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계 출산율이 3명을 넘어선 '이집트'의 상황이다. 지난 9월 이집트는 내각 회의에서 인구 증가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며 산아 제한정책을 촉구했다. 한때 우리나라도 산아 제한정책을 썼지만 합계 출산율이 0.7명까지 떨어진 현재 '먼 옛날, 먼 나라'의 이야기다.
통계청이 25일 발표한 '8월 인구동향'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이달 출생아 수는 1만8984명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8%가 감소한 것으로 7월에 이어 월 출생아 수가 2만명을 밑돌았다.
출생아 수는 2015년 12월 이후 전년 동월 기준으로 6년 넘게 감소하던 중 지난해 9월 반짝 반등했지만 다시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를 웃돌면서 인구 자연감소도 2019년 11월 이후 46개월째다.
다른 나라들도 저출산 문제를 겪고 있지만 문제는 우리나라의 저출산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는 점이다. 이웃 일본도 우리나라보다 먼저 고령화와 저출산 문제가 진행됐지만 우리나라와 같이 출산율이 수년간 1명 이하로 떨어지지는 않았다.
인구가 줄면 내수 시장의 규모가 작아지고 세수입도 줄어들어 정부 재정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 소비가 줄어 경기가 침체되면 기업 투자는 축소되고 실업이 늘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이 시급하지만 정부 논의는 하세월이다. 그나마 이번 국정감사에서 정부의 출산 장려대책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배준영 국민의힘 의원은 20일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 "아이를 아예 낳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2~3명 이상 다자녀 출산 시 공제 혜택을 더 주는 자녀세액공제의 효과가 무의미하다"며 "‘하나라도 낳자’라는 방향으로 정책을 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행 자녀세액공제는 만 8세 이상 20세 이하 자녀가 1명 있는 경우 연간 15만원, 2명은 30만원, 3명은 60만원을 세액에서 공제하고 있다. 하지만 합계 출산율이 1명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다자녀 혜택을 늘리는 것은 출산율 제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사실상 일회성으로 끝나는 정부의 재정·세제 지원보다 실질적으로 아이를 낳고 키우는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세종시만 해도 출범 초기 전국에서 대표적으로 출산율이 높은 지역이었으나 최근 그 추세가 꺾이는 분위기다. 비교적 다른 직장보다 육아에 친화적인 '공무원 조직'에서조차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게 손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한 아이를 둔 워킹맘이자 중앙부처 소속기관에서 근무하는 A씨는 "육아휴직 후 복직 시 근무평가 때 최하점을 받게 된다"며 "아이 한 명을 키우려고 1년 휴직을 하게 되면 사실상 5년간의 커리어를 반납하는 셈"이라고 하소연했다.
또 두 아이를 둔 워킹맘 B씨는 최근 중앙부처에서 근무하다 소속기관의 요청으로 다른 지역 근무를 배정 받았으나 아직 아이들이 어려 원래 근무지에서 근무를 요청했다. 하지만 이 같은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나마 배려(?) 차원에서 발령을 낸 곳은 편도 1시간 30분 이상이 걸리는 2차 소속기관으로 B씨는 결국 근무가 어렵다고 판단해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를 둔 가정의 어려움을 지켜보는 미혼 공무원들에게 결혼이나 출산이 커리어보다 후순위로 밀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중앙부처에서 근무하다 육아휴직 중인 C씨는 "미혼인 사람이 결혼과 육아를 생각하는 계기는 주변의 지인들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볼 때"라며 "밑도 끝도 없이 아이를 낳으면 돈을 주겠다는 정책보다 부모가 아이를 잘 돌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가소멸을 예고하는 저출산 문제를 손쓸 수 있는 시간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현금성 지원과 같은 단편적인 대책보다 사회구조적으로 출산율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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