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드림 대행진] ] 동학의 눈물이 어린 정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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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수 작가
입력 2023-09-23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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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은 크지 않은 도시지만 구한말과 해방 후 우리역사에서 가장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웠던 시기, 역사의 중심에 위치해 있었다. 1894년 고부군수 조병갑의 학정에 대항해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다. 농민들의 불만을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정부는 청군에게 진압을 요청했고 텐진조약에 의해 일본군도 자동 개입되면서 이 지역은 국제전의 전장이 되어 청일전쟁이 벌어진다.

이번 ‘위대한여정-코리안드림대행진’이 요 며칠간 걸어가는 나주, 전주, 태인, 원평, 논산, 공주 이 일대는 동학농민군들의 피와 한이 깃든 곳이다. 나라를 이끌어 가는 지도층들이 부패하고 나약해지면 고난의 길을 가야하는 것은 백성들의 몫이다. 청일전쟁의 결과로 조선은 청으로부터 독립이 되지만 국제정세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부패해 나약해진 조선은 러시아의 힘을 빌리려 하다가 도리어 러일전쟁의 빌미를 내주다가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에 예속되고 만다.

오랫동안 우린 나라를 잃은 망국인으로 치욕스런 삶을 살았다. 물론 화로의 재 속에 불씨처럼 독립의 뜻을 품고 산 선각자들의 희생과 국제정세의 도움으로 우린 해방을 맞는다. 타력에 의한 독립은 우리에게 더 큰 시련을 안겨주었다. 1945년 해방 후 3년간의 이념갈등과 혼란은 일제치하보다 더 치열했다. 그런 가운데 이승만의 단독정부론이 이곳 정읍에서 처음 발표되었다. 이 격동의 과정을 지켜보았을 이 산하를 걸어본다.

9월1일 해남에서 처음 출발할 때 참가했던 윤영중 원장이 정읍구간에 참가해 함께 걸었다. 충렬사에서 출발했다. 이 충렬사는 이순신 장군이 1591년,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 전 3개월간 정읍현감을 지낸 인연으로 해방 후 이순신 장군을 기리기 위해 일본 신사 자리에 사당을 세운 것이다. 윤영중 원장은 원스(ONCE)라는 헤어살롱을 경영하고 있다. 예전엔 여러 개의 분점을 두고 있었으니 지금은 1개만을 운영하며 대신 10군데와 파트너십을 맺고 기술지도와 직업윤리를 겸한 인문학 강의를 하고 있다. 이번 걷기행사에는 ‘낭만미장원’이라는 깃발을 들고 참가했다.

그는 20대 초반에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교통사고로 허리와 다리를 심하게 다쳤고 한쪽 눈의 시력마저 잃게 되어 군대 면제를 받았다고 한다. 조금씩 걷게되면서 건강을 회복해가다가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는 맘으로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영어공부를 하다가 좀 더 영어회화를 쓸 수 있는 일을 찾다가 미장원에서 일하게 되었다. 손님들 머리를 감겨주는 일명 샴푸보이로 일하며 그는 헤어디자이너에 눈을 뜨게 된다.

그래서 들어간 곳이 비달사순(Sassoon) 아카데미다. 그는 이곳에서 미용에 관한 기초이론부터 배웠다. 머리를 잘 자른다는 것은 기능이 아니라 고객의 골격, 표정, 라이프스타일 그리고 색감 등에 대한 이론과 눈썰미가 우선이었다. 기능은 그 다음이라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한국에 돌아와 그는 유명 미용업체에 입사했다. 영국 사순에서 배웠다는 경력으로 그는 매니저급으로 입사했지만 그는 가위 잡는 법을 그 때부터 다시 배웠다고 한다.

헤어디자이너로 잘 나가다가 인생의 멘토라할 한 선배를 만났다고 한다. 그 선배는 시간 나는 대로 시골마을을 다니면서 주민들의 머리를 잘라드리며 여행을 했다고 한다. 서로 부담감 없이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가치를 교환하며 같이 먹고 자고 대화하는 것이 얼마나 부럽고 아름다웠는지 그 때 알았다고 한다. 그 선배가 가지고 다니던 ‘낭만미장원’ 깃발을 받아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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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수 작가 제공]


이번 코리안드림대행진에 참여한 것은 자신의 이런 의지를 잊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언젠가는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를 여행하며 사람들의 머리를 다듬어 주며 인생이야기를 나누는 ‘낭만깎사’의 길을 가보려고 하는 것이다. 그와 함께 걷다가 어느 마을에 접어들었는데 집집마다 벽에는 어린왕자 그림이 벽화로 그려있었다. 윤원장 얼굴을 보면 참 맑다는 생각에 그가 어린왕자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어린왕자가 그려진 길을 함께 걷고 있는 것이다.

나도 한 때는 내가 어린왕자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어느 먼 별에서 꽃 한 송이 피우려 이 땅에 찾아왔다는… 내 이름이 斗秀는 북두성에서 왔다는 하나의 신호라는 뻥을 치기도 했다. 어쨋거나 어린왕자의 스토리를 가장 잘 표현한 것이 심수봉의 ‘백만송이 장미꽃’이라고 생각한다. 이 곡은 번안곡이긴 하지만 곡만 빌렸을 뿐 가사는 원곡과 완전히 다르다. 심수봉 선생은 원곡을 들으며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가사를 썼을까 너무 놀랍고 존경스럽다.


‘낭만미장원’의 윤영중 원장과 ‘백만송이 장미꽃’을 러시아어로 그리고 일본어로도 들어보며 우리는 심수봉선생의 노래를 몇 번이고 함께 들으며 걸었다. 한의 역사를 넘어가는 것도 어쩌면 순수한 마음, 거짓없는 눈망울에서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미워하지 않고 오직 사랑으로만 꽃을 피워내는 것처럼….

먼 옛날 어느 별에서 내가 세상에 나올 때
사랑을 주고 오라는 작은 음성 하나 들었지
사랑을 할 때만 피는 꽃 백만송이 피워 오라는
진실한 사랑할 때만 피어나는 사랑의 장미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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