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기스스탄은 유라시아 대륙 중부에 자리한 중앙아시아 국가로 국토의 80%가 해발 2000m 이상의 고산지대다.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과 국경이 맞닿아 있으며,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3국 국민은 여권 없이도 국경을 육로로 넘나든다. 이들은 비슷한 언어와 생활 문화를 보유한 ‘형제 국가’로 인식한다. 키르기스스탄은 1924년부터 1936년까지 소비에트 통치 시기를 거쳤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에서 독립해 현재의 키르기스 공화국이 탄생했다.
이름조차 생소했던 국가 키르기스스탄에서 밴플과 함께 겨울 로드트립을 시작했다. 로드트립은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여행지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것을 의미한다. 로드트립 여행 특화 플랫폼 기업 밴플의 첫 번째 해외 여정이었다. 밴플 멤버 등 8명과 2명의 스태프, 4명의 현지 가이드가 함께 ‘로드트립’과 ‘대자연’ ‘만년설’이라는 키워드만 가지고 무작정 여행길에 올랐다.
◆ 카자흐스탄에서 키르기스스탄으로···육로로 국경을 넘다
한국을 떠나 키르기스스탄에 도착하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렸다. 7시간 30분의 비행과 5시간의 이동 끝에 카자흐스탄에서 키르기스스탄으로 국경을 넘었다. 육로로 국경을 넘어가는 경험은 신기하면서도 긴장감이 넘쳤다.
1984년 소비에트 연방 키르기스스탄 공화국 60주년 기념으로 세워진 ‘알라토 광장’에는 대형 트리가 낮부터 반짝이고 있다. 수도 비슈케크 중심에 자리한 알라토 광장은 키르기스스탄의 전설로 불리는 ‘마나스 동상’이 광장 중앙에 우뚝 서 있다.
이곳에서 우리는 키르기스스탄 역사박물관에 들러 키르기스스탄의 과거부터 근현대사를 훑어보고, 광장 인근에 있는 시장에도 들렀다. 저렴한 물가 덕분에 100솜(약 1500원)이면 과일을 비닐 가득 담아갈 수 있어 쇼핑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 밴을 타고 매일 다른 자연 속으로 여행···‘낭만의 로드트립’
키르기스스탄 시내를 벗어나 본격적인 로드트립이 시작됐다. 현지에서 미리 준비한 밴 4대가 동시에 미지의 산으로 이동한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이 한 폭의 그림 같다. 세 시간 남짓 눈길을 달려 춘쿨착 스키장 리조트에 다다른다. 해발 2000~3000m에 위치한 이곳에 오니 공기마저 탁 트여 있다. 머리가 하얗게 센 설산들이 숙소를 둘러쌌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 덕분에 저 멀리 자리한 설산까지 한눈에 또렷하게 보였다.
뒤늦게 가장 큰 백마에 몸을 실었다. 가이드 손에 이끌려 말이 한발 한발 발을 내디뎠다. 굽이굽이 이어진 언덕길을 따라 말발굽 소리가 이어졌다. 초원을 향해 말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무섭고 불안한 마음이 진정되고 몸이 익숙해지자 탁 트인 설원이 시야에 담겼다. 사람의 흔적 하나 남지 않은 깨끗한 눈 위에 말 발자국이 하나둘 찍혔다. 말이 한 걸음씩 발을 뗄 때마다 사각사각 눈이 밟히는 소리가 더해졌다. 말의 숨소리와 말발굽 소리에 맞춰 호흡하니 자연과 하나 되는 느낌이 들었다. 고요한 초원에 나와 말의 숨소리만 울려 퍼졌다.
◆ 낮에는 설원에서 승마를, 밤에는 캠프파이어를
춘쿨착 리조트의 밤은 자연과 오롯이 하나 되는 시간이었다. 식당에서 저녁을 즐긴 뒤 텐트에서 밤공기를 느꼈다. 드론을 띄워 저 너머에 있는 새로운 산의 풍경을 담아오기도 했다. 폭신한 눈을 베개 삼고 별빛과 달빛을 이불 삼아 잠들기 딱 좋은 밤이었다.
다음 날 우리는 총케민으로 향했다. 총케민은 협곡을 따라 강, 호수, 빙하, 숲이 어우러져 키르기스스탄에서 아름다운 장소 중 하나로 꼽힌다. 100년 넘는 세월이 담긴 총케민의 ASHU 게스트 하우스는 할머니 댁을 방문한 것처럼 따스하고 포근했다. 낮에는 햇살 아래서 승마와 수영을 즐겼고, 밤에는 불을 피워 캠프파이어를 만끽했다. 건식 사우나까지 갖춘 숙소는 세월을 맞으며 닳아 있었지만 하나도 낡은 것이 없었다.
