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박모씨(30)는 기아 단체협약 '고용세습' 조항을 접하고 "황당하다"고 말했다. 기아 단협 27조 1항은 '재직 중 질병으로 사망한 조합원 직계가족 1인, 정년 퇴직자 및 장기 근속자(25년 이상) 자녀를 우선 채용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기아 노조는 조항을 삭제하라는 사측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박씨는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는 것은 권리라고 생각하지만 명분이 '고용세습' 유지라면 분노할 수밖에 없다"며 "왜 이런 규정을 유지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직장인 김모씨(31)도 "고용세습 조항 유지를 이유로 파업에 돌입한다면 사회적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자녀 우선 채용은 결국 누군가의 기회를 빼앗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아 노사가 올해 임금·단체협상(임단협)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기아 노조는 17~19일 8시간, 20일 12시간 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예고했다. 합의하기 어려운 배경이 고용세습 조항 삭제에 대한 노사 간 의견 차로 알려지면서 노조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조항 유지가 파업 명분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회사 이미지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용부 "고용세습은 불법···시정해야"
16일 노동계 등에 따르면 기아 노사는 지난 12~13일 이틀간 제15차 임단협 본교섭을 진행했지만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다. 노조가 파업을 예고한 기간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지만 추가 교섭 일정조차 잡지 못했다. 17일까지 교섭 재개가 결정되면 파업이 미뤄지는데 재개 여부는 불투명하다. 노조 측은 "사측이 요구를 끝까지 관철하겠다는 의사를 표했다"며 "최종 결렬을 선언한다"고 말했다.사측이 △주간 연속 2교대 포인트 인상 △유아교육비 지원 확대 △잔업 해소와 중식 연장 등 내용을 담은 7차안을 제시했지만 노조 측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측이 7차안을 조건으로 '고용세습' 조항 삭제를 요구하고 있지만 노조는 이를 반대하고 있다.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는 고용세습 조항을 불법으로 보고 있다. 기업 단체협약 중 노조원 자녀 우선 채용 조항은 헌법과 고용정책기본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시정명령을 내렸으나 이뤄지지 않자 지난 4월 민주노총 금속노조와 금속노조 위원장 등을 입건했다. 현대자동차 노조는 2018년 자녀 우선 채용 조항을 단체협약에서 삭제했다.
전근대적 조항···"공정 채용은 상식"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고용세습 조항을 유지하는 이유는 '노조에 가입하면 자녀에게도 혜택을 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라며 "청년실업이 심각해 공정 채용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전근대적인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청년들은 예비 취업자이자 소비자"라며 "제품 구매에 있어서도 반발심을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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