 치맛자락을 거머쥐고
뿌리의 눈물을 훔쳐준다는 것을
나뭇잎이 떨어져 뿌리로 가서
다시 잎으로 되돌아오는 동안
다산이 초당에 홀로 앉아
모든 길의 뿌리가 된다는 것을
어린 아들과 다산초당으로
가는 산길을 오르며 나도 눈물을 닦고
지상의 뿌리가 되어 눕는다
산을 움켜쥐고 지상의 뿌리가 가야 할
길이 되어 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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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초당을 중심으로 동암과 서암이 있다. 동암은 다산이 목민심서와 경세유표, 흠흠신서를 저술한 곳이다. 그러니까 이곳은 제자들을 길러낸던 학당인 셈이다. 그의 500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술은 제자들과 이런 강학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초당 옆에는 연지석가산이라는 작은 연못이 하나 있는데 다산은 거기서 잉어를 키웠다고 하며 가끔 잉어와 대화를 주고 받았다고 한다. 연못 중간에는 돌로 섬을 만들고 그 중간에 석가를 상징하는 큰바위돌도 하나 앉혔는데 바닷가에서 주워왔다고 한다. 귀양은 그의 정치적 출사길이 막혔을 뿐이지 이 정도면 꽤나 호사스런 유배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초당과 이웃한 백련사로 가는 길을 걸어본다. 백련사 주지, 혜정스님과 차를 나누며 서로 배우고 깨우치는 그 우정의 길을 걸어본다. 유학자로서, 서학에도 조예가 깊었고 (신유사옥, 종교문제 보다는 정적제거용이 짙은 사화로 집안이 풍비박산이 남), 불교에도 깊은 대화를 나눌 정도였으니 그는 당대 학문과 종교에 그리고 문학의 정점에 서 있었다.
 
그가 대단한 점은 바로 이런 점일 것이다. 그는 유배기간 동안 좌절하지 않고 역경을 기회로 삼았다.  “이제야 참다운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얻었구나!” 하며 자신의 내면을 더 깊이있게 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더 높일 수 있는 기회로 삼은 것이다. 유배로 더 이상의 관료로서 출세는 못했지만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사상의 지유, 언론출판의 자유를 맘껏 누린 것이다. 다방면에 호기심과 전문적인 심미안을 키운 그이 왕성한 지적활동을 본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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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랑 생가, 한국현대시의 탯줄<시문학>을 창간한 영랑 김윤식, 용아 박용철, 정지용. 이들의 시는 정치성이나 사상성을 배제한 순수 서정시를 지향했지만 그 어떤 참여시보다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인간의 본심을 터치하는 것이 가장 힘이 있다]


 
 
오늘 목적지가 영랑 김윤식 생가까지 여서 길을 떠나기 전 영랑의 대표시 '모란이 피기까지'를 낭독했다. 일제시대 암울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순수 서정시를 읊을 수 있다는 것은 더 많은 고뇌와 비굴함을 시로 승화해낸 그의 철학적 힘이 아니었을까. 그의 서정적인 시를 읽어보면 독립과 해방에 대한 더 강인한 마음이 읽혀지기 때문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뼏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는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강진만을 따라 긴 제방길을 걸었다. 새로 만든 제방으로 강진만의 긴 갯벌이 많이 사라졌다. 응달진 곳도 없이 뜨거운 햇살이 작렬하는 제방길을 걸으며 기우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전엔 왕이 기우제를 지낼 때 양기가 너무 충만하니 음기가 필요하다며 여자 속곳을 흔들었다는 우스개 소리를 했는데 오후 4시가 되니 정말 비가 내렸다. 아주 센 소낙비로^^
 
강진 시내로 들어오는 입구 정자에서 쉬고 있는데 마을 어르신들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이 더운 날 머헌다고 그리 걸어댕겨요?
-네, 깊은 뜻이 있어 해남에서 서울까지 걷고 있습니다.
-워매, 대단한 뭔가 있기는 항게비네, 잉
-한국인의 꿈, 홍익인간 정신으로 통일 한번 이뤄보려구요.
- 많이 더울텐데... 마을회관에 들어가면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와 시원할터인데... 생수기에 아주 션한 물도 있으니 드시오, 잉.
 
잠시 후 야기를 듣던 한 할아버지가 차를 타고 나가시더니 바로 돌아오셨다. 아주 꽝꽝 언 얼음 페트병을 가지고 오셨다.
- 이것으로 드시오. 이런 날은 찬 것이 제일인께. 이 물은 약수물인께 보통 물하곤 틀리제.
집에 가서 냉동실에서 얼린 물을 가지고 오셨다.
우리의 감사인사를 겸연쩍어 하시며 자리를 피하셔서 어르신과는 사진 하나 찍지 못했다.
 
회관 안에서 쉬시던 할머니들이 우루루 나오셨다. 곧 비가 쏟아질거라며 집에 가 빨래를 걷어야 한다며 다들 분주히 나가셨다. 비는 잠깐이지만 곧 억수같이 쏟아졌다.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을 들으며 오두막같은 정자에서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고 있는데 저 멀리 논에서 이쪽으로 달려오는 자전거 한 대가 있었다.
벼 이삭이 노릇하게 익어가고 있지만 아직은 푸른, 초록빛 물결을 헤치고 달려오는 모습이 그림같이 아름다웠다. 자전거는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
 
-이거 드이소. 밭에서 지금 딴 거라 싱싱할 겁니다.
아주머니는 햇살에 익어 아직 따끈따끈한 참외를 우리에게 주려고 이 빗길을 달려오신거다. 주는 것을 미안해하며 수줍게 건네는 이 아주머니의 마음이 우리 고유의 심성이고 한국인의 정이 아닐까.
 
우린 이런 한국인의 심성을 만나러 이 <위대한여정-코리안드림대행진>여행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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