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반년 만에 2%대로 내려앉았지만 이를 체감하기는 쉽지 않다. 서민 가계의 주요 소비 품목 10개 중 8개꼴로 가격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가 상승률이 둔화한 건 국제 유가가 하락한 영향이며 장바구니 물가와 외식비 부담 등은 여전히 고공 행진 중이다.
4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소비자물가지수 조사 대상 458개 품목 중 1년 전보다 가격이 오른 품목은 351개(77%)에 달했다. 이 가운데 56개는 두 자릿수 상승률을 보였다.
이상 기후 등으로 인한 작황 부진으로 과일을 포함한 농산물 물가는 급등세가 이어졌다. 파(60.8%)를 비롯해 사과(56.8%)·토마토(51.9%)·복숭아(48.1%)·배(41.2%) 등이 큰 상승 폭을 보였다. 가공식품 중에서는 소금(20.7%)·설탕(20.3%)·당면(17.1%)·초콜릿(13.9%) 등 가격 상승이 두드러졌다.
서민 생활과 밀접한 택시(18%)와 시내버스(11.7%), 도시철도(10.9%) 요금도 상승했다. 찜질방이용료(10.8%)·목욕료(10.4%) 역시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했고 지역난방비는 12.1% 오르며 가계 부담을 키웠다.
외식 물가 상승률은 4.3%로 지난해 12월부터 두 달 연속 둔화했지만 전체 평균 대비 1.5배 수준이다. 2021년 6월부터 32개월 연속 전체 평균을 웃돌고 있다.
지난해 8월 이후 3%대를 기록하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달 2.8%로 떨어졌다. 공업제품 중 석유류 물가가 전년 대비 5.0% 떨어지며 전체 물가를 0.21%포인트 끌어내렸다. 전기·가스·수도는 공공요금 동결 영향으로 물가 상승 기여도가 0.19%포인트에 그쳤다.
석유류와 전기요금 등은 국제 유가에 연동돼 움직인다. 지난달 물가 상승률이 둔화한 건 기름값 하락 때문이며 서민 가계의 체감 물가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문제는 중동발 유가 변동 리스크와 설 명절 변수 등 물가를 다시 자극할 만한 대내외 요인이 상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에는 요르단 내 미군 기지에 대한 드론 공격으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이후 첫 미군 사망자가 발생하며 국제 유가가 배럴당 80달러를 넘기도 했다.
2%대 물가 상승률을 보고도 정부가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이유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중동 지역 불안 등으로 2~3월 물가는 다시 3% 내외로 상승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김웅 한국은행 부총재보도 "물가 전망 경로상 지정학적 정세, 국내외 경기 흐름, 비용 압력 영향 등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물가 재반등은 실질임금 하락과 구매력 저하로 이어져 내수 부진을 부추길 수 있다는 측면에서 우려스럽다. 지난해 1~11월 실질임금은 전년 동기(354만9000원) 대비 3만원(0.9%) 하락한 351만9000원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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