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판 만도체 굴기]'소부장' '재정' 앞세워 K-반도체 먹거리 위협하는 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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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연, 김진희 기자
입력 2023-10-2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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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일본이 강력한 보조금 혜택을 무기로 글로벌 기업들을 유혹하며 반도체 글로벌 공급망의 주인공으로 자리잡겠다는 야망을 드러내고 있다. 일본 반도체 산업은 1990년대만 해도 미국에 뒤지지 않는 경쟁력으로 세계를 호령했지만 글로벌 경제환경 변화와 적절한 인프라 투자시기를 놓친 탓에 삼성전자 등 한국 기업에 밀린 뼈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이런 일본이 최근 미국, 대만, 네덜란드 등 반도체 동맹국과 연대해 '잃어버린 30년'을 복원하고 더 나아가 반도체 대국으로 변신하겠다는 각오를 나타내고 있다.

◆소부장 앞세워 차량용 반도체까지...삼성·SK 먹거리 위협하는 日
2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일본 경제산업성은 2021년 6월 발표한 반도체산업 육성전략을 시작으로 제도적, 경제적 지원을 강화하면서 세계 1~3위 반도체 기업인 TSMC(대만)·삼성전자(한국)·인텔(미국) 등의 생산 거점을 자국에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업계 전문가는 "일본의 전통적 강점인 소부장 경쟁력과 현재의 과감한 투자가 만나면 머지않아 한국을 위협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일본이 가장 주목하는 분야는 차량용 반도체다. 자동차 산업에서 강한 기존의 장점을 활용해 자율주행차에 필요한 차량용 로직 반도체 기술을 확보하고, 첨단 미세공정인 2나노 파운드리도 개발해 안정적인 생산망을 구축하겠다는 전략이다. 일본의 글로벌 반도체 소부장 점유율은 약 35%로 미국에 이어 2위고, 매출규모는 50%로 1위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칩 기술경쟁은 한계에 도달했고, 지금은 소재와 장비에 의해 우위가 판가름이 난다"면서 "일본에서 소부장을 수입해야하는 한국으로서는 충분히 위협적이다"라고 말했다.  

재정 지원도 압도적이다. 일본의 반도체 산업 지원책은 크게 보조금 지급, 세액 공제, 제조기반(인프라) 지원 등으로 요약된다. 세금 부분에서는 반도체 기업이 일본으로 회귀할 경우 중소기업은 3분의 2, 대기업은 2분의 1을 지원한다. 일본 내에서 10년간 생산한다는 조건이 붙을 경우에는 해외 파운드리 인프라 사업비도 지원한다. 부동산 규제도 해제했다. 앞서 TSMC가 일본 내 공장 부지 확보에 어려움을 겪자 일본 정부가 직접 나서서 그린벨트를 풀고, 전국 농지·임야에 첨단 공장을 지을 수 있도록 법안을 바꿨다. 

반면, 한국은 반도체 관련 인프라 시설 구축은 물론 사용료 대부분도 기업이 부담하고 있다. 일례로 삼성전자는 반도체 주요 생산거점인 경기도 평택시의 전력·용수·폐수 시설 요금 대부분을 자비로 부담하고 있다. 용수와 폐수는 1단계의 경우 시에서 약 49~54% 지원하지만 2단계는 기업이 전액 부담한다. 용인시는 이 혜택마저 없는 상황이다. 이는 전력·용수·폐수 사용료는 정부가 부담하고, 토지 임대료 등을 전액 면제해주는 미국, 중국, 대만 등과 대조적이다.
 
한국 정부의 이 같은 움직임은 미국, 대만, 중국 등 반도체를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는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병훈 포스텍 반도체공학과 주임교수는 "경쟁국인 일본만 해도 자국 기업이 아닌 TSMC가 사업하는 데 수조원을 지원한다"면서 "반도체 산업을 대하는 정부 태도에서부터 차이가 매우 크며, 이런 상황에서는 한국 기업이 제대로 된 경쟁을 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신냉전의 시대'..."한국 기업은 출발선부터 달라...정부, 기업에 맡기지 말고 전폭적·압도적 지원"

업계는 글로벌 반도체 패권 전쟁을 '신냉전'에 비유한다. 미국, 대만, 일본, 등 주요국들은 반도체 산업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 국제적인 협력을 줄이고, 물밑에서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반도체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자국 우선주의'가 격화되고 있는 만큼 한국도 반도체 기술우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 정부가 앞장서서 대대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석학교수도 "반도체 산업은 지금 육성을 시작해도 그 결과가 한 5년 후에나 나온다"면서 "투자하지 않으면 뒤처지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도 현재가 아닌 미래를 내다보고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보조금 지원, 세액공제, 인프라 구축 지원 등 경쟁국과 비교했을 때 기업이 투자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 줘야 경쟁력이 생기는데 한국은 정부의 지원 규모도 적고, 이마저도 예산이 부족해 해법을 찾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범진욱 서강대 시스템반도체학과 교수는 "주요 국가들이 반도체 산업에 전폭적인 지원을 하는 것에 비하면 우리 정부의 지원은 많이 부족한 편"이라며 "글로벌 반도체 경쟁이 일종의 산업 전쟁 차원으로 격화되고 있는 만큼, 기술격차를 확보하기 위한 전향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범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관련 투자가 늘어나면서 인재 확보 경쟁도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하며 이에 대책 마련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내 반도체 인재의 해외 유출 문제를 비롯해 이미 국내 중소 팹리스 쪽에서는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반도체 산업 투자를 바탕으로 기술우위 및 전문 인재 확보 등 반도체 기술 영토를 넓히기 위한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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