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감사원이 내놓은 감사 결과도 방 장관 발언과 결이 같다. 국제 에너지 가격이 뛰는데 물가와 국민 부담을 이유로 요금 인상을 미룬 결과 한전이 심각한 재무 위기로 내몰렸다는 게 골자다. 실제 문재인 정부 5년간 전기요금 인상은 지난해 4월 한 차례에 불과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무적 판단이 원가주의 원칙에 우선하고 있다. 전기요금은 주무부처인 산업부와 물가 대책 부처인 기획재정부가 협의해 정한다. 다만 두 부처의 의견 못지 않게 중요한 게 여당의 의사다. 당정 협의라는 플랫폼을 거치면서 정무적 판단이 주요 변수로 작용하게 된다. 겉으로는 국민이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을 두고 다투지만 속내는 다르다. 요금 인상에 따른 민심 이반을 두려워한다.
방 장관이 언급한 '진작'은 전 정부에 국한되는 게 아니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도 요금 인상에 인색하기는 마찬가지. 4분기 전기요금 결정도 같은 말만 반복하는 사이 마감 기한이 보름 넘게 지났다.
'내로남불'을 멈출 때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여론을 의식한 정부·여당이 요금 인상에 미적대는 건 옳지 않다. 정무적 고려는 다르지 않은데 전 정부 탓만 하는 건 비겁하기까지 하다. 원가주의 원칙을 우선한다면 팔수록 손해인 역마진 구조에 시달리는 한전 재무 상황을 마냥 외면하지 못할 것이다.
문제 원인을 반복해 말한다고 해결되는 건 없다. 정부가 책임감을 갖고 요금 인상에 나선 뒤 국민을 향해 당위성과 불가피성을 정중하게 설명하는 게 바람직한 자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