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각수 스페셜 칼럼] '한일관계 조기안정화' 위한 5가지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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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각수 세토포럼 이사장 · 前주일대사
입력 2023-11-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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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각수 전 주일대사
[신각수 세토포럼 이사장 · 前주일대사]




2023년은 한·일관계의 커다란 전환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작년 출범 이래 꾸준히 추진해왔던 한·일관계 회복노력이 궤도에 올랐기 때문이다. 2012년 악화되기 시작한 한·일관계는 다중복합골절 상태로 상호상실 게임의 덫에 걸려 ‘잃어버린 10년’을 경험하였다. 이로 인해 한·일관계는 악화 범위가 정치 분야를 넘어 경제·안보·문화 등 전방위로 확산되었고 이성이 아닌 감정싸움으로 전락하여 상호 경원과 상호 신뢰 상실의 늪에 빠졌다. 포스트 탈냉전 시대에 접어들어 양국을 둘러싼 대외환경은 북한 핵위협이 고도화하고 중국 부상에 따른 미·중 갈등으로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위기가 심화되었으며 양국의 평화와 번영에 중요한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흔들려 어느 때보다 한·일협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그러나 한·일관계는 이런 시대적 요청에 역행한 채 장기간 어두운 터널에 갇혀 있으면서, 우리 외교의 전반적 기조에 부담을 주어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공약부터 한·일관계 개선을 주요 외교과제로 삼았다. 취임 후 바로 양국관계를 옥죄었던 강제동원문제 해결을 위해 민관합동위원회 설치와 의견 수렴, 외교부장관의 피해자 방문 및 국회 공청회 개최 등을 통해 국내 정지작업을 추진하였다. 그리고 실무 차원의 대일 교섭을 통한 외교 절충 대신에, 3월 초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기부금을 통한 ‘제3자 변제’ 방식으로 해결하겠다는 일방적 조치를 취하였다. 이 조치는 박진 외교부 장관이 “컵의 절반을 채웠고 나머지 절반은 일본 대응으로 채워져야 한다”고 언급한 것처럼 미완성이라는 점에서, 국내 반발과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해법 발표에 이어 바로 일본을 방문하여 12년 만에 한·일 셔틀정상외교를 부활시켰다. 이러한 과감한 접근은 일본의 호의적 반응을 불러 기시다 총리가 예상과 달리 G7 정상회담 이전에 서울 답방을 실시하였다. 좀 더 시간이 걸리더라도 외교 교섭을 통해 강제동원문제를 교섭하였더라면 보다 유리한 성과를 얻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전술적으로는 손해였다. 그렇지만 한·일관계의 조기 회복궤도 진입을 통해 전략적 이익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얽히고설킨 고디우스의 매듭을 끊어버린 결단이라 볼 수 있다.
그러면 어떤 전략적 이익을 얻었을까? 셔틀정상외교로 개선된 한·일관계는 윤 대통령이 4월 말 미국 국빈방문을 통해 지난 정부 5년간 불협화음이 있었던 한·미동맹을 정상화하고 나아가 이를 확대 발전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고도화된 북한의 핵위협에 대응하는 데 필수인 확장억지를 강화하는 데 있어서, 워싱턴 선언을 통해 미국이 제공하는 확장억지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제고하였다. 또한 미·중 기술경쟁에 따른 경제안보에 있어서도 한·미 고위급 대화채널을 설치하여 우리 경제의 중요한 요소인 반도체와 2차 전지의 산업경쟁력과 시장 확보에 진전이 있었던 점도 중요하다. 그리고 우리 전략·신기술의 경쟁력 확보에 긴요한 한·미 과학기술협력에 다양한 플랫폼이 마련된 점도 의미가 크다.
한편 한·미·일 3각 협력체제의 가장 약한 고리였던 한·일관계의 복원은 8월 캠프데이비드 한·미·일 3국 정상회담에서 캠프데이비드 정신·원칙·공약 3개 문서 합의에 크게 기여하였다. 동면 상태이던 3국 협력체제를 완전 부활시켜 매우 포괄적이고 심도 있는 소다자 기제로서 제도화의 길을 열었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아제르바이잔의 나고르노카라바흐 침공, 하마스의 이스라엘 테러공격 등에서 보듯, 국제정세는 극히 유동적이고 무력충돌이 잦아지는 상황이다. 우리가 위치한 한반도·동아시아·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상황도 북한의 핵무력 완성, 중국의 공세적 외교안보정책, 미국의 신고립주의 성향으로 매우 불안정하다. 이런 대외환경에 한·미·일 3국 협력체제의 강화는 우리에게 큰 전략적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한·일관계의 회복 기조는 관계악화 시기에 과거사가 양국관계를 지배하였던 ‘원 트랙’ 정책이 과거사 해결과 협력 추구를 병행하는 ‘투 트랙’으로 전환되어 다양한 분야에서 한·일협력이 구체화되고 있다. 7년 만에 한·일 재무장관회의가 개최되어 고위급 경제대화가 재개되었고, 통화 스와프도 합의되어 코로나19로 인한 과잉유동성으로 불안한 국제금융시장 변동성에 대처하는 데 일조하게 되었다. 