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은 올해 5월 9개 증권사 채권형 랩·신탁 업무 실태를 점검한 결과 고객 손실을 ‘돌려막기’로 보전하는 등 중대 위법 사실을 발견했으며 증권사 랩·신탁 운용 시 내부통제에 소홀한 부분도 확인했다고 17일 밝혔다.
랩(채권형 랩어카운트)와 신탁(특정금전신탁)은 증권사가 고객과 일대일 계약해 자산을 운용하는 금융상품이다. 개별 고객 투자 목적과 자금 수요를 감안한 단독 운용이 가능해 법인고객 단기자금 운용수단으로 선호됐다. 금감원에 따르면 작년 하반기 자금시장 경색으로 다수 법인 고객이 증권사에 채권형 랩·신탁 환매를 요청했으나 편입자산 매도가 어려워 환매가 중단·지연됐다. 일부 증권사가 고객 투자손실을 회사 고유자산으로 보전해 줬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올해 이 분야 업무실태 점검이 추진됐다.
금감원 점검 결과 일부 랩·신탁 운용역은 만기도래 계좌 목표수익률 달성을 위해 불법 자전거래(연계·교체거래)를 통해 고객계좌 간 손익을 이전했다. 예시된 A증권사는 2022년 7월 이후 타 증권사와 6000여회 자전거래로 특정고객 계좌 기업어음(CP)을 타 고객 계좌로 고가 매도해 5000억원 규모 손실을 고객 간 전가했다. 금감원은 9사 30명 내외 운용역이 관련 혐의자로 이들 행위는 업무상 배임 소지가 있는 중대 위법행위에 해당해 수사당국에 주요 혐의사실을 제공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일부 증권사는 시장상황 변동으로 만기 시 목표 수익률을 달성하기 어려워지자, 주요 경영진 결정 하에 투자자에게 일정 이익을 사후 제공해 금융투자업자 원칙을 위배했다. B 증권사는 다른 증권사에 가입한 특정금전신탁을 통해 2022년 11~12월 중 고객 랩·신탁 CP 등을 고가 매수하는 방식으로 투자자에게 1100억원 규모 이익을 제공했다. C증권사도 자사에 설정한 펀드를 통해 2022년 11월부터 2023년 5월 중 고객 랩·신탁 CP 등을 고가 매수하는 방식으로 700억원 규모 이익을 제공했다.
이밖에 계약조건 위배, 동일 투자자 계좌 간 자전거래, OEM펀드 운용 등 위법행위가 적발됐다. D증권사는 랩 계약시 운용 가능한 자산의 잔존만기 한도를 1년으로 약정하고 잔존만기 4년 회사채를 편입 운용했다. E증권사는 운용 가능한 자산 신용등급을 AA+로 제한하기로 약정하고 AA-인 회사채를 편입 운용했다. F증권사는 고객 요구 없이 동일 고객 1번 랩 계좌 CP를 2번 랩 계좌에 시가보다 고가 매도해 1번 계좌 목표수익률을 달성했다. G증권사는 고객 신탁 계좌 환매를 위해 타 증권사에 설정한 채권형 펀드 운용역에게 고객 CP를 시가보다 고가 매입해 달라고 요청했다.
금감원은 “이번 점검을 통해 확인한 위법 행위를 신속히 조치해 랩·신탁 시장 질서를 확립하겠다”며 “운용상 위법행위로 손실이 발생한 랩·신탁 계좌에 대해 금투협회와 증권업계가 협의해 객관적인 가격 산정 및 적법한 손해배상 절차 등을 통해 환매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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