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가 새로운 기준(뉴노멀)으로 자리잡으면서 대출 금리 역시 뛰고 있지만, 지난달 국내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6조8000억원이나 늘어났다. 대출 규제가 강화됐지만 부동산 시장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살아나면서 이른바 '막차 수요'가 몰린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최근 정부의 은행권 상생압박에 대출 금리가 다시 떨어질 가능성이 커지면서 향후 가계부채는 더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8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주택담보대출(주담대) 5조8000억원, 기타대출 1조원 등 총 6조8000억원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달 신규취급액 기준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와 월평균 5년물 은행채 금리가 각각 0.16%포인트, 0.28%포인트 올랐지만 가계대출 증가세가 오히려 가팔라진 것이다. 특히 지난달 명절 상여금 등의 영향으로 1조3000억원 감소했던 기타대출이 △연휴 소비자금 △이사 자금 △공모주 청약 관련 자금 수요 등의 영향으로 증가세로 전환했다. 기타대출이 전월보다 늘어난 것은 2021년 11월 이후 23개월 만이다.
시장에서는 부동산 가격 반등에 대한 기대감이 여전한데 정부가 가계대출 규제 강화를 시사하면서 막차 수요가 몰린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저금리 대출을 활용하려는 막차 수요로 인해 10월 특례보금자리론 유효 신청 규모가 공급 예상액을 상회했다”며 “앞으로 가격 상승 여력이 큰 수도권을 중심으로 주담대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금리에도 가계대출 수요가 늘어나고 있지만 정부가 은행권에 상생금융을 강조하면서 금융권의 고민은 더 깊어지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은행권이 가계대출 금리를 또다시 낮출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주요 시중은행은 지난 3월에도 상생금융안을 내놓으면서 0.5~0.7%포인트씩 가계대출 금리를 인하했다.
금융권에서는 정부의 상생금융 압박으로 대출 금리가 떨어지면 가계대출 증가세가 더욱 탄력받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올해 초에도 상생금융이 본격화하고 시중금리가 내리면서 주담대(3월)와 전체 가계대출(4월) 잔액이 상승세로 바뀐 바 있다.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급증 당시 디레버리징(부채 감축)을 강조했지만 이번에는 상생금융을 강조하면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당국은 이날도 동시다발적으로 가계부채 현황을 점검했다. 금융위원회는 가계부채 현황 점검회의를 열고 가계대출을 적정 수준으로 관리한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이를 위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내실화 △은행의 자발적인 장기·고정금리 주담대 취급을 위한 유인구조 마련 △금융권 가계대출 증가세 밀착 관리 △중도상환수수료 한시 면제 협의 등에 나설 계획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주택담보대출 증가세가 점차 둔화하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라며 “가계대출 안정세가 이어지기 위해서는 면밀한 관찰과 세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도 이날 주요 은행 부행장급을 불러 모아 가계대출 증가 원인을 분석하고 향후 대응방안을 모색했다. 박충현 금감원 부원장보는 “실수요자 위주의 자금공급은 지속하되 과도한 금리 인상보다는 차주의 채무 상환능력 범위 내 대출 심사 강화를 통해 증가 폭을 적정 수준으로 관리해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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