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분절화와 높은 부채비율이 한국 경제에 최대 리스크 요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유럽중앙은행(ECB)을 이끌며 위기 극복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 장 클로드 트리셰 전 총재가 바라본 한국 경제 현주소다.
20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기자와 만난 트리셰 전 총재는 고금리 속 부채 급증이 세계와 한국 경제가 당면한 최대 위기라고 짚었다.
그는 "지난해 전 세계 공공·민간 부채비율은 (세계) 국내총생산(GDP) 대비 238%"라며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2007~2008년 부채비율 190%보다 48%포인트 더 높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은 세계 경제에 중요한 국가로 오랜 세월에 거쳐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며 "세계 경제에 문제가 있다면 이는 곧 한국 경제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미·중 갈등으로 대표되는 글로벌 가치사슬 붕괴와 경제권 분절화 현상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트리셰 전 총재는 "현재는 세계화를 지나 탈세계화, '느린 세계화'로 돌입했는데 이 상황이 한국에는 위기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세계화 과정에서 무역이 증가하며 한국이 성장했는데 세계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한국에는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다만 코로나19가 잦아든 뒤 글로벌 경제를 강타한 인플레이션 문제는 각국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점차 개선될 것으로 내다봤다.
트리셰 전 총재는 "2025년까지 세계 중앙은행들이 2% 안팎인 물가 안정 목표를 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와 달리 물가를 잡기 위해 중앙은행들이 적극적으로 통화정책을 펼치고 있는데 이 같은 노력이 결실을 보고 있다는 판단이다.
그는 "1970~1980년 1·2차 오일쇼크 당시에는 선진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물가 상승을 무시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며 "현재는 중앙은행이 물가 상승 억제에 대한 확실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물가 안정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실제 포스트 코로나 이후 물가가 급등하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지난해부터 11회에 걸쳐 기준금리를 5.25~5.5%까지 인상했다. ECB는 지난해 7월부터 10회 연속으로 금리를 올려 4.50%에 도달했다.
트리셰 전 총재는 "중앙은행은 더 이상 '선한 무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이는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라고 단언했다. 이어 "최근 포스트 팬데믹에 따른 수요 급증, 그간 확장적 재정·통화정책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에너지·곡물 가격 급등 등으로 높은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다"면서도 "각국이 신속하게 대응함으로써 적정 수준으로 물가 관리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2003~2011년 ECB 수장을 맡았던 트리셰 전 총재는 적절한 정책으로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했다는 호평을 받는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었던 벤 버냉키, 영란은행(BOE) 총재였던 머빈 킨과 함께 '3인의 세계 경제 대통령'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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