이곳에 우리는 짐을 풀고 송어 잡이에 나섰다. 송어를 잡으러 간 강가에서 말라뮤트 한 마리가 해맑게 우리 일행을 맞아준다. 긴 나무 막대 끝에 농구 골대를 연상케 하는 그물이 매달려 있다. 휘청이며 뜰채로 낚아 올린 송어는 오늘 저녁 우리의 식사가 된다.
이후 다시 한번 말에 올랐다. 끝없이 펼쳐진 설원을 줄지어 달리는 말들. 이탈하는 말들이 없도록 말을 몰아주는 셰퍼드 세 마리와 함께였다. 전날 승마 맛보기를 했던 덕분일까 승마에 조금 자신감이 붙어 혼자 고삐를 잡았다. 앞뒤로 현지 가이드들이 안전하게 지켜주고 있어 안심이 됐다.
왕복 1시간이 넘는 코스. 눈 덮인 산을 굽이굽이 내려갔던 전날과 달리 이곳의 풍경은 또 달랐다. 광활한 설원이 드넓게 펼쳐져 있었고, 저 멀리 평야에서 말을 탄 무리가 멋지게 내달렸다.
저녁엔 닭고기 수프로 추위를 달랬다. 닭곰탕과 비슷한 수프는 입맛에 제법 잘 맞았다. 일행 중 한 명이 낮에 잡아 온 송어로 회를 떴다. 키르기스스탄에서는 회를 먹지 않아서 생소한 음식이었지만 현지 가이드들은 생소한 한국식 송어회를 맛있게 즐겼다. 밤에는 삼삼오오 모여 캠프파이어를 하기 위해 불을 피웠다. 밴플에서 나눠준 티타늄 컵에 각자 취향대로 술을 따르고 노래를 곁들였다. ‘청춘’과 ‘낭만’이라는 새로운 퍼즐 조각이 완성되는 하루였다.
◆ 해발 4000m에 쌓인 만년설과 협곡, 호수까지···파노라마처럼 펼쳐진 풍경
다음 날은 일찌감치 일어나 배를 든든히 채우고 새로운 모험을 떠날 채비를 한다. 이날 첫 번째 일정은 ‘독수리 사냥’. 겨울은 야생 독수리들이 여우나 토끼를 사냥하는 최적의 계절이다. 황량한 광야에 독수리와 함께 한 중년의 남성이 나타났다. 전통 의상을 갖춰 입은 그는 생후 2개월 된 독수리를 데려와 5년 동안 함께 생활했다. 사람 손에 길든 독수리가 사냥하는 모습을 바로 앞에서 지켜봤다. 매서운 독수리의 눈빛과 부리, 발톱도 자신을 길들인 주인 앞에서는 강아지처럼 귀여운 모습으로 변했다. 독수리의 수명은 50~60년 정도라고 한다. 보통 이렇게 길들인 독수리는 20년 정도 함께 생활하다 자연의 품으로 돌려보낸다.
아벨라 고원 4000m 만년설에 다다르자 크림처럼 부드러운 눈으로 뒤덮인 산이 우리를 맞아준다. 안개가 끼거나 날이 흐리면 이곳에 올 수 없지만 이날 우리에게 운이 따랐다. 설원에 내리쬐는 강렬한 햇빛 아래 살을 에는 듯한 강한 찬바람이 외투를 뚫고 들어온다. 영하 15도의 날씨지만 체감 온도는 영하 20도를 훌쩍 넘길 듯하다. 거센 바람은 쌓인 눈들을 깎고 또 깎아냈다. 그로 인해 쌓인 눈의 표면은 쫀득하고 부드러운 머랭 같았다.
호수 인근에는 독특한 모양으로 솟아오른 붉은 협곡 ‘스카즈카 캐니언’이 기다리고 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눈밭에 있었는데 해가 쨍쨍한 모래 협곡을 보니 순간 미국 서부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붉은 언덕 너머로 보이는 이식쿨 호수와 설산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키르기스스탄의 풍광을 한눈에 담기에 제격이다.
키르기스스탄은 봄에는 꽃이 피고 여름에는 서늘해 하이킹과 물놀이를 즐기기에 제격이다. 가을에는 단풍을, 겨울에는 순백색 겨울왕국을 즐길 수 있어 사계절 내내 관광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키르기스스탄의 다음 계절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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