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에서 기선 제압은 중요한 전략이다. 상대 후보가 기(氣)를 쓰지 못하게 제압하는 것은 어느 선거에서나 쓰인다. 기자가 취재했던 대통령 선거에서 그랬고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도 그랬다. 이를 위해 선거 캠프 관계자들은 기자들에게 상대 캠프의 일정을 '역취재'하기도 하고 약점을 캐내기도 한다. 상대 후보보다 '먼저'를 선점하기 위해서다.
총선의 전초전 격으로 치러지는 강서구청장 선거가 막이 올랐다. 김태우 국민의힘 후보와 진교훈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지난 21일 강서구 선거관리위원회에 같은 시간 후보 접수를 했다.
기선 제압을 위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강서구 선관위 사무실에 진 후보보다 먼저 도착한 김 후보는 오전 9시 정각 접수를 안내한 선관위 관계자에게 "일부러 동시 접수를 하게 하려고 나를 기다리게 하지 말라고"라며 반말로 항의했다. 진 후보와 동시 접수를 일부러 만들기 위해 먼저 온 자신을 기다리게 하지 말라는 취지였다.
그러자 이번엔 진 후보 측 관계자가 반발했다. 진 후보 캠프 측 관계자는 김 후보보다 먼저 선관위 사무실에 도착해 있었다. 그는 "후보가 오면 들여보내 주고 대리인이 오면 안 들여보내 주나"라며 항의했다. 이 과정에서 선관위 관계자는 양측 사이를 중재하며 "오해하지 마시고 9시가 되면 접수하시면 된다"고 진땀을 뺐다.
실랑이 끝에 김 후보와 '김 후보보다' 10분 늦게 도착한 진 후보는 사무실 앞에 나란히 대기했다. 9시 정각. 휴대폰만 바라보고 있던 김 후보는 "9시입니다"를 외치며 사무실로 뛰어 들어갔다. 한발 늦게 진 후보가 입장했다. 김 후보는 뛰어 들어가자마자 책상에 앉아 접수 절차를 밟았다. 진 후보는 배우자와 손을 잡고 입장해 선관위 관계자들과 악수 인사를 나눈 뒤 책상에 앉아 접수 절차를 진행했다.
제아무리 기선 제압이 중요하다지만 서로 '첫 번째'로 접수하기 위해 관계자에게 항의하는 모습은 볼썽사납기 그지없었다. 유권자는 누가 첫 번째로 후보 접수를 했는지 모른다. 사실 알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유권자가 알고 싶은 것은 접수 순서가 아닌 후보자의 비전과 정책, 공약이다. 심지어 상대보다 먼저 후보자 등록을 하려고 신경전을 벌였던 두 후보는 정작 유권자를 위한 공약집은 발표하지도 않은 상태다.
후보 등록을 마친 뒤 김 후보는 출마 포부를 묻는 취재진 질의에 "오직 강서구민 민생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진 후보 역시 "강서구민의 삶과 안전을 세심하게 살피는 안전·안심·민생 구청장이 되겠다"고 힘줘 말했다. 두 후보의 포부처럼 앞으로 펼쳐지는 선거 운동에선 상대보다 '먼저'를 위해 경쟁하는 모습이 아닌 '민생'을 위한 경쟁을 보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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