그리고 양국 국민의 상호인식도 개선되어 바닥을 헤매던 신뢰자산도 서서히 회복되고 있다. 전체적으로 한·일관계는 ‘잃어버린 10년’의 터널에서 빠져나와 빠른 속도로 정상화의 길을 밟고 있다. 물론 완전 회복까지 넘어야 할 고비와 다양한 제약 요소를 극복하여야 한다. 한국은 기대에 못 미치는 일본 반응에 불만이고, 일본은 한국의 변화가 지속될까 불안하다. 단기적으로 이 간극을 메우는 작업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우선 과거사 현안의 종결이다. 일본의 성의 있는 대응으로 절반을 채워야 하는 강제동원문제가 최우선이다. 현재 사법부에 계류 중인 동일 사건의 원고가 1080여 명에 달한다는 점에서, 향후 판결 금액이 상당한 액수에 이를 것이다. 정부가 3월 해법으로 제시한 우리 관련 기업의 기부에 의한 방안으로는 난관이 예상된다. 동시에 과거 중국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일본 기업이 시행했던 사과·자발적 보상과 유사하게, 관련 일본 기업들의 자발적 조치가 이루어지도록 외교 노력도 필요하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과거 2회에 걸쳐 제정한 특별입법과 동일하게 일괄처리하는 방식이다. 초당적 접근이 필요한데 상당한 정치력과 자원을 투입해야 할 것이다. 또한 전 정부 시절 무력화된 2015년 일본군위안부 합의를 되살려 이행함으로써 과거사 현안을 마무리해야 한다. 사실 과거사가 우리에 중요한 점은 역사를 직시하고 교훈으로 삼는 일이다. 이를 위해 역사는 역사가에 맡긴다는 맥락에서 3기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를 부활시켜 중장기적 과제로 꾸준히 역사연구를 지속하고 후세 교육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최근 관동대지진학살 사실을 얼버무리려는 것 같은 일본의 역사수정주의 동향에는 엄정히 대처해야 한다.
둘째, 그동안 한·일관계 악화로 미루어졌던 협력을 다양한 분야에 걸쳐 적극 추진하여 조기에 결실을 거두는 일이다. 오랜 기간 관계 악화로 한·일관계의 뿌리가 약해진 만큼, 양국 국민이 상대방의 중요성과 한·일협력의 잠재력을 깨닫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 4차 산업, 에너지·녹색경제, 경제안보, 인도태평양정책, 글로벌 이슈 등 양자·지역·글로벌 수준에서의 협력을 적극 추진함으로써, 상호이익을 극대화하고 상생과 공존의 틀을 구축해 나가야 한다.
셋째, 양국의 대화와 소통을 전방위적으로 긴밀히 하여야 한다. 그동안 소원했던 전략대화를 강화하여 한반도·동북아·동아시아·인도태평양·세계에서 고조되는 위협과 빈발하는 복합위기에 공동대응을 모색해야 한다. 북핵 관련 비핵화와 억지, 대만문제, 남중국해 항행의 자유, 글로벌 사우스 협력, 민주주의 확산, 인태지역 내 자유주의 질서 유지 등에 관한 한일·한미일 차원의 전략 소통을 원활히 해야 할 것이다. 안보 분야에서도 높아가는 역내 안보불안에 대처하는 데 필요한 협력의 틀을 만드는 일에도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넷째, 장기 악화로 인한 상호 이해·신뢰의 부족을 조속히 메우고 중장기적으로 한·일관계의 기반을 확충하기 위한 플랫폼을 구축하여야 할 것이다. 독일과 프랑스가 1963년 엘리제조약을 통해 대규모의 제도적 인적 교류를 시행하여 튼튼한 양국관계를 구축함으로써, 유럽 통합과 독일 통일의 기반을 만든 사례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최근에는 이를 훨씬 강화한 아헨조약을 체결하여 포스트 탈냉전 시대의 유동적 국제정세에 공동대응 태세를 더욱 굳건히 한 바 있다. 한·일 양국도 인적·문화교류를 대규모로 제도화하는 작업을 서둘러 상호 인식과 신뢰를 높임으로써 양국관계의 기반을 넓히고 튼튼히 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한·일관계가 크게 도약한 시기는 1998년 김대중-오부치 한·일파트너십 선언 이후 10여 년이며, 포괄적 내용의 방향 제시와 구체적 행동지침을 담은 동 선언에 힘입은 바 크다. 그동안 장기악화의 어려운 시기를 겪고 국제정세도 크게 변한 만큼, 한·일관계의 향후 발전방향에 관한 새로운 비전과 행동계획 작성을 통해 어렵게 만든 관계발전의 기회를 잘 살려야 한다. 2025년은 한·일관계가 이순(耳順)의 60주년을 맞는 만큼, 이에 발맞추어 장기비전 작성 작업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
아시아에서 선진국 클럽 OECD의 둘밖에 없는 회원국이자 주된 미국 동맹국인 한·일 양국은 초불확실성의 복합대전환기를 함께 건널 자연적인 전략 파트너다. 양국 정부와 국민은 건전하고 안정된 한·일관계야 말로 유동적 전략환경 속에 평화와 번영을 담보할 확실한 전략자산이라는 확고한 인식으로 한·일관계의 조기 안정화와 기반 정비에 힘을 쏟아야 한다.



신각수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법학과 △서울대 대학원 국제법 박사 △외무부 아주국 동북아 1과장 △외교통상부 조약국 국장 △외교통상부 제2차관, 제1차관 △주일 대사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국제법센터 초대 소장 △논문 ‘A New Paradigm for Changing Korea-Japan Relations’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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